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지이야기 ] 2003년06월05일 제462호 

꽃게도 긴장하는 6월!

서해교전 1돌, 폭풍전야의 연평도를 가다

오전 5시면 연평도가 깨어난다. 동이 틀 무렵이면 선원들이 탄 트럭과 오토바이들이 당섬 선착장으로 몰려간다. 선창에는 하품하는 선원들이 어구를 챙기며 출항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오전 5시30분이면 꽃게잡이 배들이 출항을 시작한다. 9t 남짓한 어선 20여척이 다투어 물살을 가르며 연평도 서남쪽 꽃게잡이 어장으로 달려간다. 먼저 가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연평도의 아침은 바다에서 갓 건져올린 ‘활어’처럼 퍼덕거렸다. 연평도는 인천에서 145km가량 떨어져 있다. 연평도 북쪽 10km 앞은 북한 땅이다. 날씨가 좋은 가을 날이면 연평도에서 북한 해주 시멘트공장에서 나오는 연기가 보일 정도다.

북방한계선 침번 빈번해진 북한 어선들


사진/ ‘출어!’ 연평도의 아침은 활어처럼 퍼덕거린다. 좋은 어장을 차지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앞다퉈 물살을 가르며 달려가는 꽃게잡이 어선들.


본격적인 꽃게잡이 철이 다가오자 북방한계선(NLL)을 넘는 북한 어선이 부쩍 늘어났다. 6월2일까지 북한선박이 모두 12차례에 걸쳐 39척이 북방한계선을 넘어왔다. 특히 5월26일 이후 북한 어선은 거의 날마다 북방한계선을 넘고 있다. 마침내 6월1일에는 우리 해군이 북방한계선을 넘은 북한 어선을 향해 경고사격까지 하는 등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꽃게잡이 성수기인 6월 하순으로 갈수록 북한 어선의 북방한계선 월선은 더 빈번해질 가능성이 높다. 북한 경비정이 이들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함께 북방한계선을 넘고, 이번처럼 우리 해군이 경고사격을 한다면 지난해 6·29 서해교전의 재연은 불 보듯하다.

“이러다 또 남북 해군이 한판 붙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과, ‘도대체 꽃게가 뭐길래’라는 의문을 안고 연평도로 떠났다. 5월28일 오전 인천 연안부두에서 실버스타호를 탔다. 실버스타호는 서해를 북서쪽으로 4시간 동안 쉼 없이 달렸다. 이윽고 바다 위를 기차가 달리는 것처럼 평평하게 뻗어 있는 땅이 보인다. 바다에서 연평도를 보면 옆으로 퍼진 섬이란 연평(延坪)이란 이름이 실감난다.

연평도행 실버스타호가 닿은 곳은 당섬이다. 연평도 주변의 수심이 얕아 큰 배를 댈 수 없는 탓이다. 당섬과 연평도를 연결하는 다리도 놓여져 있다. 당섬 선착장에서 연평도로 들어오는 다리 입구에 ‘연평해전 전승비’가 서 있다. 전승비에는 “1999년 6월15일 연평 근해에서 북방한계선을 불법 침범한 북괴 해군과 이를 저지, 응징하려던 우리 해군과의 해전에서 이룩한 우리 해군의 승전을 영원히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1999년 11월11일 해군참모총장”이라고 적혀 있다.

지난해 6월 연평도 꽃게잡이 어선들이 조업구역을 벗어난 무리한 조업이 서해교전의 한 원인이 됐다는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연평도 사람들은 이런 주장에 대해 강한 불만을 털어놨다. 최율 연평도어민회 회장은 “우리보고 북방한계선을 넘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태어나 자란 나도 아직 북방한계선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 힘 없는 섬마을 사람들이 대응을 못 한다고 일부 언론이 무책임하게 보도를 해서야 되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그러나 “지난해에는 일부 어민들이 조업구역을 벗어나는 등 오해를 받을 만한 일도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어민들이 조업질서를 잘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5월28일 오후 당섬 선착장에서 만난 한 꽃게잡이배 선장은 ‘요즘 꽃게가 잘 잡히느냐’는 묻는 질문에 “또 연평도 꽃게잡이 배가 북방한계선 넘어갔다는 기사 쓰려는 거냐”고 쏘아붙였다. 꽃게잡이배 선주인 안광현씨도 “어민들이 불만이 있더라도 법대로 해야 한다. 더구나 올해는 정부의 특별대책반이 내려와 있어서 월선할 수 없고 규제가 매우 강화됐다”고 말했다.

연평면사무소 2층에는 연평어장안전조업특별대책반 사무실이 있다. 이 특별대책반은 ‘조업구역 이탈을 미리 막아 북한에 도발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도록 특단의 조처를 강구하기 위해’ 4월21일부터 7월10일까지 연평도에 상주하고 있다. 해양수산부·인천시청·해군 등이 참여하고 있는 특별대책반은 매일 아침 군·경찰·행정기관 등이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열고 단속과 계도작업을 벌이고 있다. 어장 안팎에는 해양수산부·인천시·옹진군 어업지도선과 해경·해군 함정들이 안전조업을 지도하고 있다.

외지인에 대한 어민들의 경계


사진/ 꽃게가 지천인 올해, 연평 앞바다에 평화가 계속되면 어민의 수심에 찬 얼굴도 펴질 수 있을까? 한 어민이 잡아올린 꽃게를 분류하기 위해 바닥에 쏟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꽃게잡이 조업구역을 벗어나는 어선이 없다. 하지만 본격적인 성어기를 맞아 60여척의 꽃게잡이 어선 가운데 상대적으로 어획량이 부진한 20여척이 조업구역 이탈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특별대책반이 조업구역에서 20여개의 어구가 조업구역을 벗어나 설치된 것을 확인했다. 특별대책반은 해당 선주에게 이 어구들의 자진 철거를 약속 받은 뒤 이를 지키지 않으면 입건하는 등 강력한 조처를 취할 방침이다.

올 5월의 연평 꽃게어장 어획량은 320t으로 평년 같은 달 180t보다 80% 가까이 늘어났다. 꽃게는 한국의 남·서해와 동중국해, 일본, 대만 등지에 산다. 11월부터 이듬해 3~4월까지는 동중국해에서 겨울을 난다. 날이 풀리는 4~5월께 북쪽으로 이동해 6~7월에 서해안에서 알을 낳는다. 이 때문에 해마다 6월이면 연평도 주변에 꽃게가 가득하다. 연평도 꽃게는 몸이 납작하고 머리가 가슴이 크고 복부는 밑에 굽어 붙어 있으며, 등과 배는 키틴질로 된 단단한 외피로 싸여 있다. 꽃게는 맛이 담백할 뿐 아니라, 저지방 식품이어서 ‘바닷속의 여왕’이라 불리기도 한다.

꽃게잡이 배가 당섬 선착장에 들어서면 부두에 기다리고 있던 50∼60대 연평도 여성들이 몰려든다. 그물에 걸린 꽃게를 끊어 정리해 상자에 담기 위해서다. 연평도 사람들은 이 일을 ‘꽃게를 딴다’고 한다. 5월30일 오후 선창에서 꽃게를 따던 한 60대 여성은 “1시간 꽃게를 따면 5천원을 번다. 지난해 대포소리가 나기 전까지는 하루에 3만원을 벌었다. 올해는 1만원도 벌기 힘들다”고 말했다. 하지만 꽃게를 따던 다른 50대 여성은 “아직 본격적인 꽃게철이 아닌데다 지난해에 비해 꽃게가 많이 잡히는 편이라 형편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다른 이야기를 했다. 지난해 6월 어선의 월선조업 논란 이후 연평도 주민들의 피해의식과 외지 사람에 대한 경계가 더욱 굳어진 것 같았다.

사람들은 연평도 하면 꽃게와 서해교전을 떠올린다. 연평도 근해에서 1999년, 2002년 벌어진 남북 해군의 충돌 배경에는 꽃게가 자리잡고 있었다. 더 정확하게는 꽃게가 아니라 돈이다. 남한 어민들은 꽃게를 팔아서 빚을 갚고 자녀 학비도 마련한다. 북한 어민들도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잡은 꽃게 상당부분을 중국 칭다오와 다롄 지역으로 수출해 외화벌이를 하고 있다.

꽃게와는 별개로 연평도 등 서해 5도 해역은 양쪽 전력이 집중된 ‘해상 화약고’다. 이 때문에 사소한 충돌은 곧바로 국지전으로, 이어 전면전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은 곳이 이곳이다.

북한은 해군사령부 예하 서해 함대사령부 6개 전대 420여척의 함정 중 60% 이상을 서해 북방한계선 인근의 해주와 사곶 등에 배치하고 있다. 특히 연평도 인근의 사곶에는 함정 70여척과 곡산 등 3개 공군기지에 전투기 150여대를 배치하고 있다. 북한은 장산곶 해주 연안 등 주요 기지에 사거리 20~27km의 해안직사포와 사거리 83~95km의 지대함 미사일도 배치했다.

군 작전지침 공세적으로 바뀌어


사진/ 해군 경비정이 고속으로 질주할 때마다 연평 어민의 가슴은 바다와 함께 출렁인다. 사진은 연평도 근해를 순찰하고 있는 해군 참수리호.


이에 국군은 서해 5도 해안에 배치됐거나 구축함에 장착된 사거리 130km의 하푼 대함미사일·고속정 편대·해병대·해안포·레이더 기지·공대함 미사일을 장착한 링스헬기 등으로 맞서고 있다. 바다에는 해군 2함대사령부가 고속정과 초계함이 전방에서, 호위함(FFK)과 한국형 구축함(KDX-Ⅰ)이 그 뒤를 받치고 있다.

지난해 6월 서해교전 이후 해군뿐 아니라 공군·지상군 등 합동전력의 대비태세가 강화됐다. 이전에는 북방한계선 부근에서 교전이 벌어진 뒤에야 공군 전투기가 그 부근까지 초계비행을 하고, 백령도와 연평도 등에 있는 해병이 전투태세를 갖췄다. 지난해 7월 이후 새로운 작전지침에 따라 북 경비정이 북방한계선을 넘어올 낌새만 보여도 해군과 공군, 지상군 병력이 합동으로 전투에 대비하는 쪽으로 군사대비 태세가 강화됐다. 예를 들어 지난해 서해교전 때는 충남 서산에서 초계비행 중이던 공군 전투기 KF-16 2대가 교전이 나자 덕적도 부근까지 갔으나, 올해는 북방한계선 월선 조짐만 보여도 북방한계선 부근으로 전진배치된다.

군 관계자는 “지난해 7월 바뀐 작전지침에 따르면 북 경비정의 북방한계선 침범 징후가 포착되면 우리 군의 합동대비전력을 유지하면서 대비태세를 갖춘 뒤, 우리 함정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시위기동을 했음에도 북 경비정이 퇴각하지 않을 경우 곧바로 경고사격을 가한다. 경고사격에도 불구하고 돌아가지 않으면 곧바로 격파사격에 들어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6월 서해교전에서 피해를 본 군이 작전지침을 공세적으로 바꿨다. 6월1일 해군이 북방한계선을 넘은 북한 어선들에게 처음으로 경고사격을 한 것은 이 바뀐 작전지침에 따른 것이다.

연평도에서 만난 해군과 해병 장병들은 “북한이 다시 도발한다면 지난해 6월 북한의 기습공격으로 억울하게 숨진 전우들의 원수를 갚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연평도 근처 바다에서 남북이 충돌한다면 자칫 전면전으로까지 번질 위험이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508세대 1300여명이 사는 연평도는 평온했다. 아침마다 꽃게잡이 배들이 출항했다가 오후에는 꽃게를 싣고 부두로 돌아왔다. 조용한 일상의 연속이다.

NLL 침범 때마다 가슴 ‘철렁’

연평도의 한 식당 주인은 “북한 군함이나 어선이 북방한계선을 넘었다는 뉴스가 나오면 밖에 있는 친척이나 친구들이 걱정해서 안부 전화를 걸어온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별 탈 없이 살고 있는데 말이다. 실제 와보니 어때요 정말 위험해 보이나요”라고 되물었다. 실제 연평도에서 취재를 하는 나흘 동안 세 차례 북한 어선이 북방한계선을 넘어와 해군 고속정이 출동했지만 전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뒤늦게 알 수 있었다.

5월31일 오전 취재를 마치고 연평도를 떠나 인천으로 오는 실버스타호를 탔다. 선실에 있는 텔레비전에서 이날 오전에도 북한 어선이 북방한계선을 넘어왔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휴가 가던 해병·해군 장병들이 잠을 자다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검게 탄 군인들 얼굴 위로 연평도에 남아 있는 동료들에 대한 걱정이 스쳐가고 있었다. 기자 또한 남북 사이에 교전이 벌어져 곧바로 다시 연평도에 급파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과 걱정을 떨치기 어려웠다.

연평도= 글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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