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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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민간통일운동이 정부와 호흡을 잘 맞출때 실향민들의 수십년 묵은 한이 마침내 풀릴 것이다. )
“김대중 정부에서는 민간통일운동단체가 ‘통일운동’만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북한동포돕기 민간단체전국회의 공동대표인 효림 스님(보광사 주지)은 새 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한 기대를 ‘정부의 몫은 정부에게, 민간의 몫은 민 간에게’란 말로 간단히 표현한다.
효림 스님의 이런 지적은 그간 민간통일운동이 실제 통일운동에 접근하지 못했다는 평가에 따른 것이다. 그동안 민간통일운동이 한 일은 대부분 ‘ 반통일적’인 정부에 ‘통일지향적’ 정책을 촉구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YS통일정책과는 큰 차별성
이는 최초의 대중적 통일운동으로 평가되는 올해의 ‘북녘동포돕기운동’ 에서도 잘 드러난다. 정부는 창구단일화, 언론과 기업의 참여 금지 등 북 녘동포돕기의 열기를 최소화하는 정책을 폈고, 민간통일운동단체들은 이 런 조처를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이에 따라 민간통일운동이 ‘반정부적’ 으로 비쳐지기까지 했다. 이런 정부의 ‘반통일성’은 민간단체들에게 ‘ 군축문제’ 등 정부가 주로 책임져야 할 거대담론까지 신경쓰게 했고, 남 북한 교류 등 실질적인 민간통일부문을 위축시키는 작용을 하기도 했다. 재야단체들은 이런 민간통일운동단체들의 어려움이 김대중 정권의 통일정 책에 의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 김대중 당선자가 대통령선 거기간에 내놓은 공약이나 당선 확정 뒤의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이 현 재 김영삼 정부와는 상당히 차별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 당선자는 지난 12월19일 기자회견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 했고, 지난 91년 말 체결된 뒤 사문화한 남북기본합의서의 이행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노태우 정부 말기에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는 경제교류에 서부터 군축까지 여러 가지 남북한 화해와 교류조처를 담고 있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 당선자는 “우리 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해결하기 위해선 남북합의서 이행이 가장 중요한 요건인 만큼 이에 기초 한 남북대화 재개를 제의한다”고 밝혔다. 김 당선자는 이를 위한 특사교 환 재개도 아울러 제안했다. 이는 사실상 ‘북한 고사작전’에 바탕을 둔 대북 강경책을 펴 남북관계를 악화시켰다고 비판받아온 김영삼 정부의 통 일정책과는 차별성을 보이는 것이다.
이 밖에도 김대중 당선자가 대선 당시 내놓은 공약들은 ‘화해와 교류’ 에 바탕을 둔 것이 많이 눈에 띈다. 그 기본 틀을 보면 △국가안보를 최 우선 과제로 삼되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분명한 기조와 원칙 아래 일관된 통일정책을 펴며 △화해와 협력을 기반으로 점진적이고 평화 적인 민족통일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또 김 당선자는 △집권 1년 안에 이 산가족의 재회 및 편지왕래를 실현하고 △정경분리 원칙 아래 남북경협을 적극 추진하며 △북한 식량문제 해결을 위한 지원과 협력을 하겠다고 약 속했다.
김대중 당선, 북한에는 악몽?
(사진/김 당선자는 92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을 강조하고 있다. )
김대중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뒤 다른 어떤 분야보다 통일·외교 분야의 변화가 클 것으로 인식되는 것은 바로 이런 공약의 차별성에서 비롯되는 바 크다. 이에 따라 전국연합 자주통일위원회 최홍재 부장은 앞으로 민간 단체와 정부가 통일부문에서 ‘역할 분담’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내보였다. 민간통일운동단체들이 과거 정권 때와는 달리 “남북 당국들이 원활한 대화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을 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런 영역으로 민간단체들이 주도하는 서울-평양 축구대회 개최 등을 꼽 았다.
김대중 당선자의 통일·외교정책에 대한 기대감은 단지 공약의 차이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연철 연구원(정치학 박사)은 ‘깜짝 쇼’가 아닌 ‘제도적 장치에 의해 풀어가려고 하는 모습’이 김 당선자 의 통일 정책에 기대감을 갖게 하는 첫번째 요소라고 밝혔다. 김 당선자 가 누누이 강조하는 남북기본합의서 이행 약속이 바로 그것이다. 김 박사 는 이런 제도화 의지는 “‘일회성 정상회담’보다 훨씬 남북관계 진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런 제도화 의지가 김영삼 정권의 가장 큰 실책 중 하나로 꼽히는 일관성없는 대북정책을 지양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또 미국기업연구소의 한국 전문가 니컬러스 에버스타트는 “김대중 후보 의 당선은 북한에는 악몽”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 이유로 “북한이 김 당선자를 군사독재자나 미국의 괴뢰로 부를 수는 없다”는 점을 꼽았다. 김 당선자가 오랫동안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해온 야당인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북한이 김 당선자가 요구하는 대화를 거부하기가 더욱 어려 워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김대중 당선자의 통일·외교정책이 장밋빛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우선 짚어볼 점은 남북관계는 상대방이 있는 경기라는 점이다. 외교안보연구원 서동만 교수(정치학)는 “김대중 당선자가 남북 정상회담 을 제안했지만, 식량난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북쪽이 이를 곧바로 받 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만일 조속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려 면 북한에 이에 상당하는 ‘선물’을 줘야 하는데, 현재 ‘국가 부도’ 상황에 처해 있는 남한의 처지에서 이것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정부 차원의 경우도 15만t의 쌀을 지원했던 지난 95년처럼 좋은 상황도 아니고 , 민간차원에서도 북녘동포돕기운동 성금이 연말로 들어서며 감소한 데서 알 수 있듯 역시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김연철 박사는 “결국 속도조절의 열쇠는 여전히 북한이 쥐고 있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대북관계, 어느 정권보다 심리적 우위
만일 김대중 정부가 대규모 지원이란 열쇠로 북한을 조기 대화로 이끌 경 우에도 문제는 남는다. 대국민 설득작업이라는 과제가 버티고 있기 때문 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많이 약화됐지만, 김대중 후보에 대한 거부감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진영의 마지막 성명은 “서울에 붉은 정권 수립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국민 중 39%에 가까운 사람들이 그런 이 후보에 표를 던졌다.김 당선자는 이 3 9%에 이르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현재 남한 경제가 `파산상태'라는 것도 김 당선자의 입지를 더욱 좁히는 것이다.
이때 중요해지는 것이 김대중 정권의 경제외교다. 무엇보다 파산상태에 빠진 남한 경제를 회생시키는 것이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는 데도 큰 도움 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임동원 아태재단 사무총장은 “공약에 나와 있는 바처럼 김대중 당선자는 경제외교에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힘 을 쓸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 총장은 “김 당선자가 당선 뒤 곧바로 미 국 방문을 추진했던 것이 그 한 예”라고 밝힌다. 물론 ‘국가부도 방지 를 위한 미국의 선물’을 기대한 김 당선자의 미국행은 불발로 끝났다. 하지만 임 총장은 이를 “‘국가원수에 준하는 예우’를 준비하기엔 미국 쪽의 준비시간이 부족했던 것일 뿐”이라고 해석한다. 그는 김 당선자의 미국행이 1월 중순께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취임 전부터 진행되는 김 당선자의 외국행의 주제가 ‘경제문제’라는 것 은 앞으로 김대중 정권의 외교정책 방향을 잘 설명해준다는 분석이 설득 력을 지닌다. 또 국민회의와 자민련에서는 이런 경제외교에 일본통인 박 태준 자민련 총재도 큰 지원세력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경제의 어려움 등 여러 문제에도 대북정책에서 ‘자신 감을 가지고 장기적 안목에서’ 대처한다면 큰 무리없이 헤쳐나갈 것으로 내다봤다. 서동만 교수는 “김대중 정부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 대북관계 에서 심리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태”라고 지적한다. 그는 북한이 선거 막판 한나라당과의 교감 흔적이 있는 오익제 편지 등 김대중 후보 지지편지 공세를 편 것이 일종의 빚이라고 해석한다. 따라서 북한은 김대 중 당선자의 당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이런 일을 한 대가로 어떤 반대급 부를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또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강 영식 조직국장은 “김 당선자의 집권 기간에 한두개 문제는 공약대로 되 지 않을 수 있다”면서 “그러나 김 당선자가 북한과 경쟁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21세기의 초석을 놓는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남 북관계 정상화든 경제외교든 20세기 마지막 대통령이 아니라 21세기 최초 의 대통령이란 자세로 정책을 펴나가라는 충고다.
김보근 기자
도움받은 이 : 효림 스님(북녘동포돕기전국회의 공동대표), 임동원 아태 재단 사무총장, 서동만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김연철 삼성경제연구소 연 구원, 강영식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조직국장, 최흥재 전국연합 자주통일 위원회 부장
© 한겨레신문사 1998년01월08일 제 19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