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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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엔 육지를 탈출해 섬으로 떠나보자. 흰눈이 쌓인 선착장에서 텅텅 거리는 연락선을 타고 탁 트인 바다에 가슴을 내맡겨보자. 그동안 맺힌 응어리가 바다 바람에 흩어진다. 인공의 조미료가 전혀 가미되지 않은 자 연 그대로의 섬. 그 섬에서 질긴 생명력을 내뿜는 자연을 들이마시며 재 충전을 해보자. 어차피 내년부터는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형편이다. 그렇게 호젓한 섬마을에서 새해 설계를 해도 괜찮을 듯하다.
서산 간월도
-포구에서 즐기는 새떼맞이
(사진/간월도의 겨울철새. 철새떼와의 만남은 그윽한 맛을 더한다.)
눈바람이 몰아치는 해변길을 달리는 기분은 가장 야성감 넘치는 겨울체험 이라고 할 수 있다. 눈썹에 눈이 쌓일 정도의 ‘폭풍설’을 뚫고 수평선 가에 얹힌 외딴섬을 향하는 일은 남극대륙의 한 마을을 찾아가는 일 만큼 이나 역동적이다. 서해바다 천수만의 한가운데, 서산간척지 방조제둑을 타고 가는 간월도까지의 겨울여정은 나그네에게 족히 그러한 성취감을 안 겨줄 만하다. 간월도 가는 길에는 겨울의 진객 철새들이 무리지어 기다리 고 있고, 추녀 끝에 눈을 얹은 겨울 산사(수덕사)와 여독을 풀어줄 온천( 덕산온천)이 앉아 있어서 겨울 여정으로는 안성맞춤이다.
어리굴젓이니 간월암(看月庵)이니 등으로 우리 귀에 익히 알려진 간월도 는 그 두어 가지 명물과 함께 예전엔 ‘서산 갯마을’의 전형쯤 되는 섬 이었다. ‘서산 갯마을’ 하면 ‘고즈넉한 포구와 아낙네들의 한숨이 깃 들인 선창가’를 연상하게 된다. 그래 조미미의 노래 <서산 갯마을>이라 는 것도 있지 않던가…. “굴을 따랴/ 전복을 따랴/ 서산 갯마을/…/ 요 놈의 풍랑은 왜 이다지 거칠은가?/ 아낙네들 눈물이 마를 날이 없구려… ”
그러나 이제 간월도는 ‘서산AB지구 간척사업’의 결과로 외딴 섬 신세를 면하고 ‘바다에 빠져 들어간 땅끝’으로서 새로운 운명을 맞고 있다. 천 수만을 가로지르는 방조제를 타고 자동차들이 쌩쌩 들락거린다. 갯마을의 정취를 쉬 맛보고자 하는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것이다. ‘한숨의 섬’에 서 ‘관광지’로 탈바꿈해 가는 간월도는 요즘 그만한 세태변화를 보이고 있다. 초가나 양철지붕의 집들이 별장같은 벽돌기와집으로 바뀌고 있는 모습에서는 간월도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전보다 한결 나아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된 까닭은 간월도 부둣가에 들어선 횟집들의 말쑥한 단장과 푸짐한 ‘갯것’이 말해 준다.
간월도는 천수만 한가운데에 있어서 갯것이 많다. 우럭, 숭어, 농어, 아 나고, 꽃게, 삼식이, 대하, 소라, 멍게, 새조개 등 20여 가지가 넘는다. 이것들을 회도 쳐주고 구워도 주고 매운탕을 끓여 주기도 한다. 그 중에 서도 특히 눈을 끄는 게 ‘새조개’다. 새조개는 간척사업 이후 생태계가 변하면서 새로 생긴 어른 주먹크기의 조개다. 겉모습은 꼭 커다란 꼬막처 럼 생겼다. 이름이 말해주듯 새조개는 껍질 안에 새의 부리처럼 생긴 촉 수를 안고 있다. 물 속에서는 양쪽 껍질을 벌리고 그 ‘부리’로 바닷속 이곳저곳을 지렛대처럼 짚으며 ‘날아’다닌다. 그러기 위해서 껍질은 무 척 얇고 가볍다. 손으로 살짝 누르기만 해도 금방 깨져 버린다. 그 부리 처럼 생긴 속살을 잘라내 내장을 긁어내고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초장에 찍어 먹는다. 그것을 ‘새조개 샤브샤브’라고 부른다.
간척사업은 간월도에 새조개 외에 또다른 ‘새 풍년’을 가져다 주었다. 선산간척지에 해마다 무리지어 날아오는 철새 무리가 그것이다. 서산간척 지는 이미 세계적인 철새도래지가 되었다고 한다. 11월 말부터 이듬해 3 월 초까지 수십종 수백만마리의 철새가 이곳에서 지낸다. 간월도의 여정 이 겨울에 한층 그윽한 맛이 나는 건 이 철새떼와의 만남 때문이다. 철새 들은 간척지 A지구에 있는 간월호와 B지구 부남호 및 그 주변 논에서 겨 울을 난다. 새떼가 가장 많이 모일 때는 안면도쪽에 석양이 물들 무렵인 데 그때는 호수 수면이 새들이 수놓는 새까만 점으로 가득하다. 논에서 지내는 것들은 주로 몸집이 커다란 기러기류다. 그들은 마치 논에 모를 심은 것처럼 빽빽히 기어 다닌다.
서산간척지의 새를 쉽게 보려면 간월호쪽으로 가는 게 좋다. 간월호 들어 가는 길은 간월도에서 나오는 길이 제방을 넘어 바로 간월호쪽으로 이어 진다. 간월호에는 낮시간에는 수십만마리의 오리떼가 수면 위를 새까맣게 뒤덮고 있다. 덩치가 큰 기러기류는 12월 하순 이후 간월호 주변 논에 떼 를 지어 나타난다. 새를 좀더 자세히 보려면 망원경을 가져가는 게 좋다. 간월호쪽 간척지로 들어가 새떼를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서는 미리 서산 현대농장 관리과에 신청을 하고 가야 한다.
*간월도 가는 길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 천안을 거쳐 온양, 예산, 덕산온천과 수덕사 앞을 지나 갈산농협 앞에서 좌회전한다. 수덕사가 있는 덕산온천에서 서산간척 지까지 40분 걸린다. 간월도는 서산간척지 간월호를 지나 A지구 방조제 초입에서 좌회전하면 10분 거리이다.
간월도에 식당과 횟집이 여러곳 있다. 덕산온천에 나와서 잠을 자는 게 편안하다. 수덕사 관광단지 안에는 우리나라 유일의 초가집여관인 수덕여 관이 있다. 덕산온천지구에는 덕산관광온천장을 비롯해 온천욕탕을 겸비 한 숙박시설이 20여곳 있다. 간월도에서 나와 A,B지구 제방을 지나 20여 분을 달리면 안면도에 닿는다.
서산 난지도의 겨울 빛깔-
온화한 뱃길, 뛰어난 풍치
(사진/해안 풍치가 좋은 난지도 해변. )
충청남도 당진군 난지도(蘭芝島, 석문면 난지도리)는 뭍에서는 만나볼 수 없는 색다른 겨울 풍물을 풍성하게 만나볼 수 있는 ‘겨울-섬’ 여정이다 .
난지도는 대호방조제 중간에 있는 도비도 선착장에서 연락선을 타고 들어 간다. 그런데 서울에서 도비도까지 가는 길이 기가 막힌 드라이브 코스가 된다. 서울 시흥 석수역 앞에서 들어가는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면 아산 방조제까지 1시간이 걸린다. 이 길은 아직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한적하 다.
아산만 방조제와 삽교천 방조제를 지나면 당진으로 이어지는 국도는 그야 말로 운치있는 시골 신작로이다. 질좋은 시골공기를 마시고 사람 키만큼 자란 억새들이 가을에 피었던 꽃을 아직까지 떨구어 버리지 못하고 손을 흔들어 반긴다.
당진 시내에서 우회전하여 대호방조제까지 30분이 걸리는 시골길엔 걸죽 한 갯내음이 풍겨나오면서 바다가 곁에 있음을 알려준다.
도비도 선착장엔 바다내음을 즐기는 사람들이 넘친다. 고깃배가 들어오기 를 기다려 자연산 대하 새우를 사거나 망둥이나 놀래미 낚시를 하는 사람 들이다. 선착장 주위를 둘러보면 소난지도, 우도, 이작도, 육도, 국화도 등 미처 그려보지 못했던 섬들이 반가운 기색으로 다가선다.
도비도 선착장에서 난지도까지는 20여분 걸린다. ‘난지호’라는 배가 간 다. 이배의 선장은 우리나라 유일의 여선장 권오환(37)씨다. 그는 난지호 의 선장뿐만 아니라 갑판장 사무장 등 1인 3역을 겸할 때도 많다. 최근에 필자가 갔던 때도 그랬다. 귀걸이에 금목걸이까지 부티나게 걸치고선 승 객들 배삯 받으랴, 키 잡으랴, 마이크잡고 “소난지도 내리실 분 나오세 유…”하고 갑판정리를 하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왜 가장 바 쁜 일요일날 혼자 다하느냐?”고 묻자 “사무장과 갑판장이 당진장에 가 서 술먹고 퍼져버려서…”라고 답했다. 그래서 오환씨의 난지호를 타고 난지도로 가는 뱃길은 여간 부드럽고 온화한 게 아니다.
난지도는 소난지도와 대난지도로 돼 있다. 뭍을 바라보고 앞에 있는 게 소난지도고 대난지도는 그뒤 바다쪽에서 소난지도를 싸안듯 둘러서 있다. 난지호는 소난지도에 먼저 대고 대난지도로 갔다가 다시 소난지도로 나와 서 한참을 쉰 뒤에 소난지도에서 뭍에 가는 손님을 싣고 대난지도를 거쳐 바로 도리도 선착장으로 향한다. 소난지도는 섬 주위 지형이 들쭉날쭉 아 기자기해서 고기가 알 낳기 위해 많이 모여든다. 그래서 낚시꾼들이 많이 찾아든다. 대난지도는 해안 풍치가 좋고 해수욕장이 있어서 하릴없는 여 행객들이 많이 찾아든다. 그래서 대난지도엔 만나볼 거리가 많다. 먼저 대난지 해수욕장을 가봐야 한다. 이 해수욕장은 육지의 연안에 있는 여느 해수욕장과는 달리 아담한 섬에 자리잡고 있어서 조용한 게 좋다. 간만의 차가 아주 적고 물이 맑으며 특히 봄 여름엔 해당화가 만발하여 길손을 흐뭇한 향내에 취하게 한다.
대난지도 부두에서 벌어지는 ‘게 낚시’도 별난 소일거리다. 망둥이 낚 시를 하다가 ‘입값’(미끼)이 떨어지면 낚시바늘에 남아 있는 입값 냄새 로 게를 구슬러 잡는 것이다. 물이 맑아서 바닥을 훤히 들여다보면서 게 가 낚시 바늘에 엉겨붙으면 얼른 들어올린다. 한번 물면 쉬 놓지 못하는 그놈의 ‘집게다리’를 타고난 게 한이다. 자기 동족들이 잡혀 올라가는 것을 뻔히 쳐다보면서도 낚시바늘을 쥔 집게다리를 금방 풀지 못해 번번 이 지상의 지옥으로 끌려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한 두 시간 게 낚시를 하면 아이스박스 하나 가득 잡는다.
*난지도 가는 배 시간
도비도에서 난지호 배시간은 오전 9시30분, 오후 1시30분, 5시30분이다. 난지도에서는 오전 9시, 오후 1시, 막배는 4시30분이다. 문의는 난지 유 도선협회 대표 최장백 (0457)52-2142.
신안 압해도
-청정해역의 기름진 개펄
(사진/굴따는 압해도 아낙네. )
멀지 않은 섬까지 눈 바람을 맞으면서 차를 타고 가보는 맛은 육지안에서 의 황량한 겨울을 떨궈내는 색다른 여정이기도 하다. 섬에는 육지에는 없 는 걸쭉한 개펄이 있다. 그 개펄은 겨우내내 오히려 더 맛깔스런 갯것들 을 우리에게 보내준다. 그 개펄에는 또 겨울에도 움츠리지 않고 갯것을 해 오는 섬 아낙네들의 활력넘치는 건강미가 있어서 좋다.
그러나 섬이라고 해서 어디에나 풍성한 개펄이 있는 것은 아니다. 황토흙 육지에 가까운 섬이라야 개펄이 기름지다. 육지의 황토흙이 씻겨나가 바 닷물에 절여지면서 기름진 육지의 유기물과 함께 가라앉아 개펄이 되는 것이다. 요즘 지도가 바뀔 정도로 서해안에 간척사업이 활발해지면서 개 펄이 사라지고 있다. 뒤늦게나마 한쪽에서는 환경단체들이 개펄의 생태학 적 중요성을 외치며 보존방안 수립을 촉구하고 있다. 나른하고 게을러지 기 쉬운 겨울에 섬으로의 여정은 우리에게 새봄을 맞을 에너지를 족히 채 워줄 듯하다.
전남 신안군 압해도(면)은 우리나라 섬 가운데 가장 풍성한 개펄을 두르 고 있는 섬이라고 할 수가 있다. 압해도는 목포 북항에서 도선(차를 싣고 가는 철부선)으로 불과 10분거리에 있다. 8백여개의 신안군 섬들 가운에 목포에서 가장 가까운 섬이다. 서울에서 가더라도 차에서 내리지 않고 압 해도에 닿을 수 있다. 압해도가 황토의 땅 남도 끝머리에 이토록 가깝게 붙어 있다는 사실이 무척 기름진 개펄을 갖출 수 있다는 사실과 연결된다 .
신안군의 섬들 하면 맛있는 낙지, 짱뚱이, 숭어, 농어 같은 갯것이 많이 나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예컨대 낙지를 두고 보더라도 신안의 개펄에서 나오는 낙지와 다른 지방의 낙지는 색깔은 물론 맛이 전연 다르다. 신안 군 섬에서 나오는 낙지는 ‘뻘낙지’라고 해서 색이 뻘색이다. 그것에 비 해서 남해쪽 바다에서 나오는 낙지들은 바위틈에 붙어서 살기 때문에 색 깔이 불그죽죽하다. 맛에서는 더욱 뚜렷한 차이가 난다. 뻘낙지는 훨씬 부드러운 가운데 야들야들하고 쫄깃쫄깃하고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한 깊 은 맛(이를 두고 현지에서는 ‘개미’라고 한다)이 난다. 그러나 ‘바위 낙지’나 기름지지 않은 개펄에서 나는 낙지는 맛이 다 우러난 것을 재탕 삼탕 끓인 것처럼 깊이가 없다.
신안군 섬의 개펄에서 나는 낙지는 워낙 영양가가 높아 송아지를 낳은 소 에게 산 채로 한 마리만 던져주면 소가 그걸 덥썩 받아먹고 금방 기운을 차려 일어선다. 물론 미역국에 통째로 넣어 끓여서 산모들의 산후조리용 으로도 쓰이는 별미거리이다.
사정이 그러하니 압해도에 가면 정말 낙지다운 낙지를 싫컷 먹어볼 수가 있다. 압해도에서도 가룡리 마을에 특히 낙지가 많다. 그 마을에는 ‘낙 지도사’라는 별명을 가진 김용택씨가 낙지를 잡고 있다. 이장 김영래씨 를 찾아가도 안내를 잘해준다. 압해도 개펄에서는 또 자연산 굴도 많이 난다. 그 굴을 넣고 끓인 ‘굴죽’은 압해도에서만 먹어볼 수 있는 맛난 음식이다. 그 밖에 압해도에서는 ‘우럭’이라는 조개(생선이름과 같다) 가 나는데, 기름기가 조금만 있는 곳에서도 살지 않는다고 하니 압해도가 아직까지는 청정해역임을 말해주는 ‘증표’인 셈이다.
*압해도 가는 길
목포 북항에서 도선을 타면 10분 걸린다. 도선장에서 가룡리까지는 포장 도로로 이어진다. 15분 거리. 하루에 7차례 도선이 다닌다. 여인숙 한곳 과 서너곳의 식당이 있다.
숙식을 위해서는 목포로 나오기를 권한다. 압해도 동서리에는 섬지방에서 는 좀처럼 보기 힘든 명물이 있는데, ‘장군지팡이’라고 하는 커다란(높 이 4m, 둘레 2m) 선돌이 그것이다. 또 복룡리에는 석기시대 돌그물의 유 적인 ‘독살’이 있는데 최근까지도 마을 사람들이 그것으로 고기를 잡아 먹었다. 문의(0631)71-0191(가룡리 이장 김영래씨).
고흥 나로도-
따뜻한 겨울에 별난 고기잡이
(사진/외나로도 창포마을. )
다도해 남해바다에 있는 섬들은 저마다 개성을 걸치고 사람들의 삶의 터 전이 되어 왔다. 그런데 그 섬들은 이제 도시화의 바람을 타고 ‘재편’( 再編)의 길을 걷고 있다. 젊은이들이 도회지로 떠나가 가구수가 줄어든 섬들은 남은 집들이 이웃의 큰 섬으로 합병을 하면서 ‘무인도’로 변해 가고 있다. 반면에 큰 섬들은 도회의 문화를 구가하면서 ‘발전’의 시대 를 맞고 있다.
전남 고흥군 내·외나로도는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대부분의 섬들과는 달리 요즘 ‘새시대’의 전기를 맞고 있다. 뭍으로부터 안팎 섬으로 각각 두 개의 다리가 놓임으로써 뭍사람들이 활발히 오갈 수 있는 ‘관광의 섬 ’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내·외나로도는 그렇잖아도 일찍이 뭍사람들에겐 ‘가 보고 싶은 섬’으 로 시선을 끌어왔다. 주변 바다에서 청어와 삼치가 워낙 많이 잡혀 일제 때까지만 해도 ‘파시’가 서서 밤바다를 훤히 밝히곤 했다. 일본엔 대륙 상륙 ‘직선 전초기지’격이어서 더욱 중요한 거점으로 채택됐다고 한다. 지금도 외나로도 선착장 부근엔 일제가 지어놓은 대형 기름탱크가 있다. 그 이후에도 청정해역 나로도는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최근까지 집을 수리하더라도 까다로운 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 덕택(?)에 여느 관 광지와는 달리 아름다운 자연이 ‘처녀성’을 잘 보존하고 있다.
외나로도의 맨 남쪽 끝마을 창포는 한겨울에도 봄 같은 날씨에 별난 명물 몇가지를 두르고 있는 곳이다. 창포는 나로도의 끄트머리에 있어서 ‘땅 끝마을’이라고도 불린다. 땅자락이 길고 구부정하게 바다쪽으로 휘어져 뻗은 안쪽에 10여채의 집들이 꼬막껍질처럼 옹기종기 들어서 있다. 그중 에서도 가장 끝집을 ‘땅끝집’이라고 부른다. 그집에 이철근(57)씨 부부 가 살고 있다. 이씨 집은 바닷가 끝에 석축을 쌓고 지었다. 물이 들면 마 루앞 마당 가장자리까지 찬다. 해일이라도 일 경우엔 지붕까지 덮치지 않 을까 아찔한 생각이 들 정도다. 말하자면 이씨네 집 앞바다가 그 집의 정 원이자 텃밭인 셈이다.
그래서 이씨네 생업은 당연히 고기잡이다. 그런데 이씨의 고기잡이에는 남다른 점이 무척 많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개매기’라는 그물이다. 개매기는 ‘개 막이’라는 말이 변한 것이다. ‘개 막이’는 ‘개를 막아 서 고기를 잡는’ 방식의 그물을 말한다. 개매기는 이씨 집 마당앞 개펄 에 3백m 길이의 타원형으로 둘러쳐진 그물이다. 뻘 위에 3m 높이의 말뚝 을 20개 정도 박고 각각 그 끝에 작은 도르래를 설치해 그물과 끈으로 이 어놓는다. 썰물 때 그물을 내려 돌로 괴어 놓았다가 밀물 때 숭어떼가 드 는 것을 보면서 도르레로 이어진 그물끈을 당긴다. 그러면 회유하다가 갇 힌 숭어떼가 한쪽 끝에 있는 통발에 채곡채곡 쌓인다. 숭어떼를 비롯한 고기떼는 일단 들었다 하면 그물에 코가 부딪치더라도 뒤로 후진할 줄을 모르기 때문에 그물줄만 제때 잘 당기기면 마루에 앉아서(또는 안방에서 봉창문을 열고) 숭어를 가마니로 잡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 ‘개매기’는 요즘 창포를 찾는 뭍사람들에게 좋은 관광거리가 되고 있다. 간혹 서투른 솜씨로 숭어떼를 놓치는 수도 있지만 사람들은 그물질 을 서로 하려고 아우성이다. 벌써부터 대부분의 바닷고기들이 봄을 기다 리며 알 낳을 장소를 찾기에 여념이 없다. 그래서 숭어떼들은 이철근씨 집 앞 석축 돌틈 사이까지 코를 쿡쿡 박고 다니며 은밀한 장소를 찾으려 한다.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알 먹고 숭어 먹는’ 격이다. 이때가 일 년 중 숭어잡기에 가장 좋은 시기이다.
이철근씨를 포함한 창포 사람들의 또 한 가지 별난 고기잡이는 꼬막껍질 을 이용한 주끄미 잡이다. 주먹만한 꼬막껍질을 둘씩 쌍쌍이 마주 보도록 해서 새끼줄로 줄줄이 달아 바다 속에 넣어 놓으면 이튿날 그 안에 문어 만한 주끄미들이 옴싹옴싹 들어앉아 있다. 배 속 가득 실은 알을 낳기에 바쁜 주끄미들이 제 집 삼아 찾아든 것이다. 이렇게 잡히는 창포의 주끄 미들은 색깔이 붉그스름해서 진달래빛을 닮았다. 이 주끄미들이 한창 잡 힐 때면 마침 창포 뒷산에 진달래가 춘백(春栢)과 어우러져 피어난다.
창포 개펄에서는 자연산 굴이 많이 난다. 창포 아낙네들은 날마다 그 굴 을 따러 바다에 나간다. 요즘 알이 잔 그 자연산 굴을 넣고 끓인 보릿국 이 별미다. 그래서인지 요즘 시골 들녘에서 보리농사 구경하기가 점점 어 려워지는데도 창포마을 주위엔 유난히 푸릇푸릇한 보리밭이 많이 눈에 띈 다.
*길 안내
광주나 순천에서 벌교를 거쳐 고흥쪽으로 나간다. 고흥읍 들머리에 나로 도행 이정표가 서 있다. 그 길을 쭉 따라가면 다리를 건너 내나로도와 외 나로도로 이어진다. 외나로도 항구엔 4곳의 여관과 대여섯곳의 식당이 있 다. 문의 (0666)33-6275(이철근씨).
최성민 기자/ 한겨레 생활과학부
© 한겨레신문사 1998년01월08일 제 19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