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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선생님은 존경받는가 혼돈의 2003년 봄 한국 교단, 권위적인 이미지로 비춰온 교장 이야기
그에게 교직은 ‘천직’이었다. 교단에 첫발을 내디딘 뒤 강산이 서너번 바뀌었지만, 학교를 머리 속에서 지운 적은 단 하루도 없었다. 교편을 잡는 동안 교육자로서 자존심이 많이 상했고 속상한 일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꾹 참고 버텨왔다. 그렇게 30여년 동안 외길을 걸어 온 끝에 그는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엄하고 고리타분한’ 이미지
우리 사회에서 교장은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을까. 지난 2001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부산지부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사들은 자신의 선배인 교장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설문에 참가한 1300여명의 교사들은 “교장 선생님에 해당하는 것을 모두 고르라”는 질문에 보수적(42.2%)과 독선적(32.2%)이라는 항목을 많이 골랐다. 청렴(23.7%)과 민주적(20.8%)이라는 대답도 상당수 나왔지만, 대부분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학생들은 어떨까. 지난 4월25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ㅅ중학교 앞. 수업 종료를 알리는 벨소리가 울리자 학생들이 우르르 교문 밖으로 쏟아져나왔다. 친구들과 웃고 떠드느라 정신없는 한 여학생을 붙잡았다. “교장 선생님 성함이 뭐예요?” “잘 모르겠는데요” “이 학교 학생 아닌가요?” “맞긴 맞는데요, 교장 선생님 만날 기회가 별로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옆에 있던 한 학생이 거든다. “우리랑 별로 상관없는 분이잖아요. 교장 선생님 이름 잘 몰라도 학교 다니는 데 큰 지장 없어요.” 다른 학생에게 “교장 선생님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뭐냐”고 물어봤다. “엄하고 고리타분하고 그런 거죠, 뭐.” “교장 선생님을 투표로 뽑으면 어떨 것 같아요?” “글쎄요. 학교가 더 좋아질 것 같기도 하고…. 근데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것 같은데요.” 이날 만난 20여명의 학생 중 교장 선생님에 대해 호감이 있는 학생은 단 한명에 불과했다. 우리 사회에서 교장은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물론 학교와 개인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대세’를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교사들은 교장의 보수적이고 독선적인 행태가 개인의 특성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에서 나온다고 지적한다. 전 성남 은행초등학교 교장 이상선(65)씨는 “교장이 학교 운영에서 전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특히 교사들에 대한 인사권은 교장에게 전횡이라는 유혹을 느끼게 만든다. 교사들의 인사는 인사자문위원회를 구성한 뒤 그 결과에 따라 이뤄져야 하지만 이는 교육부의 권장사항일 뿐이다. 인사자문위원회에서 결정된 것일지라도 최종 결과는 결제 권한이 있는 교장의 뜻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교장에게 밉보이는 교사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감히 교장의 권위에 도전할 엄두를 못 내는 것이다. 이씨는 “자신의 인사권을 갖고 있는 교장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교사가 얼마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독선 부추기는 학교예산 집행권
학교예산 집행권도 교장의 독선을 부추긴다. 학교예산은 행정실장이 편성한 뒤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받도록 돼 있지만 이 또한 강제 조항은 아니다. 또 최종 집행은 교장이 전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예산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 이씨는 “행정실장과 교장이 마음만 잘 맞으면 각종 비리를 저지를 수 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사립고 교사는 “학교급식이나 수학여행과 같이 돈이 들어가는 일에 특히 (교장이) 전권을 행사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학교의 인사와 예산을 틀어쥔 교장은 학교에서만큼은 황제처럼 군림할 수 있다. 그래서 교직에 입문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교장이 돼보려고 꿈꾼다. 하지만 교장이 되는 길은 그리 만만치 않다. 교장을 점수로 평가해서 뽑는 현행 제도에 큰 함정이 있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현행 점수제도가 학생을 지도하고 학교를 운영하는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교장 선발의 평가 항목은 근무성적과 연구실적, 교육경력, 교육성적 등이 있는데 근무성적과 연구실적을 빼면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교장이 되려는 교사들은 연구실적과 근무성적에서 많은 점수를 따려고 애쓴다. 연구 점수를 많이 따기 위해서는 대학원에 가거나 많은 연수를 받아야 한다. 연구 논문을 제출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수업과 동시에 소화해내야 하기 때문에 수업이나 학생지도는 뒷전으로 밀리는 경우가 많다. 근무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고행’을 감수해야 한다. 벽지나 섬에서 근무할 경우 근무 점수를 높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벽지 근무를 자원하는 교사들이 많다. 최근에는 담임 점수를 높게 받으려고 예전에 담임을 맡지 않았던 보직 교사들이 담임을 자원하는 경우도 흔하다. 사립의 경우 교장 승진에 필요한 점수를 모두 따놨다 하더라도 교장 승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재단의 ‘낙점’을 받아야 하는 또 하나의 관문이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 재단이 운영하는 서울 ㅅ고등학교 김아무개(58) 교장은 2년 전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 “교장 승진을 코앞에 두고 있었는데 재단에서 갑자기 신부를 교장으로 임명하겠다는 방침을 통보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죠. 그동안 교장이 되려고 쏟아부은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겁니다.” 그는 30년 동안 거의 입에 대지 않던 술을 가까이하게 됐다. 명절이나 제사 등 가족 행사에도 자주 빠지게 됐다. 하지만 김 교장은 재단이 임명한 신부가 교사들과의 마찰로 중도하차하는 바람에 운좋게 교장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교장 1천만원, 교감 500만원?
교장 중심의 학교 문화는 박정희 정권 때 형성됐다. 평생을 교사로만 일하다 지난 1999년 퇴직한 윤한탁(65) 교사는 “유신 이전에는 교장의 권위가 그렇게 강하지 않았는데 박정희 군사정권이 군대식 유신 교육을 도입한 이후 교장의 권위가 강화됐다”고 지적했다. 유신 이전에는 교장과 교감, 평교사의 관계가 수평적이었고, 지금처럼 점수로 평가해서 승진하는 제도도 아니었다. 당시 주임교사는 서로 미루고 안 맡으려는 분위기가 강했다. 교사들이 승진을 위해 지금처럼 치열하게 경쟁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유신 이후 교감, 주임(부장) 교사와 평교사의 관계가 수직적 구조로 바뀌면서 학교에서도 군대식 위계질서가 강조됐다. 유신정권의 학교 구조 재편은 교육현장의 경직화를 불러왔고 전근대적인 가부장적 질서가 학교를 지배했다. 복종과 규율을 앞세운 군대식 학교 문화는 당시 유능한 젊은 교사들을 학교에서 떠나도록 만들었다. “당시 교무회의 풍경은 참 가관이었죠. 교장은 크고 높은 의자에 앉아서 교사들을 훈계했습니다. 회의라기보다는 일방적 통보였어요. 교사의 의견을 물어보는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지시를 내렸죠. 간혹 일어나서 교장의 말에 반박하면 교장실에 불려가 호된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윤씨는 수업시간에 ‘통일’이라는 말을 꺼냈다가 교장실에 불려가 혼이 난 뒤 방첩대에 넘겨진 일도 있었다고 한다. “술자리에서도 교장과 평교사는 엄격히 구별됐습니다. 교장이 아무리 무례한 행동을 하더라도 평교사들은 참아야 했죠. 지금도 교장 중에는 그 의식에 젖어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여교사의 차 심부름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나 교장의 권위의식이 예전보다 많이 약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전교조가 합법화된 이후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 교육현장에서 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교장의 전근대적 사고방식이 많이 변했다는 것이다. 서울 초등교장협의회장 이승원 교장(대방초등학교)은 “교장이 권위적이고 독선적이라는 것은 옛말이다. 전교조가 학교 운영에 많은 간섭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교장이 독단적으로 학교 행정을 할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이 교장은 “인사의 경우 인사자문위원회를 구성하기 때문에 교장이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예산집행도 운영위원회가 있기 때문에 교장이 재량을 발휘할 여지가 별로 없다”고 설명했다.
교사와 교장, 서로가 동반자로
하지만 그는 “교장은 학교의 최종 책임자기 때문에 학교 행정을 조정·지도·감독하는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며 “교장이 갖고 있는 권한은 존중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 난우초등학교 김수연 교장은 “요즘은 교장이 직접 화장실 청소도 한다. 학교 앞 건널목 보행지도 등 아이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싶어도 오히려 젊은 교사들이 잘 안 따라줄 때가 많다”고 말했다. 충남 예산 보성초등학교장 자살사건 등으로 2003년 봄 한국 교단은 시끄럽다. 그 한가운데 우리의 교장 선생님이 계신다. 서울 용산구의 한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은 혼탁한 세상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교장은 교사들 위에 군림하려고만 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잖아요. 교사들도 교장을 동반자로 대해야 합니다. 그러면 학교에 다시 신뢰가 싹틀 겁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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