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4년03월02일 제499호
민주당 분당 ‘진짜생각’ 첫 공개

‘대북송금 사면 의미’설명도 처음… ‘정상회담 통한 북핵 돌파구 모색론’ 강하게 반박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노무현 대통령은 <한겨레21>과의 인터뷰를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나름의 해법을 제시했으며, 대북송금과 특검에 대해 재평가를 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또 관권선거 논란을 빚고 있는 총선 전 열린우리당 입당과 지지 표시에 대해서도 입장을 분명히 했으며, 자신의 이념적 좌표에 대한 고민도 털어놨다. 인터뷰를 통해 나타난 노 대통령의 주요 발언의 의미를 정리한다.


△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입당과 지지표명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은, 상 · 하원 의원을 뽑는 중간선거 등이 닥쳤을 때 현직 대통령이 자연스럽게 지원유세를 다니는 미국식 선거문화를 염두에 둔 것으로 분석된다.(이용호 기자)

정상회담론, 소모적 논쟁 차단 시도

노 대통령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정상회담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 지금까지는 “남북 정상회담은 저도 하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이 게임을 하고 있고 다른 4개국이 참여해 전략적 게임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6자회담 틀 먼저’ ‘남북 정상회담 나중’이라는 입장을 대체로 견지해왔다. 그러나 이번 인터뷰에선 “북핵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정상회담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며 한결 강한 어조로 ‘정상회담을 통한 북핵 돌파구 모색론’을 반박했다. ‘북-미간 해결’에 무게는 두되, 남북 정상회담을 독자적으로 추진할 여지도 완전히 닫아두진 않는 것으로 보였던 기존 입장과 비교해 어감이 다른 발언을 한 셈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국제사회의 역학상 ‘정상회담을 통한 북핵 돌파구 모색론’에 현실성이 없는데도 열린우리당을 비롯해 국내 정치권과 학계 일각에서 끊임없이 같은 주장이 제기되는 것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설명했다. 즉, 이 문제를 둘러싸고 더 이상 소모적인 논쟁이 계속되지 않길 바라는 강력한 희망이 담겼다는 이야기다.

노 대통령의 강한 어조 이면에는 2차 베이징 6자회담에서 우리 정부의 기대와 달리 ‘실질적인’ 진전은 이뤄지지 않은 사정에 대한 유감 표시도 함께 담긴 것으로 분석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이번 회담에 앞서 우리 외교부에 과거보다도 좀더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는 등 기대감을 표시했다”며 “그러나 북-미가 합리적으로 한 발짝씩 양보하고 절충하지 못한 결과에 대통령이 실망한 듯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강한 어조에도 불구하고, 북핵 문제에 일정한 진전이 생기고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문제 해결을 촉진할 여건이 조성될 경우에까지 정상회담 가능성을 원천 배제하는 것은 아니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북핵 문제의 완전한 해결 이전에라도 일정한 전환점이 생기면 남북 정상회담이 다시 유용한 카드가 될 수 있다”며 “노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국제사회를 향한 새로운 메시지보다는 국내의 논쟁을 겨냥한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대북송금 특검과 관련한 노 대통령의 발언은 자신의 의도와 달리 대북송금 사건 특검수사를 통해 남북 정상회담, 햇볕정책 등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결과적으로 실추된 것에 대해 나름대로 ‘명예회복’을 꾀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17대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대선 당시 자신을 지지했던 세력 내부의 분열상을 아우르려는 고려도 작용한 것으로 읽힌다. 대북송금 사건 관련자 사면 방침은 청와대 실무선에서 이미 밝힌 바 있으나, 노 대통령이 공식 발언을 통해 사면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통령에게도 정치적 자유를 달라

이와 함께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입당과 지지표명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은, 상·하원 의원을 뽑는 중간선거 등이 닥쳤을 때 현직 대통령이 자연스럽게 지원유세를 다니는 미국식 선거문화를 염두에 둔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은 대통령이 자신의 정책에 대한 지지기반 확대 차원에서 선거지원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는데,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던 선거에 정부 조직을 활용하는 문화가 정착된 편이다.

이런 맥락에서 노 대통령은 “(대통령에게서) 특권을 다 빼앗아갔으면 정당한 권리는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즉, 취임 이래 국가정보원·검찰·경찰 등 권력기관을 청와대의 정치적 통제에서 분리해낸 만큼, ‘대통령 개인’은 정치적 의사표시의 자유를 누려도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민주당의 분당 무렵 정치권에선 노 대통령의 의중을 놓고 갖가지 억측이 난무했지만, 청와대는 ‘불관여’ 입장만을 고수하였다. 따라서 애초 민주당의 재창당을 희망했으나 결국에는 신당 창당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노 대통령의 인터뷰 발언은 당시의 ‘진짜 생각’을 처음 공개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노 대통령은 또 “하나하나 정책을 놓고 득실로 평가해야지 좌파냐 우파냐 하는 잣대로 봐선 안 된다”며 “실용주의 노선이나 제3의 길이 이미 일반화됐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한겨레21>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란 형식을 통해 “민영화도 기업에 따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가) 다 다르다”며 “그냥 분포표를 내놓고 좌파적, 우파적이라고 점수를 매기는 방식은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당 출신인 호크 전 오스트레일리아 총리가 우파적 정책과 좌파적 정책을 함께 구사하면서 임기를 잘 수행한 예도 들었다.

이런 발언은 그가 보수진영으로부터는 급진적 인물이라고 공격받고, 개혁진영으로부터는 “대선공약 정신을 벗어나 보수화하고 있다”고 비판받는 가운데 자신의 이념적 좌표를 설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청와대는 그동안 알기 쉽게 “노 대통령은 실용주의자, 합리주의자”라고만 설명해왔다. 하지만 이번 인터뷰 발언을 보면 노 대통령이 영국이나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처럼 기존의 좌파 노선을 수정한 모델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