▣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공식 영문 명칭 ‘KORUS FTA’는, 제각기 다른 목소리가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는 ‘chorus’(합창)처럼 서로 최대 이익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자는 뜻을 담은 것이었다고 한다. 두 나라 협상 대표단이 협상 타결의 ‘합창’을 부르는 데 성공했으니 이름값을 한 것일까?

△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과 캐런 바티아 미 무역대표부 부대표가 4월2일 한-미 FTA 협상 타결을 선언한 뒤 악수하고 있다.(사진/ 한겨레 이정아 기자)

미국 일정에 질질 끌려다닌 협상

chorus의 ‘화음’과 달리 한-미 FTA 협상이 ‘미국의 주도’였음을 잘 드러낸 것 중 하나는 협상 시한이었다. 두 나라 장관급 협상을 이끈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캐런 바티아 미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가 협상 타결을 공식 선언한 4월2일은 미 무역촉진권한(TPA) 규정에 따라 미 의회에 협정문을 통보해야 하는 최종 시점이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미 FTA 협정문의 공개 시기가 5월 중으로 예정돼 있는 것 또한 오로지 미국의 사정 때문이다. 미국은 1975년 발효된 통상법(Trade Act) 절차에 따라 대통령이 통상 협상 타결을 의회에 통지한 때(3월 말)로부터 30일 안에 30여 개 민간 자문위원회가 산업별 영향을 평가한 보고서(Advisory Committee Report)를 작성해 대통령과 의회에 제출해야 한다. 통상법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협상이 타결되기 훨씬 전부터 “이들 자문위의 리포트가 제출되는 시점에서 미 무역대표부(USTR)가 협정문 내용을 일반에 공개하게 될 것”으로 내다본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4월5일 정례 브리핑에서 “다음달 중 협정문의 전체 텍스트를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것은 이미 예상됐던 터이다.

문제가 되는 건 단지 시점만이 아니다. 산업계를 비롯한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이 의회를 통해 행정부로 넘겨져 관철되는 ‘민주적 절차’와 ‘정치의 본질’이 협정문 공개 과정에 얽혀 있다. 미국 쪽 민간 자문위의 구실은 협정을 정식 체결하기 전 자국 산업계의 이해를 최종 반영해 의회 통과를 쉽게 하기 위한 것이다. 가서명 뒤에도 당분간 비공개 상태로 남아 있는 협정문에 수정이 이뤄질 것이란 분석은 여기서 비롯된다. 미국산 쇠고기, 개성공단 제품의 FTA 적용 등 쟁점 사안에서 협상 타결 뒤 발표한 것과 상반된 발표가 이미 미국 쪽에서 나오고 있다.

한국 쪽 사정은 어떨까. 미국과 달리 대통령의 서명이 이뤄질 6월 말까지 꼭 거쳐야 할 법적 절차는 전혀 없다. 미국에선 민간 자문기구와 무역위원회(ITC)가 평가 작업을 벌이는 동안 한국에선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행정부의 홍보와 이에 맞선 반대편의 날선 비판, 국회 내부의 당파적 이해관계에 따른 치열한 갈등이 전개될 수 있을 뿐이다. 협상안을 점검하고 평가할 공신력 있는 법적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탓에 국민적 토론을 통한 합의 도출은 어렵다.

협상안의 얼개가 이미 발표된 마당에 큰 줄기에서 얼마나 변화가 있겠느냐고 생각하는 건 사태를 너무 단순하게 보는 것이라고 송기호 변호사는 말한다. 협정문의 내용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이다. 통상교섭본부가 4월4일 보도자료 형식으로 내놓은 ‘분과별 협상 결과’는 80여 쪽 분량이지만, 전체 협정문은 1천 쪽을 훨씬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가 검증할 것이란 기대는 공허해

통상교섭본부의 발표문에서 예컨대 ‘투자자-국가간 분쟁해결제도’ 부분을 보자. 여기에는 “공중보건, 환경, 안전, 부동산 가격 안정화 정책 등 공공복지를 위한 정당한 정부정책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분쟁 대상에 해당하지 않음을 명시”했다고 돼 있다. 여기서 ‘예외적인 경우’가 무엇인지에 따라 실질적 내용은 크게 달라질 텐데, 정부 발표에선 이게 불분명하다. 협정문이 공개되는 5월까지는 비공개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미국 쪽에선 통상법 규정에 따라 민간 자문위 쪽에 일찌감치 협정문 전체가 이해당사자들에게 사실상 공개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정부가 협상안의 변화 또는 왜곡의 여지가 아직 남아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그래서 이해당사자와 전문가들에게라도 가능한 한 빨리 협정문을 공개해 평가와 검증을 받아야 한다.

△ 한-미 FTA 협상이 타결에 이르기까지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할 통로나 기회는 없었다. 협상 타결을 앞둔 3월27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시민단체들의 반대집회.

한-미 FTA 협정문은 농산물, 자동차의 관세를 낮추는 통상적인 무역 협상의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다. 이미 많이 지적됐듯이 위생검역, 투자, 서비스, 노동, 환경 등 사회 각 부문의 법과 제도를 바꾸는 문제와 얽혀 있다. 찬성, 반대 쪽 모두 “한-미 FTA가 우리 경제·사회의 발전 모델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인식에선 공통적이었던 게 이 때문이다. 국민 생활에 이렇게 심대한 영향을 줄 한-미 FTA에 정작 국민(실질적으로는 이해당사자)들은 참여할 공간이 없었다. 공청회 한번 열리지 못했고 농업 부문을 비롯한 산업계 이해관계를 협상단에 반영시킬 법적 통로를 갖지 못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헌법 제1조’가 무색해진다.

국민 대신 국회가 협정문을 평가·검증할 것이란 기대는 공허하다. 국회에 한-미FTA특위가 꾸려져 있지만, 의미 있는 활동을 한 적이 없다. 아무런 법적 결정권을 쥐고 있지 못한 데 따른 당연한 결과다. 협상 타결 뒤 각종 여론조사에서 드러났듯, 60% 안팎의 국회의원들이 여론의 눈치를 살피며 찬반 태도를 유보한 이른바 ‘같기도 의원’들이라는 사실에서 국회의 한계는 뚜렷하다. 더욱이 국회의원들 손에는 언론 브리핑 이상의 자료가 쥐어져 있지 않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는 “한-미 FTA 규정은 헌법에 위반되는 게 많고,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예컨대 투자자-국가소송제의 경우, ‘소송에서 국가가 패소해 미국 투자자들에게 보상해주는 경우 헌법에 따른 재산권 보상 범위를 넘어서고 내국민 차별로 헌법의 평등권을 해친다’는 것이다. 한-미 FTA 서비스 부문에서 ‘현재 유보’로 나타나 있는 ‘래칫 조항’(개방의 폭을 좁히는 쪽으로는 법·제도를 바꿀 수 없도록 한 역진 방지 장치) 또한 다양한 사회·경제적 현안을 법의 제·개정으로 담아내는 국회의 입법 활동을 무력화하는 위헌적 요소를 안고 있다고 한 교수는 설명한다.

조약 그 자체가 또 하나의 국내법이 된다

한-미 FTA가 위헌성을 안고 있다는 주장의 더 근본적인 뿌리는 ‘비준 동의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방식으로 협정문이 발효된다는 점이다. 미국은 외국과 맺은 조약을 국내에 적용하기 전에 ‘이행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상정해 처리하는 절차를 밟는다. 이 두 방식에서 비롯되는 차이는 중대하다. 한-미 FTA와 충돌하는 기존 국내 법규들의 운명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협정문에 담겨 있는 내용들을 통째로 하나의 이행법안으로 만든다. 이 과정에서 개별 조항이 기존 법 체계와 상충하는 문제점을 해소해나간다. 한-미 관계의 특수성에 비춰 협정문의 내용 일부가 기존 법과 충돌했을 경우 협정문의 내용이 이행법안에서 미국에 유리한 쪽으로 바뀔 수 있다는 관측은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반면, 국회에서 비준 동의안을 처리하는 우리 방식에선 ‘조약 그 자체’가 국내 법률과 똑같은 반열인 ‘또 하나의 국내법’이 된다. 더구나 그 법은 이미 있던 ‘구법’보다 효력에서 앞서는 ‘신법’이다. 한-미 FTA에 따라 무려 100가지를 웃도는 국내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던 걸 빈말로 돌리기 어렵다. 미국에선 물론, 이런 일이 없다. 미국 의회는 기존 법률 사항은 못 바꾼다고 일찌감치 못박은 바 있다. 우리나라의 국회 또한 이행법안을 만드는 방식으로 한-미 FTA 협정문을 처리할 수 있지만, 통상 협정문을 다뤄온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의지·역량으로 보아 불가능한 일로 여겨진다.

협상의 시작부터 타결 때까지, 또 평가와 검증 과정에서도 배제돼 있는 국민들이 한-미 FTA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적 통로로 남은 건 국민투표뿐인 듯하다. 한-미 FTA 반대 진영과 국회 일부에서 대통령의 서명 전에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주장이 이미 나오고 있다. 한상희 교수는 “우리나라 경제·사회 구조와 국가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 틀까지 바꾸는 것이니 당연히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헌법 72조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 교수는 “(국민투표에서) 부결되면 부결되는 대로 좋고, 가결되면 또 그것대로 정치적인 논란을 해소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협정문 공개에 따라 형성될 여론에 영향 받아

<한겨레>가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플러스에 의뢰해 4월3일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국민투표 실시 주장에 “공감한다”는 응답은 약 60%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FTA를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진영에서조차 국민투표 실시에 대해선 양론이 팽팽하다. 한-미FTA반대 범국민운동본부 내부에선 “광범위한 대중들을 묶을 방법은 국민투표뿐”이라는 의견과 “대통령에게 (국민투표 실시를) 청원하는 형식인데다,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는 반대론이 맞서 있다.

국민투표 주장은 앞으로 있을 국회 논의 과정과 언론·시민 단체의 문제 제기로 협정문의 구체적인 사실들이 좀더 드러나면서 형성될 여론의 지형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미 FTA를 밀어붙이는 정부 쪽이 평가와 검증을 받기도 전에 ‘미국에 판정승했다’는 제목을 단 스팸메일을 무더기로 살포하는 건 이런 사정 때문일 터이다. ‘협상 타결’이라는 ‘그들의 합창’을 ‘우리의 화음’으로 바꿔내려면 진실을 캐내는 과정의 ‘불협화음’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국민투표 공감한다” 60% 공감하지 않는 비율이 더 높은 연령대는 50대가 유일 ▣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정식으로 맺기 전에 국민투표에 부쳐야 하는지에 대한 국민여론은 “공감한다”는 쪽이 6 대 4 정도로 우세하게 나타났다. <한겨레>가 지난 4월3일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플러스에 맡겨 전국 19살 이상 남녀 1천 명을 상대로 전화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국민투표 실시 주장에 “매우 공감한다” 12.4%, “공감하는 편이다” 46.5% 등 “공감한다”는 답변이 58.9%에 이르렀다. 반면 “전혀 공감하지 않는다” 10.4%, “공감하지 않는 편이다” 27.7% 등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38.1%였다. 연령별로는 젊을수록 국민투표 실시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29살 이하에선 “공감한다”는 비율이 76.5%였으며, 30대 62.6%, 40대 55.5%, 50대 44.8%, 60대 이상 45.9%였다. 유일하게 50대에서만 “공감하지 않는다”(51.7%)는 의견이 “공감한다”(44.8%)는 의견보다 많았다. 성별로는 여성의 62.1%가 국민투표 실시에 공감한다고 밝혀 남성의 공감 비율 55.6%보다 높았다. 직업별 조사에선 학생 계층에서 “공감한다”는 비율이 무려 91.4%에 이르러 눈길을 끌었다. “공감한다”는 비율이 주부 계층에선 60.0%, 화이트칼라 57.9%, 블루칼라 56.5%, 농·임·수산업 54.1%, 자영업 50.0% 등으로 나타났다. 학력별로는 대학(대학원) 재학생의 공감 비율이 91.4%로 높다는 점을 빼곤 뚜렷한 특징을 찾기 어려웠다. 대졸(퇴) 이상 55.6%, 고졸 57.7%, 중졸 이하 52.4%였다. 가구 소득을 기준으로 보면 150만~300만원 계층에서 국민투표 공감 비율이 가장 높아 64.6%에 이르렀으며, 300만원 이상 계층은 57.0%, 150만원 미만은 52.6%였다. 출생지별로는 광주·전라 지역이 68.4%로 공감 비율이 가장 높았다. 부산·경남은 59.7%, 경기·인천은 58.4%, 대구·경북 57.0%, 대전·충청 55.7%, 강원·제주 58.4%, 서울 지역은 51.4%였다. 이번 조사의 오차한계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