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01월09일 제49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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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운동 족쇄를 풀어라!

사법부 보수적 판결 · 정치권 시비에 발목 잡혀… 선거법 축소 해석으로 온라인 활동만 보장

지난 2000년 총선에서 정치개혁의 기틀을 다진 낙선운동이 사법부의 보수적 판결과 정치권의 교묘한 ‘발목 잡기’로 올 총선에서는 시련을 예고하고 있다. 최근 서울고법은 한나라당 함종한 원주시 지구당위원장이 “2000년 4·13 총선에서 낙선운동 때문에 떨어졌다”며 전 총선시민연대 공동대표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2심에서 “피고들은 1천만원을 지급하라”고 원심대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낙선운동 때문에 원고가 낙선했는지에 대한 증거는 없지만 피고들의 낙선운동은 한도를 넘은 것으로서 원고의 참정권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 2000년 낙선운동은 최근 사법부의 보수적 판결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난해 8월 총선시민연대 관계자들이 낙선운동 소송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행사에 참가해 ‘정치개혁’을 외치고 있다.(연합)

사법적 ‘흠집내기’로 운신의 폭 좁아

낙선운동이 사법부의 ‘단죄’를 받기 시작한 것은 2000년 하반기부터다. 2000년 7월 광주·전남 총선연대 관계자들이 검찰에 의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뒤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검찰은 정치권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여론의 강한 지지를 받는 낙선운동을 관망하다, 총선이 끝난 뒤 정치인들이 총선연대 관계자들을 고소·고발하자 즉각 수사에 착수해 이들을 기소했다.

이 판결은 2000년 총선에서 낙선 대상자로 지목돼 쓴맛을 본 정치인들에게 ‘호재’가 아닐 수 없었다. 이종찬(민주당), 이사철(한나라당), 김중위(〃) 전 의원 등 낙선 대상자들은 총선연대 관계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잇따라 법원에 냈다. 낙선 대상자들은 또 최열, 박원순씨 등 총선연대 공동대표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현행 선거법이 선거운동의 방법을 지나치게 제한한 점을 악용해 낙선운동에 사법적 ‘흠집’을 냄으로써 다음 선거에서 시민단체들의 발목을 묶어두려는 계산된 조치였다.

검찰은 이런 정치권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대검 공안부는 총선시민연대에 대한 고소·고발 사건과 관련해 2000년 10월 최열 공동대표 등 총선연대 지도부 7명과 지역 총선연대 간부 22명 등 모두 29명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고 179명을 기소유예 또는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은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 대상자 명단 발표에 대해서는 무혐의 결정을 내렸지만, 낙선운동 집회나 거리행진, 서명운동, 문서배포, 피케팅 등은 선거법 위반으로 모두 기소했다.


△ 헌번재판소는 낙선운동을 제한한 선거법 58조, 59조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유권자의 선거 참여를 제한한 판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한겨레 이정용 기자)

검찰의 이런 태도는, 낙선운동의 정당성은 인정하면서도 실정법 위반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 정치권과 여론의 반발을 모두 피해가려는 ‘고육책’의 성격도 강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낙선운동의 본질은 외면한 채 방법상의 문제에만 집착하는 것은 낙선운동을 흠집내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며 반발했다. 검찰에 의해 기소된 총선연대 대표들은 1, 2심에서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고, 이는 민사소송에도 영향을 끼쳐 총선연대 대표들에게 줄줄이 배상 판결이 내려졌다.

2001년 8월 내려진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낙선운동의 입지를 좁게 만들었다. 헌재는 시민단체들이 제기한 헌법소원 심판사건에서 유권자들의 낙선운동을 제한하고 있는 선거법 58조, 59조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낙선운동이 그 주관적인 목적과는 관계없이 실제의 행동방식과 효과에 있어 당선운동과 다를 바 없다”고 밝혔다. 헌재는 또 “낙선운동은 (낙선 대상자가 아닌) 후보자의 입장에서 볼 때는 자신의 선거운동을 대신해주는 결과가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조계 일부에서는 헌재의 시각이 지나치게 후보자의 입장만 고려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의 한 변호사는 “헌재의 시각이 과연 유권자의 참정권 실현을 우선으로 하는 선거법의 기본정신과 헌법정신에 합치하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줄줄이 배상 판결… 낙선운동 본질 외면

시민단체들은 사법부의 이런 태도가 낙선운동의 헌법적 의의 등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한 처사라고 비판한다. 백승헌 변호사는 “낙선운동과 관련된 재판은 많았지만, 낙선운동의 본질에 대해 진지하게 법리적 다툼을 해본 재판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낙선운동에 대한 재판이 유권자의 선거 참여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선거법을 개정하는 계기가 됐어야 하는데, 사법부의 ‘소극적’ 태도로 이를 놓쳤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낙선운동의 정당성이 이미 법적으로 인정됐다고 주장한다. 참여연대 안진걸 간사는 “이미 2000년 총선 전에 시민사회단체가 정당의 후보자 추천에 관한 단순한 지지나 반대 의견 개진 및 의사표시를 할 수 있고, 선거운동 기간 중에도 단체가 그 명의 또는 그 대표의 명의로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를 지지·반대할 것을 권유하는 행위를 할 수 있도록 선거법이 개정됐다”며 “이로써 공천과정에 시민단체가 감시자로 참여하는 등 선거과정에서의 낙선운동은 이미 합법화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사법부가 집회, 거리행진 등 세세한 방법상의 문제에 너무 집착하는 것은 정치개혁을 바라는 여론에 배치된다는 주장이다.

거리행진 벌이며 불복종 운동 전개할 듯

현행 선거법 아래서 낙선운동이 사법적 ‘흠집’을 피하려면 온라인을 이용하는 방법밖에 없다. 인터넷 홈페이지나 이메일을 이용해 낙선 대상자 명단을 유포하는 것만 가능하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낙선운동이 위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게 시민단체들의 생각이다. 투표 참여율이 높은 농촌 지역의 50대 이상 유권자들에게는 거리행진이나 집회와 같은 ‘원시적’ 방법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참여연대 안진걸 간사는 “온라인 등 ‘준법’ 낙선운동이 별 효과가 없으면 2000년 총선 때처럼 선거법 불복종 운동의 형태로 낙선운동을 전개할 수밖에 없다는 게 시민단체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