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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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우리 겨레의 생명문화재인 한국호랑이. 건국신화에 등장하기도 하는 호랑이는 생활의 한 부분이다.)
호랑이 해를 맞아 한국호랑이를 한번 생각해 보자. 한국호랑이는 단순한 맹수가 아니다. 한국호랑이는 한겨레의 건국신화에 등장할 뿐만 아니라 수많은 설화, 문학, 회화, 공예, 지명, 그리고 다양한 상징물로 지금 우 리 곁에 살아 숨쉬고 있다. 한마디로 한겨레의 중요한 생명문화재다.
연구 보호 전무 오히려 국제적 남획 부추겨
우선 호랑이에 대한 호칭부터 문제가 있다. 호랑이는 원래 8개의 아종이 있다. 호랑이 관련 외국서적을 찾아보면 한국호랑이라는 종이 따로 없다. 인도(뱅갈)호랑이, 중국(화남)호랑이, 수마트라호랑이, 인도차이나호랑이 , 카스피호랑이, 자바호랑이, 발리호랑이, 시베리아호랑이는 있어도 한국 호랑이는 없다. 발리호랑이, 카스피호랑이, 자바호랑이는 지난 반세기 동 안 멸종됐어도 명칭이 남아있지만 한국호랑이는 경우가 다르다.
지금 지구촌에 서식하는 호랑이 가운데 제일 큰 호랑이는 학명으로 ‘판 테라 티그리스 알타이카’(Panthera tigris altaica)로 불리는 놈이다. 이 호랑이의 서식지는 한반도와 한국의 옛 영토권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 이다. 대흥안령산맥을 포함하는 만주일대, 그리고 시호테알린산맥과 이어 지는 연해주가 바로 이 호랑이의 분포지다.
덩치 값을 하느라 서식반경도 가장 넓다. 다른 종들이 1천㎢ 안팎인 데 비해 이 놈은 무려 3천∼4천㎢에 이르는 영역을 활동범위로 삼는다. 지도 를 놓고 자세히 살펴보면 이 호랑이의 서식지가 바로 한겨레의 건국신화 가 싹튼 곳, 고구려의 고분이 널려 있는 지역, 그리고 지금 남북한의 영 토에 해당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이 지역을 남이 차지해 다른 이름 으로 부르듯 정작 한국호랑이, 코리아타이거로 불려야 할 것이 시베리아 타이거, 만추리타이거, 아무르타이거, 동북호(東北虎) 등으로 불리고 있 다.
우리가 그동안 자국 생물자원에 대한 주권적 권리에 무관심했기 때문에 국제 사회에서 한국호랑이라고 불러주지 않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호랑이에 대한 이렇다할 연구논문 한편 국제학회에 발표한 적이 없다. 뿐 만 아니라 멸종위기에 빠진 호랑이 보호를 위한 국제적 협력사업에도 아 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연구와 보호는커녕 멸종의 화를 부른 나라, 그리고 이도 부족해 다른 나라의 호랑이까지 남획케하는 나라로 국제적 비난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호랑이에 대한 주권적 권리를 누가 인정해 주겠는가?
일제가 저지른 호랑이 멸살 작전
(사진/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 동북호림원에서 야생화 훈련을 받고 있는 한국호랑이. 살아있는 동물을 포획하는 훈련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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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땅에서 호랑이를 절종의 위기로 몰아넣은 것은 일제의 철저한 자원 수탈이다. 일제가 저지른 호랑이 멸살작전이 얼마나 처절했는지에 대해 일본인 동물작가 엔도 기미오의 논픽션 <한국의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 는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아! 이 구제작전이 호랑이를 멸망시킨 직접원인인 것이다. …조선인 포수들의 총을 몰수하고 일본인만이 사냥을 해서 호랑이가 없어진 것으로 만 생각했다. 그러나 대규모 인력동원에 의한 철저한 구제작전이 있었던 것이다. 반도전역에 진출한 일본경찰은 호랑이나 늑대가 나타났다고만 하 면 주민을 몰이꾼으로 동원해서 닥치는 대로 죽인 것이다. 그때 사슴이나 멧돼지, 노루 따위도 대량으로 죽였을 터이니 호랑이의 먹이감도 격감했 다. 그것이 호랑이를 간접적으로 멸망시킨 원인이기도 하다. 호랑이 멸망 의 확실한 증거를 잡았다.…”
엔도는 그의 글에서 1915년 한해에만 일본경찰과 헌병 3천3백20명, 관리 85명, 사냥꾼 2천3백20명, 몰이꾼 9만1천2백52명이 동원돼 호랑이 11마리 와 표범 41마리, 곰 2백61마리, 늑대 1백22마리, 사슴 1백28마리, 멧돼지 1천1백62마리를 잡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제의 명분은 해수(害獸)구제 작전이지만 실제는 고가의 호피를 노린 것이었다. 또 떡본 김에 제사지내 는 격으로 사슴, 노루, 멧토끼까지 마구 잡았다. 3·1만세운동이 있었던 1919년부터 1924년까지 5년 동안 호랑이 65마리, 표범 3백85마리를 잡았 다고 엔도는 또다른 글에서 증언하고 있다.<별표 참조>
이러한 일제의 야생동물 멸종작전은 해수구제사업이라는 미명 아래 해방 직전까지 계속됐다. 당시 조선에 온 일본 관리들 중에는 조선의 호랑이나 표범의 모피를 탐내 어떻게든지 이것을 입수해서 자국으로 가져가려 했다 . 귀국할 때의 기념품으로서 이 이상의 자랑거리는 없었을 뿐만 아니라 뇌물로도 최상의 가치가 있었다.
실제 미야께(三宅)라는 일본순사는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호랑이 수컷 한 마리를 잡아 당시 조선에 왔던 일본왕족 강인노미야(閑院宮)에게 바쳐 경부로 승진했다고 한다. 이렇게 일제가 씨를 말려 놓은 데다가 동족상잔 의 포화는 마침내 한국호랑이가 이 땅에 더이상 머물러 있을 수 없게 만 들었다.
한국호랑이는 발리호랑이, 카스피호랑이, 자바호랑이처럼 절멸되지는 않 았다. 남한에서는 멸종상태지만 다행스럽게 그 씨가 중국과 러시아에 잔 존하고 있다. 그러나 숫자는 아주 적어 겨우 2백50여마리 정도. 현재 중 국의 동북지역인 헤이룽장(黑龍江)성과 지린(吉林)성 삼림지대에 모두 16 ∼22마리, 러시아의 시호테알린산맥 일대에 1백50∼2백20마리, 그리고 북 한에 5∼10마리가 있다고 한다.
동물원 등에서 사육하고 있는 한국호랑이는 야생의 호랑이보다 많은 것으 로 나타나 있다. 전세계 1백64개 동물원에 5백14마리가 있는 것으로 집계 되어 있다. 호랑이전문가들은 이렇게 사육되고 있는 한국호랑이들이 다른 종류의 호랑이와 비교해 유전적 다양성이 비교적 높은 것으로 밝히고 있 다. 이같은 유전적 다양성은 근친교배에 의한 자가도태를 어느 정도 방지 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국내 동물원에는 모두 14마리의 인공사육된 한국호랑이가 있다. 광릉수목 원의 경우 지난 94년6월 중국 장쩌민(江澤民) 주석이 기증한 한 쌍이 있 다. 이들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좁은 우리에 마치 징벌방에서 벌을 받 고 있는 죄수처럼 갇혀 있다. 다른 동물원의 경우도 사정은 엇비슷하다.
호랑이 방사? 차라리 굶겨죽여라
(사진/한국호랑이 최대 서식지인 시호테알란산맥의 원시림들이 남벌되고 있어 한국호랑이의 생존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
얼마전 산림청이 호랑이를 방사한다는 계획을 발표해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다. 과연 이 계획은 가능한가? 산림청은 그동안 기술적·법적 절차를 무시한 채 사설 동물원과 공동으로 산양의 자연방사사업을 벌여 학계로부 터 호된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산양의 경우로 미루어 판단할 때 호랑이 방사계획은 홍보용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국호랑이는 어미의 경우 한해에 멧돼지·사슴·고라니·노루·산양과 같은 산 먹이 3∼3.5t이 필요하다고 한다. 과연 우리의 자연이 호랑이에 게 이렇게 생존에 필요한 먹이를 공급할 수 있을 정도인가를 생각해 보면 , 한국호랑이 방사계획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무모한 것인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중국의 경우 호랑이의 서식지 보전을 위해 오래전부터 법적 규제를 강화 하는 한편 증식·자연복귀계획 등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 74년부터 대대적으로 호랑이 실태를 조사한 데 이어, 86년부 터는 헤이룽장성 횡도하자에 고양이과동물번식센터를 세우고 동북호(한국 호랑이)의 번식을 꾀해 70여마리로 증식해 놓았다. 그리고 95년부터는 동 북호 야화방사계획을 세워 증식된 호랑이를 대상으로 체계적인 야생화 훈 련을 시키고 있다.
만약 우리 정부가 한국호랑이의 자연복귀를 원한다면 우선 몇가지 일을 먼저 수행해야 한다. 첫째, 국내에 있는 한국호랑이의 계보부터 파악해야 할 것이다. 과연 동물원에서 보유하고 있는 한국호랑이가 유전학적으로 한국호랑이 혈통을 갖고 있는지를 파악해 놓아야 한다. 보유 호랑이들의 유전자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지속적인 증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도입하는 한국호랑이에 대해서도 이런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둘째, 이 가운데 가장 한국호랑이다운 호랑이를 선정하여 야생조건을 충 분히 갖춘 인공서식시설에서 보호해야 한다. 산림청은 잡종 멧돼지를 증 식하기 위해 강원도 양양에 1백만평 규모의 산림을 철망으로 둘러친 시설 을 갖고 있다. 별도의 시설을 만들지 않고 이곳을 보완·활용하는 게 바 람직하다.
셋째, 북한을 포함한 한국호랑이 분포권에 있는 국가, 즉 중국과 러시아 와 호랑이보호사업에 협력해야 한다. 한국호랑이의 서식반경은 3천∼4천 ㎢에 이른다. 먼훗날 국내의 자연생태계가 원래 모습에 가깝게 복원되고 비무장지대의 철조망이 걷히면 먹이를 찾아 남하할 것이다.
넷째, 이와 함께 한국호랑이에 대한 연구가 학계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 도록 지원해야 한다. 지금 한국은 국제사회로부터 밀렵 호랑이 최대수입 국가로 손가락질 받고 있다. 최근에는 정부에서 엄격하게 규제를 하고 있 지만 지난 70년부터 93년까지 무려 9t에 가까운 호골을 수입했다는 게 국 제야생동물보호단체들의 집계다. 이러한 오명을 씻는 것은 물론 자국의 생물자원에 대한 주권적 권리를 확보하는 차원에서 한국호랑이에 대한 독 자적 또는 국제적 공동 연구에 한국의 학계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 이다.
탑이나 도자기같은 무생물문화재만큼 생명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보여야 할 때다.
노영대/ 객원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8년01월08일 제 19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