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미 대선의 주요 변수는 무엇인가…‘당파 싸움’으로 몰고간다면 부시에게 불리
역대 미국 대선을 돌아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1952년 이후 재선에 도전한 현직 대통령 가운데 당내 경선에서 경쟁자가 없었던 이들은 모두 재선에 성공했다. 1956년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1972년의 리처드 닉슨, 1984년의 로널드 레이건, 1992년의 빌 클린턴이 그렇다. 반면에 당내 경쟁자가 있었던 현직 대통령들은 실패했다. 1976년의 제럴드 포드, 1980년의 지미 카터, 1992년의 조지 H. W. 부시가 그런 경우다. 아버지 부시는 1992년 공화당 경선에서 극우 성향인 패트릭 뷰캐넌의 강력한 도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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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 조지 부시 미 대통령 후원회. 부시는 여기서만 160만 달러의 선거자금을 모았다.(corb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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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내 경쟁자 없어 유리한 위치
현직 대통령이 당내 경선에서 경쟁자를 두지 않는다는 건 당 주류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다는 증거다. 경쟁자가 없으면 현직 대통령은 당내 후원자들의 선거자금 지원을 독식할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은 2003년 3/4분기까지, 모은 자금의 17%만 사용했다고 연방선거위원회에 신고했다. 이는 민주당 경선후보들이 대부분 50% 이상을 지출한 것과는 현저한 차이가 난다. 부시로선 당내 경쟁자가 없기에 돈을 움켜쥐고 있다가 결정적 순간에 퍼부을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이 부동층 전략이다. 당내 경쟁자가 없으면 현직 대통령은 이른바 부동층(swing voters)에게 접근하는 데 훨씬 유리하다. 주요 이슈에 대해 공화, 민주 양당의 핵심 당원들과 부동층의 인식엔 상당한 괴리가 있다. 지금의 민주당처럼 후보가 난립하면 모든 후보들은 경선 승리를 위해 당내 핵심 당원들의 지지를 받으려 하고, 그러다보면 정파적 색깔을 훨씬 강하게 띨 수밖에 없다. 하워드 딘 전 버몬트주 지사가 “민주당이 너무 오른쪽으로 가 있다”고 비판하자,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들이 그의 주변에 몰려든 게 단적인 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반작용으로 부동층 유권자들에게 다가가는 데는 어려움이 생긴다. 현재 당내 경쟁자가 없는 부시는 그런 점에서 부동층을 겨냥해 훨씬 유연한 정책들을 내놓을 수 있다.

△ 지난 12월24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테러 경계경보가 강화된 가운데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경찰이 공항 근처 차량을 검색하고 있다. 부시는 위기의 미국을 이끄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강화하려고 한다.(corb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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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조지 부시 대통령은 오는 11월2일 실시되는 대선에서 불패인가.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학의 게리 자콥슨 교수(정치학)는 “부시가 불패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재선에) 상당히 근접해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최근 공개된 각종 여론조사를 보더라도 부시는 경제와 외교 두 부문에서 양 날개를 단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선거만큼 불확실성이 큰 게임도 없다. 부시가 안정적인 재선의 길로 들어서기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핵심은 역설적이게도 미국의 분열이다. 2001년 9·11 동시다발 테러 이후 부시 대통령은 국가 위기 상황을 잘 헤쳐나온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국민통합이란 어젠다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극단적인 평가를 한쪽에서 받고 있는 것이다.
딘을 불안한 후보로 공격하는 전략
최근 부시 대통령 진영은 하워드 딘을 민주당 후보로 상정한 선거전략을 수립했다.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딘을 ‘무모하고 화를 잘 내는 비관적 인물’로 몰아세우는 것이다. 또 하나는 선거전을 부시 개인에 대한 평가가 아닌, 국가의 방향에 대한 신임투표로 몰고 가는 것이다.
부시 진영의 두 가지 전략은 이번 대선의 승패가 어디서 결정될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딘이 민주당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데엔 그의 개인적 카리스마가 크게 작용했다. 솔직하고 과감하고 공격적인 면모가 워싱턴 정치에 싫증이 난 유권자들, 특히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높은 점수를 얻었다. 그러나 동시에 딘의 이런 모습은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경우를 많이 연출했다. 누구보다 많이 설화(舌禍)에 시달린 후보도 딘이었다.
부시 진영은 늦어도 3월부터는 딘의 부정적인 면을 집중 부각할 생각이다. 선거의 막이 채 올라가기도 전에(미국 대선 본선은 7~8월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한다) 유권자들의 머리 속에 “딘은 불안한 후보”라는 인식을 확실하게 심어줄 계획을 세웠다. 엄청난 텔레비전 광고에 필요한 실탄(정치자금)은 이미 차곡차곡 채워둔 상태다.
아이로니컬하긴 하지만, 딘의 그런 면모는 2000년에 유권자들이 부시에게서 느꼈던 것과 유사하다. 부시 역시 대표적인 워싱턴 주류 정치인인 앨 고어에 비해 투박하지만 솔직하고, 실수투성이지만 인간적이고, 위태롭긴 하지만 때묻지 않은 모습을 내세워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부시의 인물 됨됨이는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계속 논란이 됐다. 2001년 9·11 동시다발 테러가 터지지 않았다면, 부시가 지금의 지지율을 유지하기는 거의 불가능했으리라는 데 별다른 이론이 없다. 그는 모든 사안에서 너무 분명하게 강경 보수의 입장을 견지했다. 법정 공방까지 갔던 2000년 대선의 후유증을 치유하는 데는 실패했다. 민주당원들의 3분의 1은 아예 그를 대통령으로 생각하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그에겐 ‘분열의 대통령’이란 평가가 멍에처럼 따르고 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부시 통치 아래서) 공화당원들은 그들대로 뭉치고 민주당원은 그들대로 뭉쳤다. 이제 미국은 40 대 40 대 20의 나라(공화당원 40%, 민주당원 40%, 부동층 20%)가 아니라 45 대 45 대 10의 나라가 됐다”고 말했다.
2003년 11월 초 <워싱턴포스트>와 이 공동 조사한 여론조사도 결과는 비슷하다. 이 조사는 각종 현안을 놓고 당파적 성향에 따라 미국이 둘로 쪼개져 있음을 보여준다. 당파적 성향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46%는 민주당원이거나 민주당 성향이라고 답했고, 45%는 공화당원이거나 공화당 성향이라고 답했다. 부동층이라고 답한 사람은 불과 9%였다.

△ 2003년 11월25일 라스베이거스 스프링밸리 병원에서 최근 통과된 의료보험 법안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 부시 대통령. 그는 1월 말 연두교서에 야심찬 정책들을 포함시킬 계획이다.(GAM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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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중심 선거, 1월말 본격화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평가는 더욱 극명하게 갈린다. 공화당원의 81%가 ‘이라크에서 싸울 가치가 있다’고 대답한 반면, 민주당원의 68%는 ‘그럴 가치가 없다’고 답했다. <워싱턴포스트>는 “2001년 9·11 이후의 국가적 단합은 사라져버리고 미국은 다시 50 대 50으로 갈린 나라가 됐다”고 평했다.
부시 진영도 이걸 잘 안다. 대선전을 부시 대통령 개인에 대한 평가로 가져가지 않고, 국가적 어젠다를 앞에 내세우고 이슈를 다원화하려는 건 이런 맥락에서다. 하워드 딘 민주당 경선후보의 선거책임자인 조 트리피는 “부시 진영으로선 그게 유일한 방안일 것이다. 선거가 부시에 대한 평가로 가면 유권자들은 당파성에 따라 극명하게 갈릴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부시의 ‘정책 중심 선거’는 1월 말의 연두교서 발표에서 본격화할 전망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때 야심찬 우주개발 계획이나 의료보험 계획의 발표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현직 대통령의 프리미엄을 최대한 활용해, 히스패닉계나 흑인 등 특정 유권자층을 겨냥한 선심성 정책들을 잇따라 발표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부시 대통령에게 덧씌워진 ‘당파적 대통령’의 낙인을 지우고, 위기의 미국을 끌고 나가는 ‘국가적 지도자’의 이미지를 부각하겠다는 것이다.
부시의 이런 전략이 성공할지는 아직 누구도 알 수 없다. 지금의 여러 가지 외적 조건이 부시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건 사실이다. 사담 후세인의 체포(2003년 12월13일) 이후 그의 지지율은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그러나 선거과정을 당 대 당, 부시 대 민주당 후보 개인간의 대결구도에서 이탈시키지 못한다면, 이번 대선은 2000년에 버금가는 치열한 접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네오콘(신보수주의)의 대표적 이론가인 윌리엄 크리스톨이 최근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불행하게도 하워드 딘이 이길 수도 있다”고 지적한 게 부시 진영에 대한 단순한 경고만은 아니다.
박찬수 기자/ 한겨레 워싱턴특파원 pc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