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문화

한국 영화계의 일그러진 현실 보여주는 등장인물들

<죽이는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이게 자기영화라고 주장한 다. 사공 많은 배가 산으로 가듯, 영화는 갈피를 못잡는데도 여관에서 섹 스하는 걸 찍는 몰래카메라는 돌아간다. 여관방이 곧 우리 인생이라며 ‘ 좀만이’들을 몰아 영화를 찍는 여균동 감독은 한국영화가 나아갈 ‘길을 가르쳐주소서’라고 쓴웃음을 날리며 기도한다.

구이도(문성근)

‘영화는 좋았는데 맨날 망하는’ 감독. 여균동 감독의 분신이자 오늘날 한국에서 영화를 한다는 수많은 감독들의 초상. 영화 찍는 게 곧 사는 거 고 사는 게 영화 만들기인 사람. “이번에 죽여줄거야”를 ‘레디 고’ 대신 입에 달고 다니다가 형법 244조 음란물 제작 및 배포에 관한 법률위 반으로 쇠고랑을 찬 불쌍한 남자.

“감독은 무슨 감독. 난 창녀야.”

박말희(황신혜)

에로영화 찍었다는 말을 제일 싫어하는 에로배우. 그의 모친 표현을 따르 면 ‘예술한답시고 차마 눈뜨고 못볼 짓을 했’으나 슬픈 사랑이야기를 꿈꾸는 밥통.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비비안 리 대사 ‘내일은 날씨가 맑을거야’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허영기 많고 제 분수는 모르는 일부 한국 여배우들의 대표선수.

“완전히 벗는 건 가급적 안 했으면 해요. 변신해야 하거든요.”

하비(이경영)

역시 에로배우 출신의 양아치. 개기름 흐르는 얼굴에 좋은 몸 하나를 밑 천으로 액션 스타를 꿈꾸는 잡놈. 예술하려는 데 시정 잡배들하고 말하려 니 힘드시겠다며 구이도를 돕는 척 등을 치는 뛰는 놈 위의 나는 놈.

“하긴 예술이라는 게 배고픈 겁니다.”

여관종업원(고구마)

구이도 감독이 하라는대로 여관에 든 남녀를 몰래 비디오로 찍다가 뭘 해 야할지 ‘휠’이 온 친구. 영화 속 영화에서 얼굴 아래만 보고 사랑하게 된 여자에게 다가가지는 않는 총각. 왜냐하면 성장해야 하기 때문에. “ 이제 무엇을 하고 살지 감이 와요. 안녕히 계세요.”

춘자(전이다)

배우가 ‘막 하고 싶은’ 동네 라이브카페의 무명가수. 아주 다른 사람처 럼, 다르게 살고 싶어서 얼굴도 안 나오는 알몸 대역연기를 열심히 하는 배우지망생. 구 감독을 동정하고 사랑하는 구원의 여성상.

“감독님, 불쌍해요. 이뻐요.”

정재숙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8년01월08일 제 1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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