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 2003년03월13일 제450호 

나와 나타샤와 결혼사기

도망치기·경력 뻥튀기 등 국제결혼으로 장난치는 업체들…피해자들 온라인 카페 만들기도

최소 1200만원. 중국 조선족→ 옛소련→ 베트남 등지로 확대개척된 시장에서 신부를 ‘사오는’ 비용이다. 일단 신부가 한국에 오면 성혼이 된 것일까.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서 자영업을 하는 최아무개(42)씨는 국제결혼을 두번 했으나 두번 다 실패했다. 2001년 7월 ㄴ업체를 통해 결혼한 러시아 여성 안나(26)는 한국에 온 뒤로도 계속 업체 사무실을 드나들었다. 업체와 짜고 국제결혼을 원하는 남자들과 맞선을 본 것이다. 안나를 내세워 ‘선수금을 뜯어낸’ 뒤 다른 여자와 소개시키려는 전형적인 사기행각이었다. 안나와 함께 한국에 온 친구 얄료나는 결혼 뒤 도망치는 수법으로 이중·삼중 결혼을 했다. 최씨의 신고로 두 여성은 강제출국당했고 ㄴ업체는 문을 닫았다. 그해 12월 최씨는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또다시 국제결혼을 시도했다. ㄱ업체를 통해 조신한 처녀라고 소개받은 카자흐스탄 출신의 고려인계 나타샤(23)를 만났다. 현지에서 데이트도 충분히 하고 신부 가족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도 치렀다. 한국에 와서 살던 나타샤가 어느 날 불쑥 이렇게 말했다. “나 한국에서 1년 산 적 있어” 난데없는 한국말에도 놀랐지만 경력을 속였다는 사실에 최씨는 배신감을 느꼈다. 결국 5개월 만에 나타샤와 이혼했다.

마음에 들어하자 “200만원 더 내라”


사진/ 업체의 말만 믿고 결혼했으나 상대 여성이 신체상 결함 있는 사람이었다는 박경순씨. 소송을 준비하고 있으나 증거 제시가 어렵고 계약서 내용이 불리해 속앓이가 심하다. (박승화 기자)


첫 번째 경우는 의도적인 사기에 걸려든 것이지만, 두 번째 경우는 “국제결혼중매업이 구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라고 최씨는 말한다. 당사자들이 상대를 속일 목적이 없다고 해도 업체가 중간에서 속이면 알 수 없는 탓이다. 혼인신고를 하거나 계약을 해야 경비를 제외한 수백만원의 결혼성사비(사례비)를 받는 업체로서는 앞뒤 가리지 않고 짝을 지우려든다. 이를 위해 남녀의 경력과 신분을 ‘뻥튀기’하는 것은 기본이다.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러시안계 여성과 결혼해 살고 있는 오성욱(35·경기도 부평)씨 역시 이 같은 경험을 했다.

한 설비업체에서 현장소장으로 일하는 오씨는 지난해 9월 ㄱ업체 사이트에서 사진과 프로필을 보고 두명의 여성을 점찍었다. 업체에서는 “늦으면 놓치니 빨리 가자”고 서둘렀다. 그러나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도착하자 오씨가 점찍은 여성들은 나오지 않았다. 사이트에 오른 여성들은 업체의 ‘홍보용’이었던 것이다. 현지 소개자는 “집이 시골이라 멀다”, “아프다”면서 다른 여자부터 선을 보자고 했다. 지금 부인인 안나(24)를 앞에 두고 소개자는 오씨에 관해 거짓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연봉 6천∼7천달러를 벌고 재산도 많은 실업가며, 안나가 원하면 방송사 리포터로 만들어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오씨가 항의하자 소개자는 “그렇게 소개해야 여자가 안심한다”고 내둘렀다. 소개자의 태도는 점입가경이었다. 오씨와 안나가 서로 마음에 들어하자 “200만원을 더 내라”고 다짜고짜 각서를 요구했다. “미모와 학벌이 훌륭한 여자기 때문에 당신과 결혼하면 우리로서는 손해다. 사례금을 더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씨는 “아무리 돈으로 국제결혼을 한다지만 사람을 앞에 놓고 흥정을 벌이는 모양이 인신매매나 다름없었다”고 얘기한다.

이 일로 업체와 사이가 틀어진 오씨는 안나와 직접 연락을 주고받아 그를 데려올 수 있었다. 현지 방송국에서 일하던 안나가 업체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복잡한 출국절차를 처리할 능력이 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씨는 “우리가 비교적 영어로 의사소통이 됐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업체쪽에서 요구하는 추가사례금을 낼 때까지 안나를 붙잡고 보내주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서울시 공릉동에 사는 박경순(42)씨는 ㅅ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일용노동자로 살아온 박씨는 건실하게 돈 모아 집도 장만했다. 그러나 맞선을 보는 족족 퇴짜를 당했다. 학벌과 직업 때문이었다. 결혼을 못해 애태우던 박씨는 지난해 한 방송 프로그램을 보고 눈을 번쩍 뜨였다. 한 노총각이 우즈베키스탄에서 신부를 구해와 이런저런 어려움 끝에 잘 산다는 미담이었다.

영업신고 대상에서 제외돼


사진/ 인터넷상에 국제결혼시민모임을 만든 오성욱씨. 업체의 비리고발 창구이자 국제결혼한 이들의 정보마당으로 가꿀 계획이다. (이용호 기자)


수소문 끝에 프로그램에 소개된 업체를 찾았다. 업체쪽은 “우리만 믿으라”며 서둘러 박씨의 신청서를 작성했다. 박씨는 지난해 6월 1차방문에서 4명의 여성과 맞선을 보고 마지막 여성과 결혼을 합의했다. “이 여성까지 놓치면 방법이 없다. 경비만 날리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현지 소개자가 너스레를 떠는 통에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1차방문에 200만원 가까이를 낸 상태였으나 돌아온 뒤 결혼성사비(660만원), 수수료(120만원), 2차방문 비용(220만원) 등 1천만원을 더 냈다. 3개월이 지난 뒤 2차방문을 해 현지에서 결혼식을 하고 혼인신고도 했다. 그런데 첫날밤 문제가 생겼다. 신부가 성관계를 맺을 수 없는 신체구조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곧바로 한국에 돌아온 박씨는 ㅅ업체쪽에 항의하며 환불을 요구했으나, “우리도 몰랐다. 추가로 절반 가격을 내면 가서 이혼시켜주고 다른 여성을 소개시켜주겠다”는 말만 돌아왔다. 박씨는 업체를 사기혐의로 고소했으나 무혐의처분이 내려졌고, 민사소송도 불리한 형편이다. 여성의 신체상태에 대한 별다른 증거가 없는데다, 계약서 역시 모호하게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모두 1800만원 정도 날렸지만, 돈보다 인생이 농락당한 기분에 비참하다”라고 말한다.

국제결혼업체 피해자라고 말하는 남성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급한 마음에 업체를 섣불리 믿었다는 것과, 일이 터진 뒤 아무에게도 하소연을 못한다는 것이다. 박씨 역시 “오죽 못났으면 한국에서 결혼도 못 하고, 나라 밖에서 사기를 당하느냐”고 질시받을까봐 두렵단다.

전국적으로 국제결혼중매업체는 700여곳이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한달에 한건이라도 성혼을 시키는 곳은 10%에 지나지 않는다. 6년째 업체를 운영해온 정아무개씨는 “하루에 30개가 생기고 30개가 문 닫을 정도로 난립상황이다”라고 말한다. 과거 결혼상담소개소는 예식장·장례식장과 함께 행정기관의 허가·감독을 받아야 했으나, 1999년 8월 ‘건전가정의례의 정착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지며 예식장과 상담소개소는 영업신고 대상에서 제외됐다. 국제결혼중매업체 역시 자유업종으로 세무서에 등록만 하면 된다. 그 뒤 업체는 빅뱅을 했고 돈 버리고 맘 버리는 남성들이 속출했다.

업체의 무분별한 영업으로 피해를 입은 남성들이 최근 인터넷에 국제결혼시민모임(www.anti-wedding.com)을 꾸렸다. 속내도 털어놓고 정보도 교환한다. 이 사이트를 만든 오성욱씨는 “아무런 제재나 감시 없이 영업하는 업체의 횡포를 줄이려면 스스로 자구책을 만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성혼율 90%는 무조건 의심하라

오씨는 지난해 가을 안나와 ‘무사히’ 결혼한 뒤 업체의 횡포를 고발하기 위해 온라인 카페를 만들었다. 한달 사이에 회원이 360명으로 늘었다. 모두 각종 업체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었다. 오씨와 추가비용 문제로 다투던 ㄱ업체쪽에서 그를 명예훼손·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하며 카페를 드나들 수 없게 되자 뜻맞는 회원들이 다른 카페(cafe.daum.net/you77)를 만들어 각종업체의 비리고발 창구 구실을 하고 있다. 그 여세로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게 된 것이다. 국제결혼시민모임은 앞으로 피해자뿐 아니라 국제결혼한 사람들도 함께 정보를 나누는 마당으로 탈바꿈할 계획이다. 오씨는 “성혼율 100%, 90%를 내세우는 업체는 무조건 의심해야 한다. 사실 사람을 한번 보고 결혼한다는 것, 특히 언어도 문화도 다르고 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 외국 여성과 일주일 만에 결혼할 수 있다고 믿는 것부터가 실패를 예견한 일이다. 문제는 똑같은 실패를 개인과 사회가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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