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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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대선이 끝나고 열린 한나라당 의원 총회. 대선 패배는 곧 당의 붕괴라는 예상과 달리 구성원들은 현재 당의 단합과 결속을 강조하고 있다.)
1백65석의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은 어디로 갈까. 다수당의 지위를 계속 유지할까.
한나라당은 대선 패배 이후 일단은 안정상태를 보이고 있다. 당은 조순 총재와 이한동 대표 체제로 복귀했다. 지난 선거전 신한국당과 민주당의 합당 때 합의했던 3월 전당대회 준비도 차질없이 진행하기로 했다. 대선 에서 패배할 경우 급속히 붕괴하지 않겠느냐는 정치권 일각의 예상이 빗 나가고 있다.
오히려 한나라당의 모든 세력과 구성원들은 현재 당의 단합과 결속을 강 조하고 있다. 우리끼리 싸우면 죽는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다. 조순 총재가 국민회의 김대중 당선자를 향해 “우리 당 의원 빼내가기를 시도 하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경고한 것도 이러한 위기감의 발로다.
정치적 이익 없어 어느 계보도 이탈 불가능
그러나 한나라당의 구성원들이 같은 정당의 울타리를 김대중 당선자가 취 임한 이후에도 계속 유지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앞으 로 닥칠 상황변화가 너무 많은 데다가 한나라당의 구심점이 뚜렷하지 못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관측자들도 한나라당의 분당이나 대규모 이탈 은 없을 것이라는 데서부터 정계개편 등 급격한 변화에 휘말려 당이 해체 될 것이라는 데까지 견해가 엇갈린다.
그럭저럭 현상을 유지할 것이라는 견해는 한나라 구성원들 특히 의원들이 갈 데가 마땅치 않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중심임을 확인한 TK(대구·경북)지역이야 말할 것도 없고 PK(부산·경남) 지역도 지역정서상 여당인 국민회의나 자민련으로 이동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차기를 노리는 김덕룡 의원계나 국민회의와는 감 정적인 앙금이 너무 많은 이기택 전 의원의 민주당 출신들도 한나라당 울 타리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김윤환 고문은 이와 관련해 “우 리가 다수당을 유지할 때라야 국회직 등 정치적 몫을 제대로 찾을 수 있 는 것 아니냐”며 “당내의 어느 계보도 지금 이탈해봐야 정치적으로 이 득이 될 게 없기 때문에 상당기간 현 상태가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집단지도체제로의 당 지도체제 변경은 바로 현상유지를 위한 방편에서 나 온 얘기다. 다양한 당내 세력들을 아우르고 소외감을 없애기 위해서는 소 계보의 수장들을 모두 지도부로 묶는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 과거 야당들 도 1인자의 힘이 약하거나 부재할 때는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했다. 더구나 한나라당은 현재 실질적인 계보의 연합체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이런 상태 에서 누군가가 당권을 독식하려고 나설 경우 당은 무너지고 만다. 따라서 김 고문이 제안한 집단지도체제 도입에 대해서는 김덕룡 의원과 이기택 전 의원 등 대부분의 계보수장들이 동의하고 있다. 현재 대표를 맡고 있 는 이한동 의원쪽은 다소 못마땅해하고 있지만, 집단지도체제 자체에 대 해서는 내놓고 반대하지는 않고 있다.
다만 집단지도체제의 오너가 될 부총재나 최고위원 선출을 어떻게 할 것 이냐에 대해서는 견해 차이가 있다. 김 고문과 이 전 의원은 경선을 통한 공개선출을 주장하고 있고, 이 대표나 김 의원쪽은 총재 지명이나 사전 조정을 통한 선임을 선호하고 있다.
집단지도체제 의견접근 최고의원 누구냐가 문제
경선론자들은 경선만이 많은 최고위원 지망생들을 공정하게 골라낼 수 있 다는 것이며, 지명론자들은 경선이 가져올 후유증을 우려하고 있다. 경선 이냐 지명이냐 하는 의견 대립에는 물론 다른 각각의 정치적인 속셈이 있 다. 경선을 주장하는 김윤환 고문은 경선을 통해 당내 최대주주의 힘을 과시함으로써 한나라당의 실질적 소유주가 되겠다는 것인 반면에 경선반 대파는 허주의 부상을 미리 견제하겠다는 것이다.
어쨌든 집단지도체제가 될 경우 소주주들이 당을 이탈하지 않고 그럭저럭 한울타리 속에서 공존해나갈 것이라는 게 현상유지 가능론자들의 견해다. 이때도 물론 일부 개별적인 탈당이나 이탈은 있을 수 있다. 특히 충청권 과 수도권 의원들의 동요가 적지 않아 이들 가운데 일부의 이탈은 막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에 비해 당이 어떤 식으로든 언젠가는 분해될 것이라는 견해도 적지 않 다. 이 견해는 한나라당의 정체성이 모호한 데다가 뚜렷한 구심점이 없다 는 점에 근거를 둔다. 오로지 선거에 이기기 위해 생각과 정서가 다른 온 갖 세력이 모인 ‘잡탕밥 정당’이기 때문에 패배한 상태에서는 같은 살 림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계기만 마련되고 명분만 주어지면 차라리 헤어져서 딴살림을 차리는 게 낫다는 소리가 한나라당 내에서도 때때로 들린다. 이러한 취약성을 극복하려면 최소한의 구심점이 있어야하는데 그 구심점도 현재로서는 없다.
한나라당의 구성이 민정-민주계간 이질적인 정치집합이라는 점은 당의 분 화 가능성과 관련해 가장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민주계 특히 PK 민주 계가 현재는 구심점이 없는 데다가 김영삼 정권의 실패로 인한 정치적 책 임론 등으로 입지가 약해져 있는 탓에 당장은 움직이기가 쉽지 않지만, 향후 정계개편의 핵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대선을 전후해 그동안 국민회의 주변에서 상도동계와 동교동계의 대연합 얘기가 나온 것은 앞으 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PK 민주계가 국민신당으로 합류할 가능성도 있 다. 일부 분석가들은 지역에서의 거부감이 국민회의보다는 뿌리가 같은 국민신당 세력과의 합당이나 새 정당 창당 등 독자적으로 움직일 가능성 이 있다고 보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처럼 거대 야당 유지에서 분당까지 모든 가능성을 현재 한 몸에 지니고 있다. 가능성이 어느 쪽으로 현실화될지는 일차적으로는 오 는 3월 각 계보 보스들간의 당권경쟁으로 촉발될 당권투쟁 점화라는 내부 변수와 여당인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의원빼가기 등 외부요인이 어떻게 결 합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당권투쟁을 적당히 마무리짓고 국민회의가 의원빼가기를 시도하지 않을 경우(현재로서는 이 가능성이 높 아 보인다)에는 6월 지방선거까지는 큰 요동이 없을 것이라는 예측이 많 다.
지방선거, 내각제 등 구비구비마다 위기
그러나 전당대회를 무사히 치르더라도 한나라당의 앞길에는 고비가 무수 히 많다. 6월 지방선거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도 한나라당의 미래에 중대 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성적을 그런 대로 지켜낸다면 몰 라도 그렇지 못할 경우 당내 동요는 수습하기가 힘들 것이다. 특히 내년 에 여당이 당초 DJP연합의 약속대로 내각제 추진을 강행할 경우 거대 야 당인 한나라당의 장래는 예측하기 힘들다. 내각제를 둘러싼 치열한 찬반 양론은 한나라당의 헐렁한 결속력을 뛰어넘는 근본적인 문제다.
김종철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8년01월08일 제 19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