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4년09월01일 제525호
헌법은 칼이었다

1948년 제정 이후 1987년까지 9차례나 개정된 역사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대한민국 헌법은 1948년에 제정됐고, 87년까지 9차례 개정됐다. 헌법은 전문과 총강, 국민의 권리와 의무, 국회, 정부 등 10장으로 이루어진 전문 130조와 부칙으로 구성돼 있다. 유진오 박사가 기초한 제헌 헌법에는 근로자의 이익균점권 등이 명시돼 있었다. 지금껏 가장 급진적인 헌법이었다는 평가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는 “해방 직후 한반도에 강하게 자리잡았던 사회주의적 전통의 반영”이라고 평가한다. 반면 한상범 동국대 명예교수는 “헌법이 새 나라 건설의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상반된 평가를 내린다.


△ 최근 들어 헌법을 쉽게 풀어쓴 교양서적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사진/ 박항구 기자)

헌법은 이승만 시대에 두 차례, 4·19 이후에 두 차례, 박정희 시대에 세 차례 개정된다. 이승만 정권은 1952년 대통령직선제를 도입하는 개헌을 했다. 당시 의회의 다수가 이승만 반대파여서 의회를 통한 선출보다 직선제가 재선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54년에는 ‘사사오입 개헌’이 진행됐다. 의회 표결에서 개헌 찬성표가 1표 모자라자 사사오입 원리를 억지로 끌어들여 개헌을 강행한 사건이다. 핵심은 초대 대통령에 한해서 중임제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4·19 혁명의 결과로 1960년 6월 의원내각제를 중심으로 한 제2공화국 헌법이 선포되지만 3차 개헌이 4·19 혁명의 마무리 개헌으로 부족하다는 혁명세력의 요구로 그해 11월 4차 개헌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3·15 부정선거 주동자 처벌, 반민족적 재벌 등의 재산 환수 조치 등을 내용으로 한 4차 헌법은 5·16 쿠데타로 단명에 그친다. 그리고 박정희 시대가 열린다. 박정희 정권은 61년, 69년, 72년에 개헌을 했다. 72년 개헌은 유신헌법으로 불린다. 박정희의 영구 집권을 꾀한 유신헌법은 대통령직선제를 통일주체 국민회의에 의한 간접 선출로 바꾸었다. 80년에는 신군부가 8차 개헌을 강행했다. 신군부는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들불처럼 일어난 87년 6월항쟁에 굴복해 87년 9차 개헌에 동의했다.

독재권력은 자신들을 위한 권력구조 개편을 희석하기 위해 개헌 때마다 기본권 조항을 생색내기용으로 삽입했다. 3공화국 헌법에는 10조 인간의 존엄과 가치 조항이 삽입됐다. 80년 전두환 헌법에도 행복추구권이 추가됐다. 헌법이 권력의 ‘장식’에 불과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 헌법에서 따온 장식용 기본권 조항이 쌓이고 쌓인 결과 대한민국 헌법은 외국 헌법에 비해 손색없는 모양새를 갖추는 아이러니가 연출됐다. 하지만 권력이 헌법을 휘두르는 가운데 헌법 존중의 풍토는 자리잡지 못했다. 김종철 교수는 “미국은 200년 넘게 제헌 헌법의 틀을 지켜오고 있다”며 “헌법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헌법의 안정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에서 헌법은 세속의 성경이고 시민 종교”라며 “미 연방대법관은 성경을 해석하는 성직자에 비유된다”고 전했다. 반면 대한민국 헌법은 정치의 외풍에 시달리며 영혼을 잃어버렸다.

* 참고서적 <헌법 이야기>(한상범 지음, 현암사 출판), <헌법의 풍경>(김두식 지음, 교양인 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