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이주의 독자

최윤선씨

멋진 모피를 입고 싶었다.

그것은 사실 허영심이었다. 턱없이 비쌌지만 언젠가는 사야겠다고 마음먹 었다. 백화점 매장을 돌며 아이쇼핑을 즐길 땐 마음이 들뜨기도 했다. < 한겨레21>184호를 보지 않았다면, 봄이 오기 전 정말로 모피코트를 장만 했을 지도 모른다.

서울 종로6가 장춘한의원에서 경리로 일하는 최윤선(31)씨. 그는 ‘세상 보기’의 사진을 보며 얼굴이 달아올랐다고 한다. 자신이 철없음이 부끄 러웠기 때문이다. “끔찍한 사진이었어요. 구토까지 할 뻔 했지요. 털이 벗겨져 쓰러져있는 여우들과 동강난 머리들. 오로지 모피를 생산하기 위 한 죽임이잖아요. 하마터면 나도 살륙의 축제에 동참할 뻔 했어요.”

그가 <한겨레21>을 처음 접한 건 2년전. 한의원에서 정기구독을 시작하면 서부터였다. 그전엔 한겨레의 매체를 접해본 경험이 별로 없었다. 사실 그는 지금도 <씨네21>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른다. 그래서인지 <한겨레21> 에 대한 편견도 컸다. “이거 괴팍한 사람들이나 보는 거 아냐?” 비판적 인 논지에 거부감이 먼저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그는 그 ‘괴팍함’을 소중히 받아들이고 있다. 그것은 사실 사회적 약자 편에 서는 <한겨레21>의 독특한 시각에 다름아니었다고 믿는 탓이다. 결국 요 즘엔 이런 주문을 할 정도로 변했다. “김대중 정권 아래서도 꼭 비판적 색깔을 잃지 말아주세요. 안 그러면 책 안 볼거예요.”

한의원에서 일한 지는 12년째로 접어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친지 소개로 들어간 직장이다. 한약 달이는 냄새가 지겨울 때도 됐지만, 전혀 안 그렇단다. “아직도 많은 분들이 비싸야 좋은 한약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사람 체질에 따라 처방을 달리해야 하는데, 다짜고짜 녹용만 달 라는 사람도 많고요.”

직장생활은 오래 했지만, 반려자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요즘은 조금씩 초조해져 선도 꽤 본다. 하지만 두번 이상 만남을 가진 상대는 아무도 없 었다. 그는 요즘 남자들에 관해 많이 실망스럽다고 한다.왜 그럴까? 맞선 자리에 나와 재산자랑이나 늘어놓는 한심스런 이들이 적지않다는 것이다. 그럼 그가 말하는 최악의 유형 세가지를 들어보자. 첫째, 머리는 나쁘면 서 돈 있다고 자랑하는 남자. 둘째, 자기의 주변인물만 대단히 자랑하는 남자.셋째, 아무것도 없으면서 다 있다고 자랑하는 남자.

그는 돈은 없어도, 똑똑한 사람이 좋단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머리가 나 쁘면, 있는 돈조차 말아먹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대신 돈이 없어도 머리 가 좋은 남자가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는 게 그의 솔직한 연애철학이 다. “저요? 되게 덜렁거리지만 일할때는 무척 꼼꼼해요. 애교도 있구요. ” 영화와 음악, 등산을 무척 좋아한다는 그는 <한겨레21>남성독자들의 구혼도 뿌리치지 않겠단다.

고경태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8년01월08일 제 1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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