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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재 편대의 공습 북핵 사태·유가 급등으로 불확실성의 안개에 싸인 한국경제, 돌파구는 있는가
지난 3월13일 아침,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250원으로 치솟았다. 개장하자마자 단숨에 전날 마감치보다 5원이나 폭등했다. “장이 열리자마자 환율이 이렇게 큰 폭으로 뛴 적이 없었는데 우리도 크게 당황했다.” 지켜보던 한국은행 외환시장팀이 깜짝 놀란 건 당연했다. 경제불안은 항상 환율이 급등하면서 나타나고, 환율은 대표적인 경제위기 신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해외투자가들 주식을 달러로 바꿔
긴박한 상황이라 할 만큼 한국 돈의 가치가 폭락한 건 원화를 팔고 대신 달러를 사자는 주문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원화가치 폭락을 주도한 쪽은 크게 보아 두곳인데, 해외 투자은행·펀드와 국내 수출기업들이다. 수출기업들은 수출대금으로 받아놓은 달러를 원화로 바꾸려다가 매물을 거둬들이고 있다. 원화값이 추가하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확보한 달러를 들고 있다가 나중에 팔면 그만큼 더 이익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해외투자가들의 동향이다. 나쁜 것은 한꺼번에 몰려온다고 했던가. 이라크 전쟁 임박, 국제유가 급등, 북한 핵문제,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 해외 투자은행들은 이라크 전쟁에 따른 국제유가 급등에다 북핵 사태까지 악재가 한꺼번에 터지면서 국가 리스크가 커지자 국내 증시에 넣어둔 주식을 팔고 달러로 바꿔 빠져나가고 있다. 한국은행 외환시장팀은 “주식시장뿐 아니라 국제금융시장에서의 한국물 팔자 분위기는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라고 했다. 지난해 어려운 세계경제 속에서도 한국경제는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6.2%(한국은행 추정치)를 구가했다. 외환위기를 모범적으로 극복했다는 칭송도 들었다.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이 탄탄해 성장세가 유지되고 안전한 투자처로 받아들여졌던 한국이 한순간에 이머징마켓(신흥시장) 중 위험한 투자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경제 위에 두껍게 드리운 불안의 진원지는 대외적인 요인이 크다. 이라크 전쟁과 국제유가 급등, 북핵이란 지정학적 위험(컨트리 리스크)은 외교적 해결노력과는 별개로 우리의 ‘의지’와 무관한 경제외적 요인이다. 개방경제 아래서 어찌해볼 도리 없는 악재들이 일시에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북핵과 이라크 전쟁을 둘러싼 불안감을 털어내는 게 급선무지만, 이런 대외 요인은 마땅한 해법이 없다는 점에서 한국경제를 더욱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 점에서 휘청거리는 한국경제를 한복판에서 짓누르고 있는 건 ‘불확실성’이라는 안개다.
부동산 거품도 꺼지면…
이라크 전쟁과 북핵 사태는 그동안 한국경제를 급속히 회복시키고 성장을 이끈 바탕인 내수에도 찬물을 끼얹고 있다. 한국경제가 불안에 휩싸이면서 이러다 경제가 다시 한번 결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개인들 사이에 고개를 들고 있다. 석달새 200포인트 넘게 빠지고 연일 사상 최저치를 갈아치우는 코스닥 등 ‘역사적 수준’으로 떨어진 주식시장, 그리고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환율 급등 양상이 외환위기 때와 닮았다는 분석까지 나오는 판이다. 이처럼 불안감이 팽배한 가운데 백화점·재래시장 등은 손님이 뚝 끊겨 울상이다. 소비심리 위축은 잔뜩 얼어붙은 ‘체감경기’가 여실히 보여준다. 상인들 사이에 “매상이 평소의 절반으로 떨어졌다”거나 “IMF 때보다 더 춥다”는 한숨도 나온다. 막대한 가계대출(500조원·가구당 2915만원)을 배경으로 일어난 소비는 기업의 호황을 이끌어왔다. 기업이 만들어낸 물건들이 소비확대에 힘입어 시장에서 거의 다 팔린 것이다. 한국은행 조성종 경제통계국장은 “지난해 부동산값이 폭등하고 은행에서 마구 가계대출을 받으면서 사람들이 큰돈을 만졌고, 그러면서 자연히 소비가 늘었다. 기업들도 실적이 좋아져서 회삿돈으로 먹는 소비도 늘었다”고 말했다. 집값이 오른 만큼 소비가 늘어났다는 점에서 내수를 뒷받침한 것은 부동산값 폭등이었다. 집값 폭등은 다스려야 할 대상이지만, 어떤 의미에서 부동산 거품이 한국경제를 떠받쳐왔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제유가 급등과 북핵 사태로 인한 경제불안으로 소비가 위축되면서 부동산값이 확 꺼지는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 일부에서는 부동산값 폭락을 신호로 한국경제가 침체의 그늘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기도 한다.
무역수지도 적자로 돌아서
국제유가는 지난 13일 현재 30.39달러(두바이유 기준)였다. 지난해 12월 평균 25.7달러에서 1월 28달러, 2월 30달러로 치솟고 있다. 걸프전 이후 1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인데, 현재 유가에는 배럴당 6∼8달러의 전쟁 프리미엄이 붙어 있다. 이라크 공격에 대한 불안이 이미 국제유가에 반영돼 있는 셈이다. 메릴린치증권은 지난 14일,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면 이라크가 자국 내 유전을 파괴할 것이라는 분석에 따라 향후 30일간 원유가격(서부텍사스산 중질유) 전망치를 종전의 배럴당 41달러에서 46달러로 대폭 상향조정했다. 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르면 우리나라는 7억5천만달러 정도 무역수지가 악화된다(상자기사 참조). 유가급등은 석유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깊은 주름살을 드리운다. 지난 2년간 흑자행진을 이어온 무역수지는 지난 1월(마이너스 9천만달러), 2월(마이너스 3억2천만달러)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고유가·고환율 때문이다. 무역수지가 두달 연거푸 적자를 보인 것은 외환위기 이후 처음 있는 ‘사건’이다. 아무리 수출을 많이 해 달러를 벌어들여도 기름을 사오는 데 들어가는 돈이 어마어마하게 늘어 적자를 내고 마는 것이다. 물론 환율상승이야 수출업체에 득이 되지만 그것도 일단 물건을 판 뒤의 일이다. 그러나 유가와 환율 급등은 수입 원자재값을 뛰게 만들고, 이에 따라 원자재로 물건을 만들어 파는 수출업체들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그만큼 유가급등은 한국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에 직격탄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정문건 전무는 “유가급등으로 우리 경제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큰 충격을 받고 있다. 2001년에 유가가 배럴당 34달러(서부텍사스 중질유)까지 갔는데, 그때 전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졌다. 한국경제 성장률도 당시 3%로 급락했다”고 말했다.
고유가 충격 심각
지난 1, 2월 수출은 1년 전보다 20% 넘게 증가했다. 내수와 함께 한국경제를 이끄는 축인 수출은 아직 그런 대로 견실한 편이다. 외환위기 당시 바닥을 드러냈던 외환보유액도 지금은 1240억달러나 될 정도로 넉넉하다. 세계 4위권의 외환보유고가 있는 나라에 어울리지 않게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있다고 의아해할 정도다. 그러나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되면 외환보유고가 줄어들고, 자연히 위기 대처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시장 불안감에 대한 과잉반응은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북핵 사태와 유가급등이라는 ‘주어진‘ 상황 아래서 한국경제가 불안에 휩싸여 있는 것은 분명하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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