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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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소설가 황석영씨의 석방을 위해 작가들이 행동에 들어갔다. 공주교도소 정문 앞에서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재소자 번호 1306 성명 황수영(황석영의 본명), 신청자와의 관계―지인 , 금 오백원정.’
공주교도소로 황석영을 면회하고자 온 동료 소설가들이 대신 받아든 것은 ‘영치금접수원’이라는 이름의 95㎜×134㎜ 크기 종이 쪼가리 하나씩이 었다. 그 작고 보잘것없는 종이쪽은 그러나 서울과 광주와 대전 등지에서 먼 길을 달려온 이들이 황석영의 석방을 위해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점 심도 굶고 ‘면회투쟁’을 벌였던 작가들은 그 영수증이 황석영의 분신이 기라도 한 양 소중히 간직한 채 왔던 길을 되밟아갔다.
국가보안법상 잠입탈출(밀입북) 죄로 7년형을 선고받고 만 5년 가까이 복 역하고 있는 황석영을 단체로 면회가자는 논의가 소설가들 사이에서 나온 것은 지난 10월께. 최인석 김영현 이순원 은희경 방현석씨 등 40대 중반 이하 전업작가들의 모임인 ‘젊은작가모임’ 회원들을 중심으로 의견이 모아졌고, 그에 소속되지 않은 선후배 작가들이 기꺼이 동참 의사를 밝혔 다. 성탄절 전날인 24일 오후 충남 공주교도소 앞에 모인 작가들은 모두 60여명. 박태순 송영 이문구 윤흥길 조정래 김성동 김영현 임철우 김형경 은희경 신경숙 함정임씨 등 40여명이 서울에서 내려왔고, 송기숙 임동확 씨 등이 광주에서 올라왔으며, 조재도 유용주씨 등 대전과 충남 지역 문 인들 10여명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주차장에서 오전 11시께 출발한 전세버스 안의 분위 기는 화기로웠다. 볕은 포근하고 하늘은 청명한데, 모처럼 한차에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작가들은 정권교체를 이루어낸 선거며 가공할 경 기불황, 그리고 서로의 작품 따위를 소재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 이틀 전 단행된 전두환·노태우 등의 사면복권에 항의하는 시국사범 8 백90여명의 단식에 황석영이 참여하고 있다는 소식은 모두의 얼굴에 금세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일단 교도소 앞에 도착한 다음부터는 지루한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교도 소쪽은 처음에는 단식을 이유로, 다음에는 월별 면회 횟수를 넘어섰다는 이유로, 그 다음에는 한꺼번에 수십명이 몰려온 것은 시위나 마찬가지라 는 핑계로 면회 허가를 꺼렸다. 송영 조정래 은희경씨 등 대표 3명이 교 도소장을 면담하고, 국민회의 법사위 소속 의원 등을 전화로 연결해 회유 와 압박을 계속했음에도 성과가 없자 작가들은 마침내 행동에 들어갔다. 그들은 ‘작가에게 자유를! 펜을!’이라 쓰인 플래카드를 꺼내 들고, ‘ 황석영의 자유를 위한 작가들의 행동’ 명의의 성명을 낭독했다.
작가들의 다음 행동은 영치금 차입. 재소자에게 하루 허락된 영치금 총액 은 3만원이다. 작가들은 ‘면회투쟁’에 참여한 이들 모두의 뜻을 전달해 야 한다는 취지에서 한 사람당 영치금을 5백원으로 제한했다. 교도소쪽은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아예 정문 옆 안내소로 ‘출장’을 나와 영치금 을 접수했다. 아마도 사상 유례가 없었을 ‘영치금 차입 투쟁’과 ‘출장 접수’에 걸린 시간은 30분 가량.
더이상은 어찌해 볼 도리도 없어 5백원짜리 영수증 한장씩을 들고 물러난 작가들을 향해 왕년의 투사 박태순씨가 한마디 한다. “유신 이후의 치욕 을 끝내 떨쳐버리지 못하고 오늘까지 이어왔으니, 참혹하고 또 참혹하다. 오늘의 치욕을 부디 잊지 말자.”
최재봉 기자/ 한겨레 문화부
© 한겨레신문사 1998년01월08일 제 19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