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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는 사회 프랑스, 소외는 없다

(사진/임시로 마련된 숙소에서 몸을 녹이며 허기를 달래는 부랑자. 프랑스에는 70만개의 사회운동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프랑스의 겨울. 해마다 연말연시가 되면 세계가 주목하는 문제가 있다. 무주택자나 저소득계층 등 소외된 계층 문제이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소외문제는 ‘솔리다리테(사회적 연대)’의 문제에 직 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한 차원 다른 사회운동의 형태를 띠고 이뤄진다. 프랑스인들은 소외문제를 부자가 빈자를 돕는 자선이나 구호, 시혜의 문 제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살아야 한다는 ‘공동체와 연대의 문제’로 받 아들인다는 것이다. 바로 이점 때문에 프랑스 사회는 “현대 사회가 찾아 낸 진보의식 중 가장 고귀한 ‘연대의식’을 사회 지탱의 한 축으로 만들 고 있는 사회”라는 평가를 받는다.


노숙자 위해 지하철 셔터 안 내린다

12월. 동장군이 성큼 다가오기 시작하면 파리의 지하철역은 문을 내리지 않는다. 지하철 역의 문을 내리는 광경은 동장군이 물러간 3월이후에야 볼 수 있다. 무주택자나 거지들이 따뜻한 지하철 역내에서 밤을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이다. 사회보호센터의 특수 차량들은 매일밤 거리 를 돌며 거지들을 데려가 따뜻한 음식과 공동숙소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런 ‘거리의 천사돕기’와 함께 프랑스인들의 ‘사회적 연대’ 를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소외문제 해결운동이 ‘먹거리 나누기 운동’이 다. 그냥 배고픈 자에게 한끼 식사를 주는 것이 아니다. 거지는 물론 빠 듯한 살림에 여유있게 슈퍼도 맘껏 이용해보지 못하는 저소득계층들도 똑 같이 사회적 부를 공유하도록 하자는 운동이다.

프랑스는 전국에 정식 등록단체만 약 70만개나 되는 사회운동의 나라다. 그 가운데서도 연대의식에 기초한 먹거리 나누기 운동 단체로는 ‘음식물 은행’과 ‘마음의 식당’, ‘라 쿠르트 에쉘(짧은 사다리)’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중 가장 큰 규모의 조직은 ‘음식물 은행’이다. 구호단체의 중앙은행 격인 음식물 은행은 식품회사나 슈퍼체인, 개인으로부터 음식물을 모아 각종 소외 운동단체에 제공하는 창고 구실을 한다. 주로 식품회사나 대형 슈퍼와의 교섭을 통해 식품재고를 모으는 구실을 담당한다. 여기에 참여 하는 자원봉사자만 5만명이 넘고 지금까지 3천6백60개의 소외운동단체를 통해 약 80만명에게 8천2백만 끼의 음식물을 제공했다고 하니 이 운동이 일회적인 자선운동이 아니라 전사회적인 조직 운동임을 실감나게 한다. 다음으로는 먹거리 나누기 운동의 효시격인 ‘마음의 식당’.

이곳은 요리된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이 아니라 집에서 준비해서 먹을 수 있게 기본식품을 제공하는 창고같은 곳이다. 음식물 은행과는 별도의 체계를 갖추고 식품을 모으고 공급하는 거대규모의 조직으로 전국 1천5백 개의 지부에서 2만7천명의 자원봉사자가 일하고 있고 해마다 55만명의 저 소득계층에게 기본식품을 지원하고 있다.


문화행사가 된 ‘마음의 식당’후원 공연

지난 85년 유명한 코미디언 콜루슈에 의해 만들어진 이 조직은 저소득계 층에게 무료로 음식물을 제공하는 전국 규모의 조직이다. 보통 12월15일 부터 3월15일까지, 즉 겨울 동안만으로 한정되지만 더 가난한 사람들에게 는 일년 내내 열려 있다.

월 소득 1천7백50프랑(약 45만원)이하의 소득을 증명하기만 하면 누구나 1주일에 7번의 식사를 해먹을 수 있는 음식을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다. 연예인에 의해 창설된 ‘마음의 식당’에는 연예인들의 참여도 두드러져 보인다. 해마다 운영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열리는 대대적인 콘서트에 유 명한 스타들이 대부분 참여해 프랑스에서 가장 대중적인 운동으로 자리잡 고 있다. 해마다 단골로 출연하는 파트리샤 카스나 장 자크 골드먼 등 세 계적인 샹송 가수들은 더욱 빛나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 공연 뒤 만들어 지는 앨범(CD)수익금은 모두 마음의 식당기금으로 들어간다. 올해로 13년 째를 맞는 이 연합 공연은 이제 프랑스에서는 중요한 문화행사로까지 간 주되고 있다. 앨범수입과는 별도로 이날 모금되는 액수만도 65억원에 이 른다.

프랑스 정부까지 마음의 식당 운동의 거대한 영향력을 의식해 “마음의 식당에 성금을 내면 세금감면 혜택을 준다”는 내용의 특별법을 만들었다 . 이 특별법은 운동 창설자의 이름을 따 ‘콜루슈법’이라고 명명됐다. ‘사회적 연대’에 대한 정부의 지지인 셈이다.

창설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젊은 조직으로 요즘 인기를 모으고 있는 또 다른 조직은 ‘라 쿠르트 에쉘(짧은 사다리; 작은 도움이라는 뜻)’이라 는 저소득계층 전용 슈퍼이다.

1년 전 다니엘르 가뇽에 의해 만들어진 이 슈퍼는 큰 식품회사나 대형슈 퍼에서 유통기간이 다 되어 가는 재고를 모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 자는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했는데 다논과 네슬레, 모모프리 등 대기업이 나 슈퍼가 동참하면서 벌써 큰 조직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슈퍼 또한 마음의 식당처럼 저소득을 증명하기만 하면 된다. 이 슈퍼 는 저소득계층의 외국인 이민들이 많이 찾아오는 점을 고려해 슈퍼 안에 서 프랑스어 수업과 컴퓨터 강좌 프로그램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그 밖에도 DAL과 같은 무주택자 주거 마련해주기 운동이나 ‘빵 나눔’ 운동 등의 단체들이 추운 겨울 프랑스의 소외계층들의 몸을 녹이는 구실 을 하고 있다.


살인적인 실업률 그러나 배고픈 이는 없다

3백만명 실업 운운하며 죽는 소리를 하는 프랑스에 정작 배고픈 사람이 없는 것은 이런 특유의 연대의식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연대의 식은 ‘누구나 소외계층이 될 수 있다’ ‘모두가 함께 살자’는 생각에 바탕을 둔 것이기도 하다.

가령 마음의 식당 한 지부의 책임자로 일하고 있는 마린느씨의 경우 원래 대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로 월 5백만원의 고소득자였으나 해고당해 80만원 의 실업수당으로 살고 있다. 누구나 소외계층이 될 수 있다는 단순한 생 각이 수십만의 프랑스인들을 자원 봉사자와 후원자로 참여시키며 전사회 적인 연대운동을 일궈내고 있는 것이다.

파리=최연구 통신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8년01월08일 제 1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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