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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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도대체 알 수 없는 게 있다. 돈이다.
평소엔 대충 알 것도 같고 특별히 모른다고 해서 불편하지도 않았던 것이 었다. 그런데 요즘 돈은 한마디로 SF영화에나 나오는 괴물이다. 세계 11 위라는 무역대국을 죽였다 살렸다 한다. 국가주권중 일부를 온전히 떼줘 도 무엇에 부아가 났는지 그 놈의 화는 좀체로 풀리질 않는다. 눈도 없는 놈이 대한민국 온 국민이 벌벌 떠는 모습을 지켜보며 킬킬대고 즐기는 듯 도 하다.
더욱이 먹고 입고 살아가는 것 따위를 생산하는 땅과 사람 그리고 생산시 설이 웬만한 나라에 뒤질 것 없는데 그 놈은 어디서 힘이 나오는지 이 나 라와 국민들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물론 빌려쓴 것이 많기는 하다. 그러 나 갚겠다고 무릎끓고 빌어도 막무가내다.
게다가 몇달전 1만달러 하던 국민소득이 졸지에 4천달러로 줄어드는 조화 를 생각하면 아연 실색할 뿐이다. 그 사이 핵전쟁이 일어나 산업시설이 초토화된 것도 아니고 국민 모두가 일제히 먹고 놀기만 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고용불안에 이전보다 남편 여편 가리지 않고 곱배기의 땀을 흘려 일했다. 소득은 흘린 땀에 비례하는 것으로 알고있는 우리의 상식을 그 놈은 야비할 정도로 짓뭉개고 있는 것이다.
돈에 대해 좀 알고 있다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돈은 생물이라고. 게 다가 한번 태어나면 죽지않는 불사신이라고. 돈은 눈도 없고 귀도 코도 없고 팔다리도 없다. 그러나 제 갈 곳만큼은 절묘하게 안다. 그리고 그곳 에 가서 무한대로 증식한다. 그곳이란 다름아닌 이윤이 보다 많이 나오는 곳이다. 그곳은 증식에 제한을 받지않고 들고나기가 자유로와야 한다. 자 신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되면 언제든 빠져나가는 게 돈이기 때문 이다. 그 놈은 욕심이 하도 커 ‘더 많은, 보다 더 많은 증식’을 중얼거 리며 돌아다닌다. 12월중순 IMF달러가 들어왔는데도, 그리고 환율이 곱배 기로 상승하고 이자율도 덩달아 올랐으며 주가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 는데도 돈이 무자비하게 빠져나간 것은 바로 그런 연유다. 잘만 하면 더 좋은 조건을 관철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간파한 것이다.
그래서 돈에는 피도 눈물도 없다도 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서처럼 돈의 값만큼 살과 피를 요구할 정도로 냉혈한이다. 주인이 인정에 끌려 돈의 본성을 무시하면 돈은 그 주인을 차버린다. 돈의 본성 에 충실한 다른 주인을 찾아간다.
그렇다고 돈은 좋은 조건만 찾아다니는 수동적인 놈이 아니다. 유리한 조 건을 창조하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패거리 의식으로 한 나라를 전복시 키기도 한다. 돈 중심보다 인간 중심을 지향하던 칠레의 아옌데 정권을 전복시킨 것이나 니카라구아를 두번씩 굴복시킨 것도 돈이었다. 제3세계 만이 아니다. 70년대의 영국에선 노동당 정권을 무너뜨렸다. 돈놓고 돈먹 기 식의 금융자본은 그 선봉에 선다.
그런 돈에게도 두려운 존재가 있다. 돈이 돈을 낳는 현실을 거부하는, 그 대신 공정한 땀의 대가를 요구하는 노동자가 그들이다. 그들이 조직화됐 을 때는 더욱 그렇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정리해고를 수용하면서 외 국의 돈들이 눈을 반짝이며 돌아올 조짐을 보이는 것은 이와 맥이 닿아있 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말자. 그 돈을 인간의 적절한 통제 아래 두려는 노력 은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고 지구상의 대다수 사람들이 여기에 동참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21 편집장 곽병찬
© 한겨레신문사 1998년01월08일 제 19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