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지이야기 ] 2003년12월18일 제489호 

[대선자금 정국 국민 여론조사] “이회창씨 처벌해야” 86.2%

‘대선자금 정국’ 국민 여론조사…검찰수사 공정성 의심하면서도 “야당탄압”에는 무게 안 실어

대선자금 정국이 격랑을 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12월14일 4당 대표와의 만남에서 자신의 불법 대선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을 경우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밝혔고, 다음날인 15일 이회창 전 한나라당 후보는 처벌을 달게 받겠다며 검찰에 자진출두했다.
<한겨레21>은 정치권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검찰수사의 공정성 여부 등을 포함해 이번 사건에 대한 민심의 향배를 여론조사를 통해 알아봤다. 이번 조사는 리서치플러스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전화면접 방식으로 진행된 이번 조사의 오차한계는 ±3.1%이다. 단, 이번 조사에 이 전 후보의 검찰 출두 기자회견이나 노 대통령 정계은퇴 발언이 제대로 반영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 편집자

<한겨레21>은 이번 조사에서 우선 검찰 출두에 앞서 “모두 내가 지시한 일인 만큼 책임지겠다”고 밝힌 이 전 후보의 사법처리 여부에 대해 물었다. 한나라당이 서정우 변호사의 구속 이후 “패자에 대해 이렇게 탄압한 전례가 없다”며 ‘역풍’이 불기를 기대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 전 후보의 사법처리에 대해 응답자들의 반응은 쌀쌀했다. “야당 후보였더라도 검찰수사 결과 법을 어긴 사실이 드러난다면 처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에 대한 공감 여부를 묻자, 공감 의견이 86.2%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기업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는 것은 있어왔던 일이므로 사법처리를 하는 것은 야당 후보에 대한 부당한 정치보복이다”는 주장에는 공감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56.8%로 공감 의견 38.9%에 비해 많았다. 이 전 후보가 대선자금 모금 내막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응답이 79.8%였다.

“시간이 걸려도 철저 수사” 64.9%

경제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해 검찰수사를 빨리 매듭지어야 한다는 주장 역시 별로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응답자의 64.9%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철저히 수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공정한지도 물었다.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이 이미 4대 기업으로부터 500억원을 넘어선 반면 당시 노무현 캠프쪽에 대해서는 나온 게 거의 없는 상태다. 최병렬 대표는 12월11일 검찰수사 협조 의사를 밝히면서 “과연 이 나라 기업들은 한나라당에만 비정상적인 자금을 제공하고 노 후보에게는 주지 않았는지 검찰에 묻고 싶다. 기업에서 돈을 안 낸 것인가, 검찰이 수사를 안 하고 있는 것인가”라며 검찰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문제 삼고 나섰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정도는 검찰수사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의 수사가 공정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49.9%는 공정하지 않다(전혀 공정하지 않다 8.3%, 공정하지 않은 편 41.6%)고 답했다. 공정하다는 응답 42.7%를 조금 앞서고 있다. 한나라당 지지자의 68.2%, 지난 대선 때 이 전 후보를 지지했던 66.1%가 공정하지 않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런 결과가 한나라당의 주장처럼 야당을 탄압하기 위한 것이라는 데까지 이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노 캠프는 놔둔 채 한나라당만을 파헤치고 있는 만큼 야당탄압”이라는 한나라당 주장에 대한 공감 여부를 묻자, 39.1%가 공감 의견을 표시한 반면 56.2%는 공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검찰수사의 공정성과 형평성에 의구심을 던지면서도, “야당탄압”이라는 주장에는 크게 무게를 실어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지지 기반인 영남권에서도 야당탄압이라는 주장에 공감한다(49.1%)는 의견과 공감하지 않는다(48.7%)는 의견이 엇비슷했다.



40% 정도가 “노 자금도 한나라당과 비슷할 것”

최병렬 대표 등 현 지도부가 장외집회를 열면서 대대적인 반격을 하기보다는 은근하게 검찰수사의 형평성 문제를 공격하고 나서는 것은 이런 민심의 흐름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의 한 소장파 의원은 “일단 두드려 맞아야 한다. 검찰수사 결과에 정면으로 반박하거나 강한 대여투쟁으로 맞서면 바로 ‘차떼기 정당이 뭘 잘했다고…’라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한나라당이 그 정도면 노 캠프쪽은?’ 하고 관심의 초점이 자연스럽게 옮겨지길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쪽의 이런 인식이 파고들 여지가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이번 조사에서 어쩌면 조사 항목으로 부적절할 수 있는 질문 하나를 던져봤다.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쪽이 기업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면 어느 정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사실관계에 대한 견해를 묻기 보다는, 노 후보쪽의 불법 대선자금 규모가 어느 정도 드러나고 있는 만큼 그 규모가 얼마나 될 것으로 생각하는지 추정치를 물은 것이다. 응답자 10명 가운데 5명 정도는 “한나라당보다 적을 것”(훨씬 적을 것 18.8%, 약간 적을 것 29.2%)이라고 답했다. 한나라당보다 많을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10.1%에 그쳤다.

문제는 38.6% 정도가 “한나라당과 비슷한 수준일 것”이라고 답한 부분이다. 연령별로는 20대(46.2%)가, 지역별로는 대구·경북(58.3%)이, 한나라당 지지자(57.7%)의 응답률이 평균치를 훨씬 웃돌았다.

노 대통령은 ‘적어도 한나라당보다 10배 이상 깨끗하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지 몰라도, 10명 중 4명 정도가 노 대통령쪽의 불법 대선자금이 “한나라당과 비슷한 수준”일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검찰이 노 캠프쪽에 대해 엄정한 수사를 통해 결과물을 내놓더라도, 자금 규모의 ‘양적’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면 편파성 시비에 휘말릴 소지가 다분히 있는 것이다. 이회창 전 후보가 12월15일 검찰에 자진출두한 마당에, 한나라당으로서는 이런 부분을 파고들면 지지자 결집 효과와 함께 상당한 정치적 실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서정우 변호사의 구속 이후 ‘대선자금 특검’ 카드를 만지작거렸던 한나라당이, 이를 접고 검찰수사의 공정성에 공세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 주요 정당의 지지도는 오차 범위 내에서 혼전 양상을 보였다. “어느 정당을 가장 좋아하느냐”(정당 지지도)는 질문에는, 민주당(20.0%)-한나라당(19.5%)-열린우리당(17.4%) 순으로 답했다. 무응답층은 37.8%였다.



총선 때 찍을 정당? “두고 보자”

질문을 조금 바꿔 “내년 총선에서 어느 정당 후보를 지지하겠느냐”(총선 지지후보)라고 묻자 다른 결과가 나왔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13.5%로 같았고 민주당이 12.4%로 거의 차이가 없었다. 다만 무응답층은 57.3%로 늘어났다. 총선 직전까지 지켜보겠다는 지지유보층이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재통합론에는 반대 의견(51.7%)이 찬성 의견(36.4%)을 앞질렀고, 두 당이 각각 후보를 낼 경우 민주당이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할 것으로 보는 전망(민주당 37.4%, 열린우리당 32.2%)이 약간 우세했다. 이번 조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는 35.2%로 나타나, 이전 <한겨레> 조사(11월19일 36.6%, 10월18일 33.4%) 결과와 큰 차이가 없었다.

[대선자금 정국 국민 여론조사 전문]

김보협 bhkim@hani.co.kr · 이화주 기자/ 한겨레 holly@hani.co.kr

  • 대선자금 삼각관계 기묘하게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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