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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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영삼 대통령이 주재하던 국무회의. 정부부터 거듭하지 않으면 오늘의 경제위기를 타개할 수 없다. )
세계는 지금 정부개혁의 시대다. 뉴질랜드,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 들은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앞다퉈 정부개혁을 추진중이다. 무한경쟁 으로 표현되는 국제화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핵심전략은 국제경쟁력을 높 이는 것이다. 차동세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무한경쟁에서 살아남 기 위해서는 민간부문에서의 국제경쟁력뿐만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수 있 는 정부부문의 생산성 제고와 공공서비스의 향상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 다”고 말한다.
경쟁력 46개국 가운데 36위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나라에서 세계화, 국제경쟁력이 가장 뒤떨어진 분야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정부부문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올해 초 발표한 세계경쟁력 평가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부의 경쟁력은 비교 대상 46개국 가운데 36위로, 선진국은 물론 말레이시아 중국 타이 필리핀 인도 등 개도국에 비해서도 낮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부부문의 후진 성은 ‘IMF(세계통화기금) 신탁통치’라는 비극을 불러온 결정적 요인들 중의 하나이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지난 12월20일 임창열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으로부터 정부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경제가 이 모 양이 될 때까지 정부가 그대로 놔둔 데 대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며 “국가운영을 맡은 분들이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개탄했다.
IMF 체제를 극복하고 국제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민간부문의 경쟁력 제고뿐만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부부문의 혁신이 당면과제다. 21세기에 국부를 좌우하는 요소는 자연환경, 사회간접자본, 법과 제도 등 이동이 불가능한 생산요소가 될 것이라는 데 전문가들은 의견을 같이 한 다. 이 가운데 특히 정부가 제공하는 행정서비스와 법·제도적 여건은 가 장 중요한 구실을 하게 된다. 세계적 컨설팅사인 미국의 부즈·알렌 해밀 턴은 지난 10월 ‘21세기를 향한 한국경제의 재도약’에 관한 보고서에서 “한국은 지난 30년간 정부 주도의 경제성장 모델로 눈부신 경제기적을 이룩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발전의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부터 거듭나지 않으면 오늘의 경제위기를 타개할 수 없고 21세기 미 래도약도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 당선자도 기자회견에서 “행정개 혁을 단행하겠다”며 정부개혁의 의지를 분명히 했다.
김 당선자가 지향하는 정부는 ‘작고 효율적인 정부’다. 그 구체적 구상 은 대선공약을 통해 일부가 알려져 있다. YS 정부개편의 대표적 실패작으 로 꼽혀온 재경원은 예산실과 금융정책 집행기능을 떼어내는 방향으로 축 소개편되고, 그동안 국내정치 개입으로 논란을 빚어온 안기부가 수술대에 오를 것이 확실해 보인다. 재경원 통산부 외무부로 나뉘어 있는 통상관련 업무는 통상투자대표부를 신설해 한곳으로 모으고, 과기처 등 과학기술 관련부처도 통합해 위상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중앙정부의 기능을 지방으 로 대폭 이양하면서 내무부를 폐지하고 지방자치단체간 업무조정 업무만 관할하는 지방자치처를 신설하며, 공보처는 정부공보 기능만 남겨 총리실 로 통합시키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청와대 비서실, 단순보좌기능 중심으로
총리실은 예산실과 공보처를 흡수하면서 위상이 강화된다. 검찰과 경찰의 정치적 중립을 제도화하기 위해 검찰위원회와 국가·지방경찰위원회를 설 치한다는 것이 국민회의의 구상이다. 청와대 비서실도 김 당선자의 평소 지론대로 단순보좌기능 중심으로 축소개편될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 총리 실 안기부 같이 앞으로 권력구조에 대한 김 당선자의 의중이 반영될 부분 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동안 권한집중으로 효율성이 떨어지거나 업무가 서 로 중복된다는 지적을 받아온 부처와 여건 변화로 불필요해진 부처들이다 . 국민회의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중심으로 새정부 출범 전에 개편안을 마련해 취임 뒤 이른 시일 안에 마무리짓는다는 계획이다.
국민회의의 구상은 ‘바람직한 정부를 연구하는 모임’(회장 김광웅 서울 대 교수)이 지난 10월22일 발표한 행정기구 개편안과 유사한 점이 많다. 실제로 심포지엄이 끝난 뒤 ‘모임’의 시안은 여야 각 당에 전달됐다. ‘모임’은 당시 개편안에서 △대통령비서실의 소수 정예화와 행정부에 대한 개입 축소 △총리실 위상 강화 △공보처, 법제처를 폐지하고 관련업 무를 재경원 예산실과 함께 총리실로 이관 △재경원은 세제·국고·국민 생활 기능만 남겨 재정부로 축소 △총무처 조달청을 없애고 관련업무를 관리부(신설)로 통합 △통일원은 통일부로 바꾼 뒤 차후 관리부로 통합 △내무부 기능을 지방으로 넘기고 중앙에서 해야 할 업무는 관리부로 이 관 등을 주장했다. 개편안은 또 △교육부도 대학과 지방에 기능을 넘겨주 고 장기적으로 관련부처 교육기능과 통합 △농림부는 해양수산부의 수산 업무를 흡수해 농림수산부로 개칭 △해양수산부 폐지 △중소기업청은 정 책결정기능을 통산부로, 집행기능을 지방 등에 넘겨 폐지 △정통부는 우 편, 금융업무 등을 민영화하고 장기적으로 통산부, 농림부 등의 산업관련 기능과 함께 산업통신부(신설)로 통합 △보건복지부와 노동부를 사회부로 통합 등의 방안도 제시했다. 이는 정부조직을 지금까지의 정책수단 중심 에서 정책목적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 소장은 “통산부 정통부와 건교부 문체부의 산업관련 기 능을 합쳐 산업부로, 건교부와 환경부 해양수산부 등 국토건설관련 기능 을 국토환경부로, 내무부와 보건복지부 보훈처 등 국민생활관련 기능을 국민생활부로 각각 통폐합해야 한다”고 말한다.
취약계층 지원 등엔 정부기능 강화돼야
그러나 정부개혁에 성공하려면 올바른 철학과 전략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 . 단순히 행정조직의 통폐합과 인력감축만을 추구하는 정부개편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YS 정부가 93년 집권 이후 시행한 네차례의 조직개편이 실 패로 끝난 것은 정부개혁에 대한 철학과 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 예 로 YS정부의 규제완화 작업이 실패한 것은 규제담당기구의 개편을 수반하 지 않고 지엽말단적인 절차상의 개선에 매몰된 결과다. 선진국의 정부개 혁은 시장기구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규제완화와 정부조직의 축소를 통 해 시장기구의 자율과 창의를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가가 경제 등 사회 각 분야에 깊숙이 개입해 민간을 통제하고 이끌어 나가는 일은 비용이 너무 클 뿐만 아니라 이제 더이상 가능하지도 않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정부조직과 기능의 개편은 물론 각종 행정 규제의 철폐, 정부업무의 과감한 민간이양을 강조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민관합동의 ‘정부개혁추진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김 당 선자의 약속에 주목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의 역할이 오히려 강화돼야 할 부분도 있다. 공정경쟁을 유지하기 위한 시장규율의 확립, 사회간접자본·환경보호·기초교육 등 공공재의 공급, 사회취약계 층에 대한 지원 등이 대표적 사례들이다.
관료적 형식주의와 독점적 성격으로 인한 정부부문의 낮은 효율과 생산성 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많은 부문에 경쟁요소를 도입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고영선 KDI 연구위원은 “정부기능을 정책입안과 정책집행 으로 구분해 후자는 민영화, 민간위탁 등을 통해 경쟁체제로 전환해야 한 다”고 말했다. 이계식 KDI 선임연구위원은 “중앙 및 지방정부들 외에도 각종 공기업과 관변단체를 합할 경우 우리나라 전체 공공부문 인력은 2백 만명에 육박하는데 그 중 상당부분이 정리, 개선돼야 한다”면서 “영국 은 정부의 행정집행기능을 사업소 형태의 부처내 별도조직으로 떼어낸 뒤 공개채용을 통해 선발된 사업소장에게는 인력, 보수, 예산 등 경영상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대신 엄격한 경영책임을 부과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각 경제부처가 수행하고 있는 기능을 서비스 개념에 충실하도록 수요 자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 영국이나 미국은 이를 위해 각 부처별로 시 민헌장이나 대국민 서비스기준을 채택하고 있다. 권한의 하부 이양, 계약 제와 실적평가제의 도입, 실적급의 확대, 개방적인 인사제도의 도입 등도 각 부처와 개별 공무원의 책임을 높이고 자율성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들 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기능 및 재원을 재조정하고 지방정부의 역할도 강화해야 한다. 총정원이 지난 92년 88만6천여명에서 96년 92만5 천7백여명으로 4.5%나 늘어난 공무원 수도 대폭 줄여야 한다.
기득권층 장황한 보호논리 경계해야
정부개혁은 쉽지 않다. 정부개혁으로 불이익을 받게되는 관료집단과 기득 권층의 반발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미 개편대상으로 이름이 오르내 리고 있는 부처들은 내부적으로 은밀히 시안을 만들어 줄대기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총무처는 최근 김 당선자에 2백쪽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개편 안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진다. 전문가들은 자기생존 논리와 부처이기주의 로 가득할 이들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김 당선자가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고 입을 모은다. 또 정부개편은 기득권층의 입김이 작용하기 힘든 정권출 범 이전에, 늦어도 정권초기에 단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곽정수 기자
도움말 주신 분:고영선(KDI 연구위원), 김광웅(서울대 교수), 이계식(KDI 선임연구위원), 이한구(대우경제연구소 소장), 이용환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사)(이상 가나다 순)
© 한겨레신문사 1998년01월08일 제 19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