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지이야기 ] 2003년07월03일 제466호 

자유아체운동 그들은 누구인가

망명 정부는 외교력 한계 봉착… 무자킬 마나프 최고사령관 중심 현지 무장조직이 주도

아체의 분리독립 기운은 1976년 12월4일 하산 디 티로(Hasan di Tiro)가 자유아체운동(GAM)을 외치면서부터 조직적인 대인도네시아 무장투쟁 발판을 마련했다. 결성 당시 피디 지역을 중심으로 제한적인 무장조직을 운영하며, 1980년대 말까지 상징적인 투쟁 수준에 머물던 자유아체운동은 1990년대 들어 조직력과 투쟁력을 갖춘 전형적인 게릴라 조직으로 성장했다. “자유아체운동은 인도네시아군의 압박을 먹고 자랐다.” 말릭 마흐무드 자유아체운동 총리 말처럼, 1990년대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 1990년 5월부터 1998년 8월까지 8년 동안 아체 전역을 군사작전지역(DOM)으로 다루었던 시점임을 눈여겨볼 만하다.


사진/ 분리독립의 꿈을 쫓아온 자유아체운동의 대물림을 인도네시아 정부군은 이번 전쟁을 통해 끝장낼 수 있을까. 자유아체운동의 훈련 모습(왼쪽,TEMPO). 자유아체운동 총사령관 무자킬 마나프(오른쪽,정문태).

‘스웨덴의 힘’은 시들었나

현재 자유아체운동은 스웨덴에 망명한 정치조직과 아체 현지에 구축한 무장투쟁조직으로 나뉘어 있다. 정치조직은 1981년 스웨덴으로 망명한 하산 티로가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최근 말릭 마흐무드가 총리직을 대행하고 있다. 아체쪽에는 2002년 1월 압둘라 샤피에 최고사령관이 전사한 뒤 현재 무자킬 마나프(38)가 후임 최고사령관으로 4천여명에 이르는 무장투쟁조직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로부터 주목을 끌지 못하는 외교적 한계 탓으로 자유아체운동은 스웨덴의 망명 정치조직보다 아체 현지의 무장조직이 투쟁을 주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산 티로가 자유아체운동의 정신적 지주임은 분명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가 아체 현지의 무장투쟁조직을 지도해왔는지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다.

그동안 자유아체운동을 취재해오면서 느낀 바로는 스웨덴과 아체가 ‘공생관계’라는 인상을 받았을 뿐, 확고한 단일지도 체계로 볼 만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지난해 12월 인도네시아 정부와 스웨덴쪽 정치가들 사이에 휴전협정이 성사되었을 때도 “정치와 아체 현지의 무장투쟁은 다르다”며 아체 현지의 무자킬 마나프 최고사령관이 대놓고 불만을 털어놓음으로써 이미 그 협정의 어두운 앞날을 짐작할 수 있었다.

따라서 자유아체운동은 현실적으로 아체의 무장투쟁조직을 이끄는 무자킬 마나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1986∼89년에 리비아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던 무자킬은 한때 말레이시아와 타이를 오가며 정치 선전활동을 했던 탓에 게릴라 지도자로서는 드물게 국제적 감각을 지닌 인물로 알려져왔다.

필자는 지난 2000년 1월 니삼 산악기지에서 최초로 무자킬을 인터뷰할 당시, 누구에게나 웃는 얼굴인 그로부터 매우 합리적이고 따뜻한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2002년 1월 무자킬이 최고사령관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전혀 놀라지 않았다. 전임 사령관 압둘라 샤피에가 사망하기 2년 전부터, 이미 자유아체운동 게릴라들 사이에서는 파세(북부 아체) 사령관인 무자킬을 ‘차기’ 최고사령관으로 지목하며 전폭적 지지를 보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유아체운동도 두려운 존재?

아직 남부 아체를 비롯한 일부 지역은 무자킬의 명령체계에서 벗어나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동안 17개 지역단위별로 고립분산 투쟁을 해온 자유아체운동이 비교적 통일된 지휘체계를 갖춘 것도 무자킬 이후의 일이다. 무자킬 이후 자유아체운동의 게릴라전 지형도 크게 변했다. 전통적으로 피디 지역에서 자유아체운동 게릴라 지도자가 나왔던 것과 달리 파세 지역 출신 무자킬이 최고사령관이 되면서부터 게릴라전의 중심지도 록세우마웨와 비러운을 비롯한 파세 지역으로 급격히 이동했다. 이에 따라 현재 인도네시아 정부군도 작전사령부를 록세우마웨에 설치해 니삼 지역에 이동본부를 차린 무자킬의 주력을 쫓고 있다.

자유아체운동의 무기체계와 보급로는 정확히 밝혀진 적이 없지만, 그동안 현장 취재를 통해 확인한 바로는 M-16과 AK-47 소총에다 RPG(유탄발사기) 박격포 같은 경화기가 전부였다. 이 무기들은 주로 타이와 말레이시아, 필리핀의 무슬림을 통해 반입하는 것으로 알려져왔지만, 무자킬은 인터뷰에서 또 다른 경로를 제시했다. “만약 인도네시아 정부군이 없다면 자유아체운동도 끝장이다. 주로 인도네시아 정부군으로부터 무기를 노획하거나 조달하고 있다.” 실제로 그 무렵 인도네시아 신문들이 ‘아체 지역 헌병대, 무기밀매 정부군 체포’라는 머리기사를 뽑아 무자킬의 말을 증명하기도 했다.

자유아체운동의 재원을 놓고 벌이는 인도네시아 정부군과 자유아체운동의 선전전은 실제 전투 못지않게 심각하다. 정부군은 자유아체운동이 주민들로부터 강제로 세금을 뜯어낸다고 주장해온 반면, 자유아체운동은 주민들의 자발적 기부라고 맞받아쳐왔다. 그러나 대중적 기반 위에서 게릴라전이 가능하다는 원칙을 놓고 본다면 자유아체운동은 주민들에게 분명히 대답하고 넘어가야 할 숙제가 남아 있다. 바로 확고한 도덕적 의지다. “자유아체운동이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우리에겐 정부군과 똑같이 두려운 존재다.” 많은 주민들이 자유아체운동을 공포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반다아체·록세우마웨= 정문태 | 국제분쟁 전문기자·아시아네트워크 팀장 asianetwork@news.hani.co.kr

  • 말릭 마흐무드 자유아체운동 총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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