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표지이야기

경제개혁의 투사가 되어…

이필상/ 고려대 교수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야간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기득권층의 집요한 권 력수호 노력도 경제가 파탄상태에 이르자 마침내 국민의 여론 앞에 무릎 을 꿇은 것이다. 경제가 정상기능을 상실하고 국제통화기금의 관리까지 받게된 근본원인은 기득권층의 불법적인 정경유착이었다. 그런 까닭에 새 정부는 무엇보다 경제의 기본 골격을 민주적인 시장경제 체제로 바꾸는 근본적인 개혁을 시대적 사명으로 한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당선 직후 대국민선언을 발표했다. 우선 국제통 화기금과의 협력을 충실히 이행하여 국제신인도를 회복하고 필요한 외국 자본을 유입시키겠다고 말했다. 또 경제청문회를 열어 경제가 위기에 빠 진 원인과 책임소재를 규명하고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경제개혁의 청사 진을 그려내겠다고 했다. 더 나아가 기업들을 권력의 사슬과 보호에서 동 시에 해방시키고 철저한 시장경제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이와 같은 정책은 과거의 낡은 틀을 벗어나 새로운 시장경제구조를 만드 는 올바른 방향설정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과연 새 정부가 이렇게 바꿀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확신은 아직 서지 않는다.

첫번째 문제는 이미 무너지기 시작한 우리 경제를 외면하고 떠나버린 해 외자본을 어떻게 다시 끌어들이는가이다. 미국, 일본 등 경제대국들과 우 호적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자본유입을 서둘러야 한다. 그런데 이들 선진 국들은 우리 경제에 주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내겠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특히 구제금융 제공을 빌미로 금융시장을 완전 점령하고 기업 과 금융기관 사냥을 본격화하겠다는 계산이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경제구조 개혁을 하는 데서 기득권층의 저항이 클 것이라는 점이다. 지지율이 40%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반대세력이 정부의 실수를 기다리며 지속적인 반발을 할 경우, 개혁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 다. 더구나 반대세력이 지역감정에 힘의 기반을 두고 새 대통령의 운식의 폭에 큰 제약을 가할 수 있다.

정부개혁을 할 때 관료주의 기득권의 저항을 제압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관료주의는 행정기능을 인질로 삼아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김영삼 대통령이 경제개혁에 실패한 근본원인이 바로 관 료들의 기득권 때문이었다.

재벌개혁도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재벌기업들의 세력구축은 이미 한 계상황을 넘어서 정치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정도가 됐다. 현정부가 삼성 그룹의 끈질긴 요구에 못이겨 자동차사업 진출 인가를 내준 것을 보면 그 들의 힘이 얼마나 센가를 알 수 있다. 김대중 당선자 역시 기업들에서 재 정적 지원을 받은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근본적인 재 벌개혁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새 집권세력의 내부적인 문제도 크다. 자민련과의 정략적인 연대가 분열 의 불씨를 안고 있다. 실제로 새 정부 입장에서 볼 때 자민련은 보수적 성향이 강한 정당으로서 개혁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을 안고 개혁을 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결국 새 대통령은 국 민에게 완전히 열린 정부를 구성하여 여론정치를 펴면서 국제통화기금의 압력을 개혁의 힘으로 이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견지에서 새 대통령은 정계를 대대적으로 개편하여 개혁세력을 여당 으로 집결시켜야 한다. 그리고 순수 거국내각을 구성하여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정부의 면모를 갖춰야 한다. 논공행상 차원에서 가신이나 측 근들을 먼저 중용할 경우 김대중 대통령은 제2의 김영삼 대통령이 될 수 있다. 결국 우리 역사는 민주투사로서 김대중 대통령이 이제 순수한 경제 개혁 투사가 될 것을 절실히 원하고 있다.

© 한겨레신문사 1998년01월08일 제 1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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