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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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세디요 정부의 지속적인 경제안정화 정책으로 멕시코는 96년 들어 위기를 탈출하기 시작했다.)
요즘 한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세실리아 주한 멕시코 대사다. IMF구제 금융으로 경제파탄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모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멕시 코는 기업의 방만한 해외차입금과 페소화 폭락, 정권이양기의 정치적 리 더십 부재의 와중에서 구제금융을 받았다는 점에서 요즘의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95년 멕시코 물가상승률 48%까지
지난 94년 카를로스 살리나스 대통령이 공기업 민영화와 외국인투자 규제 완화, 금융개혁 등의 구조개혁을 꾸준히 추진하고 정권을 넘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멕시코는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다. 멕시코는 1982년 8 월 외채지불유예(모라토리엄) 선언 뒤 재정을 줄이고 구조개혁에 착수해 제2의 경제기적을 일궈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던 터였다.
12월 IMF 구제금융 5백16억달러가 제공됐고 이듬해 3월 세디요 대통령은 초긴축정책과 구조조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경제안정화 대책을 발표했 다. 부가가치세율을 15%까지 올렸고, 재정흑자규모를 국내총생산(GDP) 4. 4%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 96년 정부지출 4.75%를 삭감했다. 운송 통신 석 유화학 부문에서 민영화가 단행되는 등 국영기업 민영화도 추진됐다. 노 동자와 지식인들의 “국가경제를 탈국가화시킨다”는 비난이 이어졌지만 세디요의 정책은 흔들리지 않았다.
통신의 민영화는 노동자들의 실직으로 이어졌고, 일반 소비자들은 세금이 새로 생긴 것과 같은 고통을 맛봐야 했다. 민영화와 함께 거리에 있던 무 료공중전화가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으로 다국적 기업과의 무 한경쟁에 그대로 노출된 멕시코 대부분의 기업이 파산하거나 외국기업에 매각됐다. 2만여개의 기업이 쓰러졌고 연간 1백만명의 실업자가 거리를 메웠다. 거리는 반란의 기운에 휩싸였다.
그러나 87년 인플레 억제를 위한 조치로 마련된 노·사·정 3자 합의제도 는 95년 최저임금인상률을 10%선에서 억제했다. 87년 160%의 인플레를 경 험하며 마련된 사회적 합의는 이번에도 힘을 발휘했다. “정부의 초긴축 정책이 빈자를 더욱 가난하게 하고 부자를 살찌운다”는 비난 속에 멕시 코인들은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했다. 95년의 물가상승률은 26∼48%. 따 라서 실직하지 않은 사람들도 소비수준을 30%정도 낮춰야 했다.
세디요 정부의 지속적이고 일관된 경제안정화 정책으로 멕시코는 96년 들 어 위기에서 탈출하기 시작했다. 95년 -6.5% 성장률을 기록했던 멕시코는 96년 목표치보다 높은 5% 성장을 이룩하며, 서서히 회복기미를 보였다.
영국 “IMF가 복지제도만 망쳤다”
(사진/영국의 IMF 프로그램 실패는 노동당을 물러나게 하고 대처의 보수당을 등장시켰다. )
반면 1976년 제1차 오일쇼크와 함께 파운드화 폭락사태를 경험한 영국은 IMF 프로그램이 영국의 앞선 복지제도만 망쳐놓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영 국은 파운드화의 가치가 폭락하고 재정적자가 불어나는 위기상황에 빠졌 지만 물가는 안정돼 있었다. 76년 9월27일 외환보유고가 바닥난 영국은 급기야 IMF로부터 53억달러의 긴급구제금융을 지원받기에 이르렀다.
정부는 프로그램에 따라 초긴축정책에 착수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파운드화의 가치는 더욱 떨어졌고, IMF 프로그램의 목적과는 정반대로 재 정적자는 오히려 늘어가기만 했다. 물가도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인플레이션의 고통은 일반인들을 강타했지만 정부지출 감소로 허술해진 복지망은 실업자를 구제하지 못했다. 영국경제는 더욱 수렁에 빠져들었다. 이 사태로 74년 집권한 노동당 정권은 79년 선거에서 참패하 며 대처가 이끄는 보수당에 정권을 내줘야 했다. 영국은 대처집권 뒤 8년 여 동안 복지예산 등 공공지출 삭감과 공기업 민영화 등을 통해 간신히 회복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민영화와 함께 도산한 기업에서 수백만명 의 실업자가 거리로 내몰렸다. 90년대에도 영국에서 실업은 일상적인 문 제가 돼버렸다. 외국의 투자문제를 보도하는 영국언론이 투자액수와 함께 “이 투자로 일자리가 몇개 생겨났다”는 사실을 보도하는 것은 만연한 실업에 대한 일반인들의 공포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게 해준다.
이런 경험 탓인지 영국의 경제분석가들은 IMF식 진단과 처방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 토니벤 당시 노동장관도 이후 <데일리 텔레그라프>와의 회견 서 “당시에 금 보유분과 석유비축분을 풀었으면 공공지출을 대폭 삭감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며 정권을 내주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중남미 국가와 달리 안정된 물가를 유지하던 영국에 대한 IMF의 처방이 오히려 물가상승을 부채질했다는 것이다. 요즘도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 스>는 “금융불안으로 야기된 동남아의 통화위기는 중남미와는 다르다” 며 IMF 정책에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IMF 특별차관을 제공받는 등 6년여 동안 장기수혈을 받은 러시아는 아직 도 민생분야에서 바닥을 면치 못하고 있다. 러시아는 96년부터 단계적으 로 모두 1백2억달러의 경제개혁자금을 제공받았다. 매달 3억3천만달러씩 의 자금이 지급됐지만 국세수입은 줄어들어 재정적자에 시달렸고, 원시적 금융시스템은 경제를 파산상태로 몰아갔다. 러시아는 아직도 경제성장률 3%와 인플레 8.6%의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IMF 체제 이전 국가관리로 경제위기를 넘긴 고전적 사례는 미국에서 발견 할 수 있다. 1929년 10월28일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에서는 변화하는 가격 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의 주가대폭락사태가 나타났다. 30년대 말에는 6백만명에 이르는 방대한 실업자군이 생겨났다. 33년 3월4일 대공황의 와 중에 대통령에 당선된 루즈벨트는 취임하자마자 은행에 대해 임시휴업을 명령했고 공황에 대한 처방마련에 나섰다. 취임 5일 뒤인 9일부터 대통령 의 요구로 열린 임시회의 특별회기에선 국가산업부흥법과, 테네시강 유역 개발법, 농업조정법, 연방긴급구호법 등 숨가쁠 만큼 방대한 양의 법률이 통과됐다. 이른바 ‘뉴딜’의 시작이었다.
국가관리로 위기 넘긴 ‘뉴딜’
공산품 가격폭락 사태를 막기 위해 정부규제가 시작됐고 모든 산업체들이 공정경쟁규약을 작성해야 한다고 명문화한 산업규제방안이 만들어졌다. 농산물에 대해서는 생산억제책 등이 담긴 농업조정법을 마련했다. 농민들 은 파종면적과 가축수를 줄여야 했고 대신 특별보상금을 지불받았다. 이 조처가 취해진 첫 3년 동안 미국 내 농가의 10%에 이르는 60만 농가는 경 매처분을 당해야 했다.
부실해진 금융권은 일대폭풍을 견뎌내야 했다. 3월9일 견실한 은행에만 대출을 규정한 긴급은행구제법이 의회를 통과했고, 이에 따라 활동을 시 작한 부흥금융조합은 가장 견실한 은행에게로 대출을 제한했다. 35년 초 까지 부흥금융조합이 집행한 60억달러의 대출금 가운데 40%는 최대규모 은행에 집행됐다. 35년께에는 29년 2만5천개이던 은행이 1만5천개로 줄어 들었다.
방대한 실업자의 구제를 위해서는 공공사업국이 설치됐고 33억달러의 예 산이 집행됐다. 노동자 수용소가 만들어졌고 11월에는 토목사업국이 설치 돼 겨울 동안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소개하고 나섰다. 결과적으로 다음 해까지 2백50만에서 많게는 4백만명의 실업자가 일자리를 얻게 됐다. 멕 시코와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중남미 국가들은 극단적인 위기국면에서는 일단 벗어난 듯 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이른바 대기업 체제는 새로운 위기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기업의 재벌화 전략은 자본 이동이 자유로운 나 라의 경우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금융불안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 적이다.
각각 다른 모든 나라에서 다른 방식으로 극복된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몇 가지 일반론이 만들어질 수 있다. 경제위기를 넘기는 데 성공하거나 실패 한 국가 모두에서 일반 노동자와 서민들이 겪는 고통의 체감지수는 극도 로 높아진다는 점이다. 멕시코는 이 문제를 3차례의 경제위기를 겪으며 도출해낸 노·사·정 3자합의 전통으로 풀었고, 33년 루즈벨트는 국민의 고통을 호소하는 노변담화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이어 정부의 초긴축정책이 실시된다. 세수확대를 위해 세목을 늘리거나 세율을 올리는 조치가 취해진다. 결과적으로 기업도산과 실업이 일상화돼 전체 노동자의 생활수준은 더욱 낮아진다. 뉴딜정책은 여기에 투자위축을 막기 위해 정부주도의 대규모 공사를 벌였다. 그러나 35년 말까지도 미국 에서는 1천4백만명의 실업자가 거리를 헤매야 했다. 한국에서는 98년 1백 20만 실업시대가 열린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위기를 넘기고 안정국면에 접어든 멕시코는 이제 사회보장과 소득재분배 문제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아직까지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불황의 위기를 극복했건 극복하지 못했건, 위기극복을 위해 어떤 처방전을 사용 했건 국가 위기의 부담은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전가됐던 게 앞선 사례들 이 주는 교훈이다.
송현순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8년01월08일 제 19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