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노무현 대통령’ 예언했던 <한겨레21> ‘차세대 리더 여론조사’… 이회창 · 정몽준 4 · 5위로 건재 과시
 |
 | |
<한겨레21>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1999년 7월1일치 제264호에 ‘대중이 선호하는 차세대 리더 여론조사’를 실시해 보도했다. 그 결과 노무현 당시 국회의원이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었음에도 당당히 ‘대중적 지지도’ 1위를 차지했다. 그 뒤로 그는 대통령 자리를 거머쥠으로써 당시 <한겨레21> 조사에서 확인된 잠재력을 입증했다. <한겨레21>은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04년 9월 같은 기법으로 2차 조사를 했다. 조사 방법은 정치인의 호감도(그 인물을 좋아하느냐)와 능력평가(나랏일을 하는 데 유능하다고 생각하느냐)를 물어 긍정평가 측정치를 같은 비중으로 합산한다는 점에서 5년 전과 거의 같았다. 조사대상자 31명은 <한겨레21> 취재진이 정치권 내 위상과 각종 여론조사 추이를 고려해 선정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9월14일, <한겨레21>이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플러스’에 맡겨 전국 성인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자료 수집은 전화면접을 통해서 이뤄졌다. 이번 조사의 오차한계는 95% 신뢰수준에서 ±3.7%포인트이다. - 편집자
| |  |
 |
▣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이번 조사에선 고건 전 국무총리가 호감도 58.1%, 능력평가 61.9%, 두 척도의 평균값 60.0%로 1위에 우뚝 올라섰다. “고건씨 어때요?”라고 물었을 때 국민들 열 사람 가운데 여섯 사람은 호감도 느끼고 능력도 있다고 평가한다는 이야기다. 그의 성적표는 2위 강금실 전 법무장관(47.3%), 3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46.5%)의 그것에 비해서도 상당한 격차로 앞섰다. 고 전 총리는 1999년의 같은 조사에서 6위에 머문 바 있다.

△ 고건 전 국무총리(사진/박승화기자), 강금실 전 법무장관(사진/한겨레 김종수기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사진/박승화기자). (왼쪽부터)
|
‘고건 대망론’ 예고하는가
그의 상승세는 일차적으로 참여정부 첫 국무총리를 큰 흠 없이 치러낸 덕분으로 분석된다. 그는 1년여 동안 총리직, 나중에는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수행하면서 그동안 쌓아온 ‘행정의 달인’ 이미지를 한층 강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 자신이나 주변 인물이 도덕성 문제로 시비를 빚은 바 없으며, 말실수 따위로 세간의 비난을 받은 일도 없었다. 총리 및 대통령 권한대행 시절에 그의 ‘고유 업적’이 무엇인지가 다소 의문스럽긴 하다. 그러나 ‘행정의 달인’ 이미지는 본디 ‘튀어서’ 업적을 낸다고 해서 쌓이는 게 아니었다.
그의 상승세는 노 대통령의 궁색한 처지에서 반사이익을 얻은 측면도 있다. 노 대통령이 여러 국정 현안들에 대해 직설적으로 발언하다 종종 공격받고 그러다 보니 지지율이 떨어진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노 대통령은 애초 고 총리를 지명할 때 ‘몽돌과 받침돌 이론’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노 대통령이 몽돌처럼 ‘뾰죽하게 튈’ 때, 고 전 총리가 안정감 있는 받침돌 노릇을 하면서 정치적 수혜자가 되었다는 분석이다.
고 전 총리는 현재 어느 정당에도 몸담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가 외견상 일체의 정치적 행보를 하지 않으면서 내심으로는 ‘기다림의 정치’를 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정치권에는 많다. 즉, 2007년 대선 무렵 이합집산의 소용돌이와 함께 어느 정치세력에선가 ‘고건 대망론’이 나올 가능성을 엿보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다.
그의 지지도에서는 복잡한 정치적 함축도 발견된다. 지지정당별로 볼 때 열린우리당 지지자는 59.1%가 그에게 호감도를 표시했다. 반면에 한나라당 지지자는 그보다 많은 64.6%가 호감도를 나타냈다.
이 지표는 그가 어느 정당 지지자한테서나 두루 호감을 사는 좋은 ‘상품’임을 뜻한다. 반면에 뚜렷한 정체성이 없기 때문에 ‘실전 경쟁력’이 약할 것이라는 근거로도 해석된다. 특히 열린우리당보다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좀더 선호한다는 점은 ‘반노무현 정서’가 그의 지지세에 한 축이 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실제로 그는 총리직 막판에 청와대쪽의 후임 각료 추천 요청을 반공개적으로 거부함으로써 ‘대통령을 들이받는’ 정치적 모양새를 만든 바 있다.
강금실 전 장관은 같은 여성으로서 박근혜 대표를 제치고 2위를 차지했다. 그는 호감도 44.9%, 능력평가 49.7%로 종합 성적 47.3%를 받았다. 그의 성적에서 능력평가가 호감도를 앞선 것은 다소 뜻밖이다. 국민들이 그를 단순히 여성으로서의 매력뿐 아니라 일도 잘하는 사람으로 알아주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쪽의 거듭된 영입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발 담그기를 완강히 거절했다. 그 뒤로도 그가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고 볼 근거가 적기 때문에 ‘강금실 2위’의 ‘정치적 의미’는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다.
이회창 · 정몽준 · 이인제의 엇갈린 명암
박근혜 대표는 예상과 달리 종합 성적 46.5%로 3위에 머물렀다. 예상과 다르다는 것은 박 대표가 최근 다른 기관들의 여론조사에서 현역 정치인 가운데선 늘 지지도 1위를 차지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겨레21>은 다른 기관들과 달리 고 전 총리, 강 전 장관을 조사대상에 포함시켰는데, 그 결과 박 대표는 3위로 밀려났다.
박 대표의 ‘부진한’ 성적표는 지난 한달여 동안의 행보를 반영한 측면도 있다. 박 대표는 7월 말부터 국가 정체성 논쟁, 국가보안법 폐지 철회 투쟁 등에 ‘올인’해왔다. 그러나 이런 행보는 그를 인기 절정으로 끌어올렸던 ‘상생의 정치’ ‘부드러운 리더십’ 따위와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그의 지지도가 정체 또는 하락 상태에 있는 것은 이에 따른 이미지 혼란 탓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조사대상 정치인들은 호감도보다는 능력평가 지수가 조금씩 높은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박 대표는 호감도 46.6%, 능력평가 46.3%로 ‘능력평가-호감도=-0.3%’로 나타났다. 그가 나름의 매력은 유지하되, 정국 운영에선 아직 능력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 아니냐는 분석이 가능하다.
2002년 대선의 주요 플레이어였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정몽준 의원, 이인제 자민련 의원은 명암이 엇갈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전 총재는 정계 은퇴를 선언한 상태다. 그러나 <한겨레21>은 그의 정치적 생명이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라고 보고 조사대상에 포함했다. 그 결과 그는 종합 성적 33.8%로 4위에 랭크됐다. 그러나 그는 호감도 25.7%, 능력평가 41.9%로 능력평가에 비해 호감도가 드물게 낮게 나왔다. 두 차례의 대선 출마 과정에서 입은 정치적 상처가 덜 아문 탓으로 읽혔다.
정몽준·이인제 의원은 나란히 2002년 대선의 최대 ‘실패자’로 꼽힌다. 그러나 정 의원은 종합 성적 32.4%로 5위에 포진함으로써 여전한 정치적 잠재력을 과시했다. 이는 2002년 대선 막판 노무현 후보 지지 철회, 노 후보 당선 뒤 ‘지지 철회 사과’ 등의 오락가락 행보로 이미지를 구긴 데 비춰보면 다소 뜻밖의 성적이다. 그러나 그는 대선 뒤 발빠르게 정당 활동에서 손을 떼고 스포츠 외교에 전념한다는 등의 ‘질서 있는 후퇴’ 덕분에 나름의 이미지를 유지한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에 이인제 의원은 종합 순위 22위로 급전직하했다. 1999년의 <한겨레21> 조사에서 3위를 차지했으며, 한동안 여권의 유일 대안으로 꼽혔던 그로서는 ‘정치 무상’을 느낄 법한 결과다.
이명박 · 추미애 · 이해찬 8 · 9 · 10위 랭크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열린우리당 소속 정치인 가운데선 1위지만 전체 순위로는 6위(31.0%)에 그쳤다. 그가 1999년의 같은 조사에서 5위였음에 비춰보면 5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한 셈이다. 당시 신선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유망주로 떠오른 뒤로 탄력을 이어가지 못하는 모습이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종합 성적 26.2%로 7위에 올랐다. 그가 상위 랭커로 포진한 것은 대선 출마를 거듭하면서 인지도와 호감도를 꾸준히 끌어올린 결과로 분석된다.
이 밖에 이명박 서울시장, 추미애 민주당 전 의원, 이해찬 국무총리가 8, 9, 10위로 상위 10걸 대열에 들었다.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대중적 지지도 상위 10걸이 차기 대선구도에서 일차적으로 의미 있는 플레이어가 될 것임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제왕적 총재가 당권을 쥐고 후계자의 길을 닦아주는 시대가 일찌감치 끝난 마당에, 대중적 지지도가 가장 유력한 경쟁력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상위 10걸 분포에는 또 한 가지 의미도 담긴 것 같다. 그것은 고 전 총리, 강 전 장관 같은 무당파 인사들이 1, 2위를 차지한 반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정규 주자’들이 의외로 부진하다는 점이다.
그 배경으로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강한 불신 때문에 정당에 몸담은 사람이 손해볼 수 있다는 점이 꼽힌다. 정몽준 의원이 그런대로 현상 유지를 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구도는 현 정치권의 차기 대선 경쟁구도에 상당한 불안정성이 내재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제1당, 제2당의 선두주자가 무당파 인사들에게 종합 순위 1, 2위를 내주고 있다면 그 정당 내부에서 “우리의 아무개 갖고 되겠나?”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