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5년06월15일 제564호
김우중은 정말 억울한가

논란 속의 귀국을 앞두고 벌인 ‘세계경영’ 찬반 대담
재벌체제의 그림자인가, 해외 네트워크 구축의 선구자인가

▣ 사회·정리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논란의 인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5년8개월에 걸친 나라 밖 도피 생활을 접고 곧 귀국할 분위기다. 김 전 회장의 귀국설은 이전에도 몇 차례 제기된 적이 있지만, 이번엔 소문이 아닌 기정사실로 굳어져 있다. 귀국 시점은 이달 중으로 예상된다.

김 전 회장의 귀국이 임박해지면서 정치권, 재계를 중심으로 그와 대우그룹의 상징인 ‘세계경영’에 대한 재평가 논란이 달아오르고 있다. 외환위기를 불러일으킨 ‘재벌 체제의 모순을 응축한 후진적 경영모델’이란 비판과, 선진국에 뒤처진 한국적 상황에서 해외 네트워크·정보 경쟁력을 가지려 시도한 의미 있는 모델이란 옹호가 맞서 있다. 한때 재계 서열 2위 대우그룹의 수장이었던데다 고속성장 시기의 한국 경제를 상징하는 인물이란 점 때문에 김 전 회장의 귀국을 앞뒤로 논란은 더욱 커질 듯하다.

<한겨레21>은 지난 6월9일 한겨레신문사 5층 회의실에서 김상조 한성대 교수와 조동성 서울대 교수의 대담 자리를 마련해 김우중식 경영모델에 대한 양쪽의 평가와 관점을 살펴보았다. 김 교수는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으로 재벌개혁론을 일관되게 주장해왔고, 조 교수는 한때 대우의 세계경영 모델을 연구 과제로 삼는 등 그동안 비교적 우호적인 태도를 견지해왔다.

“국제화해서 실패한 것이 아니다”


△ (일러스트레이션/ 김원락)

사회 바쁘실 텐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린다. 김우중 전 회장 귀국을 앞두고 ‘김우중식 경영모델’을 둘러싼 재평가 논란이 일고 있다. 김우중식 경영방식에 대한 총론적인 의견을 우선 말씀해주신다면….조동성(이하 조)=제가 전공하는 국제경영전략에서 김우중 회장의 경영모델은 귀중한 연구사례다. 김 회장이 사업을 시작한 1970년대엔 (우리나라에서) 국제화, 세계화라는 단어가 없었다. 세계화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 것은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데, 김 회장은 그보다 20여년 전에 국제화, 세계화를 전제로 사업을 벌인 첫 번째 인물로 봐야 한다.

국제경영학의 중심이론은 다국적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가 성공하는 원인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서양학자들이 만든 표준이론은 그 기업이 자금력, 기술력, 규모의 경제, 브랜드 같은 내부적인 독점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해외에 나가 현지의 어려운 상황과 현지 정부의 규제를 극복해낸다는 것이다. 다분히 선진국의 논리다. 그런 독점적 능력이 없는 나라의 기업은 해외 진출 하지 말라는 얘기다. 그러면 후진국은 밤낮 선진국 기업을 종속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해야 하나? 기존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후진국, 개도국도 해외에 진출해 성공할 수 있다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사회 어떤 모델 말인가.

조 저는 김우중 회장의 자동차 산업 모델로 그 이론을 개발하고 싶어 김 회장을 모델로 삼아 원인과 결과를 뒤집어봤다. 해외 투자 해야 독점적 우위가 생긴다고 표준이론의 원인과 결과를 뒤집어보자는 것이었다. 대우자동차는 해외에 진출하면서 현대자동차보다 빨리 해외에 10개 정도의 거점을 찾아 각각 생산기지를 구축했다. 폴란드, 인도, 미국, 루마니아 등에 생산기지를 설립할 계획을 세우고 그 중 5~6군데는 행동에 옮겼다. 이렇게 해외 투자를 하니 그 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세계적인 부품회사들이 갑자기 대우에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했다. 또 해외 생산기지가 만들어지니 시장도 그만큼 생겨나고 언론·소비자에 알려지면서 브랜드 가치가 올라갔다. 해외 투자를 하지 않으면 형성되지 않았을 능력이 생겨난 거다. 대우 모델은 결과적으로 실패했지만 국제화해서 실패한 게 아니다. 자금조달의 투명성, 이런 데서 문제가 생겨 좋은 방향(국제화)으로 가는 것까지 망가져 아쉽다.

워크홀릭, 황제식 독단경영


△ 김상조_한성대 교수(43 ·무역학). (사진/ 곽윤섭 기자)

김상조(이하 김) 제가 보기엔 대우의 세계경영에는 두 가지 특징적인 요소가 있다. 하나는 우리가 만들어 팔 물건은 하이테크가 아니라 ‘미들테크’(중급기술)라고 상정한 점이다. 대우전자의 ‘탱크주의’로 잘 표현됐듯 첨단의 복잡한 제품 말고 우리가 잘할 수 있는 평범한 중급 기술의 중저가 제품으로 특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물건을 내다팔 시장은 선진국이 아닌 이제 막 궤도에 오르는 중국, 인도 등 니치마켓(틈새시장)으로 잡고 해외 거점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전략이다. 두 가지 전략적 측면에서 ‘장사꾼’의 면모를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전략을 추구하는 기반이 얼마나 있었느냐다. 자금 조달 문제가 가장 컸다. 제가 알기로 대우자동차는 5년 만에 해외 공장을 15개나 만들었는데,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 폴란드 법인인 FSO만 가동률 60%대였고, 나머지는 20% 안팎이었다. 거기서 나오는 손실을 경상이익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러니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돼 영업 전략을 뒷받침할 파이낸스(자금조달) 기능이 취약해졌다. 두 번째 문제는 기업의 의사결정과 지배구조 문제를 꼽을 수 있다. 흔히 김우중 회장을 ‘워크홀릭’(일중독자)이라고 하는데, 이는 어떤 면에서 대우그룹의 모든 정보와 의사결정을 김우중 회장 한 사람이 독점하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룹 전체의 경영 상황을 구조조정본부장도 모르는 의사결정권의 독점, 황제식 독단경영의 지배구조 문제가 심각했다. 위기 징후가 발생했을 때 파국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세계경영 전략은 제품 전략이나 마케팅 전략에선 탁월하나 재무구조나 지배구조에서 허술했다.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농후했다고 본다.

조 1995년엔가 페루에 간 적이 있다. 페루 정정이 불안할 때였다. 왜, 영화 <레옹>에서 여주인공 마틸다가 레옹에게 직업을 물어보니까 ‘클리너’(살인청부업자)라고 하지 않나. 그 클리너란 직업이 있을 정도로 페루는 혼란스러웠다. 당시 페루에는 삼성, 현대, LG도 진출해 있었는데, 자동차·가전에서 대우가 압도적으로 1등을 하고 있더라. 삼성, LG는 현지인들을 활용했는데, 대우맨들은 달랐다. 접근 자세에 차이가 있다. 후지모리가 실각했다 다시 정권을 잡는 과정에서 외국기업들이 다 도망갔는데, 그때 대우는 신문에 광고를 크게 내 ‘페루의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다’며 강한 인상을 남기고 현지에서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했다. 영업쪽에선 그런 탁월한 면이 있었다. 개도국인 우크라이나,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삼성, LG, 현대보다 높은 브랜드 파워를 갖게 된 건 그런 적극적인 영업 때문이었다. 이런 건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정부가 대우만 미워했다?


△ 조동성_서울대 교슈(56 ·경영학). (사진/ 곽윤섭 기자)

사회 대우그룹이 몰락한 원인을 두고 김우중 전 회장을 옹호하는 쪽에선 바깥 환경 탓으로 돌리는 듯하다. 심지어 정권에 의해 타살당했다는 주장까지 나오는데, 두분 생각은 어떤가.

조 1997년에 겪은 경제위기는 우리나라가 후진국에서 개도국까지 올 때 사용한 재벌체제를 독립경영, 전문경영 체제로 대체해나갈 절호의 기회였다. 그 기회를 (결과적으로) 실천한 게 대우그룹이다. 약간 실천한 게 현대그룹이고. 후진국에서 개도국까지 올 때와,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갈 때의 성장 모델과 기업 역할은 다르다. 개도국은 자본의 집적을 통한 투자가 중요하나,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갈 땐 경쟁력이다. 재벌체제는 근본적으로 경쟁을 회피하고 경쟁자를 없앰으로써 독점력을 유지하는 성향이 있다. 대우그룹에서 살아남은 기업의 시가총액을 따지니 5배가량 늘었다고 한다. 독립경영의 성과다. 대우그룹은 분산됐지만 기업들은 존재한다. 김우중 회장이 사라진 뒤 갈 길로 간 것으로 봐야 한다.

김 대우 사태 당시 우리 경제와 대우그룹을 지칭한 유행어가 ‘자전거 경제’였다. 달리는 자전거처럼 (끊임없이) 차입하지 않으면 굴러가지 못하는 구조였다. ‘강시기업’이라고도 했다. 재무적으로 디폴트(빚갚을 능력 상실) 상태여서 사실상 죽었다는 것이다. 1998년 10월 노무라증권이 대우에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그 이전에도 많은 이들이 대우는 디폴트 상태로 봤다. 대우그룹 처지에서 봤을 땐 (금융권에서) 돈줄을 잘라서 망했다고 억울해할지 몰라도 타살 주장은 어폐가 있다. 당시 대우그룹의 총자산은 100조원에 이르렀다. 당시 환율로 계산하면 800억달러 수준이다. 2000년 부도난 (미국의 에너지기업) 엔론 700억달러보다 큰 규모다. 워크아웃(채무재조정) 역사상 세계 최대다. 최대 규모의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정부 당국이 법률적 근거를 못 갖춘 측면이 있지만, 그것 때문에 대우가 망했다고 할 수는 없다.

조 정부 잘못은 이런 거다. 당시 ‘강시’ 상태였던 회사가 대우만은 아니었다. 똑같이 일관성 있게 잣대를 댔더라면 더 많은 기업들이 무너졌을 거다. 명쾌한 기준과 철저한 적용에 따라 똑같은 기준으로 똑같이 처리했어야 하는데, 일부 기업은 죽고, 어떤 기업은 살려놓으니 억울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거다. 정부가 좀더 철저하게 기준을 적용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법·제도적 기준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소수 인원이 처리했다는 점에서 이해는 할 수 있어도 책임은 있다고 봐야 한다.


△ '세계경영'은 무엇을 남겼는가. 1999년 3월에 열린 대우그룹 창사 32주년 기념식. (사진/ 박승화 기자)

‘김우중 사면론’을 어떻게 볼 것인가

사회 김우중 전 회장을 옹호하는 쪽에선 대우건설, 대우조선 등 옛 대우 계열사들의 경영 호전을, 대우 브랜드의 힘과 김 전 회장 시절에 구축한 해외 네트워크의 강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얘기한다. 대우 해체는 성급한 결정이었다는 주장도 그와 맥을 같이한다.

김 진실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워크아웃에 들어간 90여개 기업 중 대우 계열은 12개였는데, 대우 계열 워크아웃은 회사 분할 방식이란 특징이 있다. 다들 아는 것처럼 부실 자산을 잔존법인으로 몰아넣고 수익을 내는 부분을 별도 회사로 쪼개는 방식이다. 새로 만드는 회사에는 부채 탕감, 채무상환 유예, 출자전환 등을 통해 업체별로 많게는 5조원, 적게는 2조원의 금융 지원을 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대우건설, 대우조선 등이 살아났다. 대우 계열사들이 재무적으로 회생하는 데 30조원을 웃도는 공적자금을 집어넣었다. 공적자금 투입과 종업원들의 희생을 거쳐 살아난 것이다.

조 김우중 회장의 장점 중 하나가 탁월한 역량의 사람들을 많이 모아놨다는 거다. 잠재적인 역량이 있었다. 대우맨들이 자부심과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걸 봤다. 다만, 김우중 회장이 모든 걸 혼자서 좌지우지하며 의사결정을 하다 보니 문제가 됐다. 대우맨들은 과거의 향수에 젖어 있을 필요가 없다. 전문경영인들은 이제 하고 싶은 경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사회 김 전 회장이 귀국하기도 전에 일각에선 사면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사면론에 대한 의견은 어떤가.

김 김 전 회장에 대한 재평가를 얘기하는데, ‘평가’부터 해야 한다. 언제 제대로 된 평가를 해본 적이 있나. 평가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사법적 판단이다. 개인에 대한 동정심으로 선처를 호소하는 것 같은데 진실을 알고 난 뒤 그 위에서 엄정한 사법적 판단부터 해야 한다.


△ 대우의 세계경영에 우호적 태도를 견지해온 조동성 교수(왼쪽)와 재벌 개혁을 주장해온 김상조 교수. 대우그룹이 남긴 것은 무엇일까. (사진/ 곽윤섭 기자)

조 재벌 총수건 일반 경영인이었건 평등한 입장에서 법의 판결을 받아 감당해야 한다. 법의 결정에 따라 깨끗하게 풀려나면 그것 또한 인정해야 한다. 사법적 판단이 끝날 때까지는 국민들, 숨죽이고 바라봐야 한다. 경영, 경제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얘기할 수 있지만….

김 이한구 의원(한나라당)이 인터뷰하는 걸 들었는데, ‘김우중 회장 귀국하면 잠 못 이룰 분 많을 거다’라고 하더라. 정부의 잘못 등에 대해 김 회장이 입을 여는 순간 다치는 이들 많다는, 이른바 ‘김우중 리스트’가 있다는 얘기도 들렸다. 입을 다무는 대가로 사면해달라는 ‘바기닝’(협상)을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방식으로 가면 역사적 진실은 은폐되고, 법적인 형평성이 훼손된다. 리스트가 있다면, 흥정하지 말고 과거의 잘못을 세상에 모두 밝히는 게 (우리 사회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것이다.

조 사면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사법적 절차 뒤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상황을 고려해 사면권을 행사할지는 대통령 몫이다. 국민의 권리·의무를 벗어나는 영역이다.

김 사법부의 권위와 판단을 존중해야 하고 대통령의 사면권도 고유 권한이지만, 현 정부 들어 경제인들의 범죄에 대해 사면권을 남발했다.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대선 불법자금 연루자들을 두세달 만에 다 사면했다. 이것은 사면권 남용이다. 적어도 일정한 기간은 지나야 한다. 임기 내에 발생한 것은 당시 대통령이 행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창업자의 신화 보여준 모범사례


△ 김우중씨는 세계화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세계화를 전제로 사업을 벌였다. 대우그룹 회장시절 전용기에서 내려 생산 현장으로 가고 있는 김우중씨. (사진/ 하이대우)

사회 대우 세계경영에 대해 조 교수가 ‘과’를, 김 교수가 ‘공’을 한 가지씩 말해줄 수 있을지….

조 (웃으며) 불공평한 질문이다. 나도 공만 말한 게 아니라 과도 얘기했는데.

김 재계 서열 2위까지 그룹을 키워 젊은이들한테 창업자의 신화를 보여줬다. 1980년대 들어 우리 사회에서 신설 기업이 한국을 대표하는 예가 없어진다는 아쉬움이 든다. 계열 분리하면서 나온 건 있지만, 빌 게이츠처럼 성장하는 예를 찾아볼 수 없다. 한국 경제의 모빌리티(성장동력)가 감소하는 불길한 징조인 듯해 걱정스럽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합법의 테두리 속에서 맨손으로 일어서 아이디어와 근면·성실로 성공할 수 있는 질서를 마련해주는 것이라고 본다.

조 김우중 회장 인터뷰를 여러 번 했고, 미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강의도 여러 번 했다. 김우중 회장의 미래 설계에 대한 인터뷰 당시 그는 ‘이 회사를 떠나 새롭게 제2의 사업을 벌여 일본 소니나 독일의 라이카 같은 최고 브랜드를 만들어놓고 인생을 끝내겠다’고 했다. 그게 1983년쯤이었다. 그때 전문경영인에 넘겨주고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기술에 집중했으면 멋진 무대에 오를 수 있었을 텐데, 첫 번째 무대에서 너무 오래 끌었다.

사회 마지막으로 대우 사태 및 김우중 전 회장 재평가 논란과 관련해 새겨야 할 교훈이 있다면.

김 왜 하필 이 시점에서 대우맨들이 김 회장의 재평가 얘기를 꺼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떤 면에서 참여정부의 경제정책, 재벌정책이 그런 배경을 만들어주고 있다. 참여정부가 ‘경제 살리기’라는 단기 목표에 집중하면서 재벌 문제에 손을 놓았다. 재벌의 투자를 구걸하기 위해 경제인들을 사면해주고, ‘삼성공화국’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삼성의 의도대로 경제질서가 만들어지는 상황이다. 이게 김우중 회장의 귀국을 통해 사회적으로 재평가·신임을 받자는 움직임으로 귀결되고 있다고 본다.

조 김 회장은 극과 극의 인물이다. 우리 사회에 긍정적 모델을 제시해준 동시에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일도 했다. 평균치 하나로 평가할 분이 아니고, 이번 기회에 공과를 분명히 가려 공과 모두에서 배우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공과를 균형 있게 따져 거기서 배우는 것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 수고 많으셨다. 대담 참여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