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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부도나면 손해배상도 부도?

(사진/'법은 피해자를 보호한다'는 믿음이 지켜지기를 바라는 최덕규씨. 유원아파트 6백세대 가운데 1백87세대 새시공사대금을 떼였다. )

“법은 왜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피해자가 법적 구제를 받지 못한다면 뭐 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거 아닌가요?”

고등학교 교사로 가르치는 일에 보람을 느끼며 평범하게 살아온 최덕규(3 7·수원시 권선구 권선동 보성유원아파트)씨는 지금 1년 넘게 법정을 오 가고 있다. 결과도 그리 밝지 않다. 아끼고 아껴서 주택청약저축을 붓고 아파트 분양추첨에 당첨돼 기뻐했던 내집 때문에 생긴 일이다.

94년 여름이었다. 주택청약 3순위라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아파트 분양신청에서 덜컥 당첨됐다. 계약을 위해 찾은 유원아파트 모델하우스에 는 내집마련에 들뜬 사람들이 길게 줄을 잇고 있었다. 계약금을 치르고 돌아서는데 누군가 최씨의 팔을 잡았다. 건네준 유인물에는 아파트 베란 다 새시공사 안내가 들어 있었다.

어차피 입주 뒤에 해야 할 공사였다. 아파트 미관을 위해서라도 한 업체 에서 하는 것이 좋다는 주변의 권유도 있고 무엇보다 자신이 살게 될 아 파트를 짓고 있는 유원건설이 지정한 업체라는 사실에 믿음이 갔다.1백20 만원에 달하는 공사비를 분할 납부한다는 것도 마음을 끌었다. 10만원을 계약금을 치르고 서명을 했다. 그러나 실수였음을 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파트 입주금 중도금을 내라는 통지가 올 때쯤이면 어김없이 날아오던 새시공사 대금 분할 납부용지가 날아오지 않았다. 그때까지 납부한 돈은 60만원. 적지 않은 돈이었다. 지로용지에 적힌 전화번호 다이얼을 돌렸다 . 결번이었다. 수소문을 한 끝에 알아낸 것은 사기당했다는 사실 뿐이었 다. 남선창호라는 회사이름도 도용이었다. 회사는 이미 부도가 났고 대표 는 구속된 상태였다. 물론 변제능력은 없었다. 유원건설 부도 소식에 가 슴졸여야 했던 최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다행히 별탈 없이 입주를 마칠 수 있었다. 96년 2월이었다. 입주 후 얼마 안 돼 관리사무소에서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새시공사대금 문제로 주민 회의를 소집한다는 거였다. 관리사무소를 빼곡이 채운 피해주민들은 남선 창호와 유원건설을 성토할 뿐 이렇다 할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최씨가 나섰다. 조목조목 대처방안을 설명하는 최씨를 주민들은 그 자리에서 대 표로 뽑았다. ‘유원아파트 새시 피해자 대책회의 공동대표’라는 직함이 주어졌다.

처음 도덕적 책임을 인정하면서 선납한 새시공사 대금의 일부를 변제하는 길을 찾아보겠노라던 유원건설의 아파트건축 책임자가 말을 바꾸면서 고 난이 시작됐다. 유원건설쪽은 자기네 회사 법률고문변호사가 검토한 결과 법적 책임이 없다는 결론이 났으니 책임 못진다고 했다. 결국 최씨는 법 률구조공단으로 소비자보호원으로 뛰어다녀야만 했다. 그곳의 답변도 마 찬가지였다. 소송을 해도 이기기 힘들다는 거였다.

그러나 법을 믿고 싶었다. 소송을 내기로 했다. 유원건설은 이미 한보건 설이 인수한 뒤였다. 모두 1백90세대가 참여했다. 소송비용은 피해액이 3 0만원 이상이면 3만원, 그 미만은 2만원씩 추렴을 했다. 그러나 일은 꼬 여만 갔다. 한보건설마저 주저앉았다. 세번째 재판은 열리지도 못했다. 변호사는 채권정리신청을 내라고 했다. 필요한 서류가 많았다. 고소인 가 운데 이사간 사람도 있었고 차라리 포기하겠다고 뒤로 물러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부동산회사를 찾아 이사간 고소인의 연락처를 찾아내고 서류를 받으러 이사간 집을 찾고 하는 일은 온전히 최씨의 몫이었다.

법원은 채권정리신청을 기각해버렸다. 여기까지 오면서 1백90세대의 고소 인 가운데 20여세대가 권리를 포기했다. 이제 최씨는 채권정리신청 기각 이 부당하다는 소송을 진행중이다. 이긴다 해도 부도상태의 한보건설이 손해를 보상할 능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그러나 법은 피해자를 위해 있는 것이라는 자신의 믿음을 버릴 수는 없다. 제자들에게도 똑같은 믿음을 심 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윤승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8년01월08일 제 1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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