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사람이야기

10여년 만에 찾아낸 무병장수 베개

“…오래된 잣나무의 붉은 부분을 반원형으로 깎아낸 뒤, 각종 명약 32가 지를 넣고 나서 한줄에 40개씩 3줄로 구멍을 뚫는다. 이 베개를 백일 동 안 사용하면 얼굴에 광택이 흐르고, 1년을 사용하면 모든 질병이 물러가 면서 전신이 향기로워진다. 4년을 사용하면 백발이 검어지고….” 동의보 감 내경편에 전하는 나무 베개 ‘신침(神枕)’의 효능이다.

강창용(52·육산기업 대표)씨는 문헌상으로만 전해오는 이 신기한 베개를 <동의보감>에 나온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10여년을 연구해 온 뚝심의 사 나이다. 방송사 소품을 만드는 중소업체 대표인 그가 신침 연구에 빠져든 것은 다름아닌 자신의 건강 때문이었다. 40대에 들어선 어느날부턴가 발 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고 말할 때 발음이 새는 등 중풍의 전조 증상이 나 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양방, 한방을 가리지 않고 병원을 전전했지만 도 대체 차도가 없었다.

“어려서 사서삼경을 배운 덕분에 우연히 <동의보감>에서 ‘모든 풍을 물 리친다’는 신침을 발견했습니다. 그때부터 강원도 일대를 돌아다니며 직 접 잣나무를 구해 신침을 만들기 시작했죠.” 그러나 원방을 그대로 재현 하는 게 생각처럼 녹녹한 일은 아니었다. 재료인 잣나무는 바람이 잘 통 하는 그늘에서 1년 동안 말려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나무가 갈라지거나 진이 빠져버리기 일쑤였다. 수백개의 잣나무를 말려도 사용할 수 있는 것 은 고작 3∼4개에 불과했다.

베개에 집어 넣을 한약재도 문제였다. <동의보감>에 나오는 한약재의 이 름이 현재 통용되는 것과는 전혀 딴판이었기 때문이다. 한의사들의 해석 도 제각각이었다. 어쩔수 없이 직접 고의서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단심> <본초> <장경악> <황제비경> 등 지금까지 줄잡아 50∼60권의 한의학 원서 를 독파했다. 또 숫말의 정액이 떨어진 자리에서 자란다는 ‘육종룡’ 등 희귀한 약재는 직접 중국에 가서 사와야 했다. 이런 노력 끝에 3년 전 드 디어 첫 완성품이 나왔다.

“어떻게 알았는지 신침을 구할 수 없느냐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부탁을 받고 한두개씩 만들다보니 요즘에는 아예 본업이 바 뀐 느낌입니다.” 그는 지난달 서울시 문화관광상품전에 신침을 출품해 장려상을 받았다. 그러나 신침을 팔아서 ‘장사’를 하지는 않겠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신침은 근거가 희박한 민간 요법이 아닙니다. ‘사람의 목은 모든 질병 이 지나는 자리’라는 선조들의 의학적 경험에 기반한 것이죠. 하지만 원 방을 철저히 재현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연구할 과제가 많습니다.”

김회승 기자/ 한겨레 생활과학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8년01월08일 제 1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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