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숙 기자의 인물탐험
|
|
푸른 하늘을 보러 산으로 올라간 사람. 노래부르는 자신을 서슴없이 '뒤 풀이 가수'라고 말하는 사람. "참 좋아" 아유, 쪽팔려" "똥 같은 소리 말어유"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 소리꾼 장사익(48)씨는 바람 찬 서울 세검정 골짜 기 높지거니 둥지를 틀고 독공중이었다.
"요새 다덜 되게 어렵잖아유. 제 노랫말처럼 '순대 속 같은 세상살이를 핑계로 퇴근길이면 술집으로' 갔다가, '기진한 몸 텅 빈 가슴으로' 집에 돌아오 는 사내들 뒤꼭지가 눈에 밟히대유. 이번에 낸 두 번째 음반 <기침>은 쓰라리고 고된 세상살이를 다룬 거예유. 신배승 시인이 그걸 기침으로 비유한 게 너무 좋더라구."
'돌아누워도 돌아누워도/찾아오는 환장할 기침은 언제나 끝이 나려는지/ 밥그긋의 천길 낭떠러지 속을/비굴한 내 한몸 던져 버 오늘/삶은 언제 나 가 시박힌 손톱의 아픔이라고...'(<기침>중에서)
"아버지, 바깥에 낙엽 좀 봐유"
삶의 쓴맛, 신맛이 장아찌처럼 절여진 그의 목소리가 가슴으로 우르르 날 아온다. 아픈 걸 후벼내서 눈물 쏙 빠지게 하는 노래. 뚜르르 맺힌 것 풀어주 는 게 그의 노래다. 꺼끌꺼끌. 후둘후둘, 음을 벼려가는 그의 솜씨는 세 상의 슬픔을 너무 많이 알아버린 사내의 마음처럼 출렁, 칼칼한 목울음이 한 대 목 두 대목을 넘으며 응어리를 만들다가 퍽 쏟아내는 파열음은 쨍하고 갈라지는 얼음장 같다.
"기침이란 게 아픔이지유 뭐. 이 시 읽으니까 내 얘긴 것 같드라구. 난 아무리 이름난 시인이 쓴 시라두 내 마음에 안 땡기문 안 되드라구."
'기침'에 얽인 얘기는 또 있다. 그가 밀려드는 공연 요청을 다 접고 안절 부절하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팔순의 부친이 폐암 말기 선고를 받고 안방에 누운 지 몇 달이 지났다. 아버지의 기침은 그의 얼굴을 꺼칠하게 만든다.
"제가 그랬지유. 아버지, 바깥에 낙엽 좀 봐유. 여름엔 시퍼렇지유. 가 을 오면 단풍 들고 안 떨어질라구 안간힘을 쓰잖아유. 사람이 다 그런 것 같아 유."
부친은 고향 이웃에서 이름났던 장구잡이였다. 그 '끼'는 장사익씨가 이 런저런 직업을 멀리 돌아 마흔다섯에 가수로 살아나는 바탕이 되었다. 충 남 홍 성군 광천 촌놈이 열일곱에 무작정 서울에 와 안 해본 일 없이 떠돌다가 뒤늦게 붙든 소리의 길은, "헐 때까지 신나게 하다 갈" 숙명의 길이다. '노래를 부른다/허리가 굽은 그가/탁자를 탁탁 치며/이 풍진 세상을 만났 으니/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국밥집에서 국밥을 먹다 벽에 쓴 낙서를 노랫말로 한 <국밥집에서>는 그 가 생각하는 좋은 노래의 뜻을 엿보게 한다.
(사진/'어디 가든지 내 하고자플 때 내 하고싶은 대로 노래하는' 사람. 그는 그런 자신을 '뒤풀이 가수'라고 말한다. )
"내가 사실 옛날에 뒤풀이 가수여. 어디 가든지 내 하고자플 때 내 하구 싶은 대로 노래했어. 클래식 하는 사람들처럼 딱하구 절 꾸벅하구. 그런 거 난 몰라유. 음악도 모르구. 그냥 밥 먹고 그런 데서, 무대가 아니라 바로 옆에서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부르는 거지. 사람들이 객석에서 숨죽이 고 뻣 뻣하게 앉아있는 거 보면 나도 숨을 못 쉬겠어. 그래 내가 못 참고 한마 디 하지. '왜들 그려유. 그 숨들 좀 쉬세유'."
서울방송의 대하드라마 <임꺽정> 주제가를 녹음할 때 일이었다. 반주를 맡은 국악지휘자 박범훈씨가 장씨에게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딴따 라냐, 성악가냐, 국악인이냐, 이쯤 구분해 말하는 얘기였을 텐데 그는 뜬금없이 "풍류인이요"라고 대답했다.
"어떻게 잘 노느냐, 그게 내 일과여"
"풍류인은 무슨 얼어죽을 놈의 풍류인. 백수인지도 모르고 그 양반이 물 으니 뭐라고 하겠어요. 내가 참 이상한 자리에 서 있는 거지. 라디오 국 악 프 로에 내 노래 <찔레꽃>이 나오드라고. 얼마전 예술의 전당에서 한 '공감' 공연 때는 이미자씨의 <동백 아가씨>를 불렀는데 그게 개관 10년 만에 처 음 있는 일이랍디다."
1집 <하늘 가는 길>에 신중현씨의 <님은 멋 곳에> <봄비> 등을 장씨 틀로 부른 것처럼, 이번 2집 <기침>에서도 <비 내리는 고모령> <대전블루스 > 등의 대중가요를 그 식대로 노래했다.
"<비내리는 고모령>은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거라 넣었어요. 이봉조씨 곡 <뜨거운 침묵>은 색소폰 하는 이정식이랑 재즈식으로 흘러가 봤구먼유." 장씨는 공연을 꼭 1부와 2부로 나눈다. 박자도 그저 설렁, 연주자더러 " 먼저 하셔유. 내 쫓아갈팅게" 하는 그답지 않게 이 원칙만은 꼭 지킨다. "1부에선 창작곡을 불러유. 사람들이 저게 뭔 뜻일까. 무슨 곡절이 있을 까. 긴장하고 듣지유. 2부는 쇼같이 해유. 마음을 탁 열어놓고 줄 거 다 주구
막 까불지유. 이게 바로 우리 음악의 묘미에유. 맺고 푸는 것, 꽉 묶었다 가 시원하고 개운하게 풀어주는 것이 우리 소리의 맛이지유." 그 해원의 소리를 뽑아내고 나면 그는 기진해버린다. 라이브 공연은 그의 목숨과 같다. "한번 공연에 일년 목숨을 까먹는 것 같은 만큼 탈진한다. 그 래서 공연이 끝나면 잘 먹고 푹 쉰다. 그래야 몸을 움직일 수 있다. 그가 장기공연을 못하는 까닭이다.
새납(태평소)을 잘 불고, 춤도 잘 추는 그는 "아떻게 잘 노느냐, 그게 요 즘 내 일과여" 라고 말했다. 잘 놀고 싶다는 그의 꿈은, 이 바닥에 나오 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음악 선배인 김대환씨가 던진 "스타가 되지 말라"는 말과 도 통한다. 잘 노는 그의 소리를 듣고 슬픔을 이겨낼 힘을 얻는 사람. 단 한명 이라도 있다면 그를 위해 목이 터져라 노래부를 것이기 때문이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25일 제 18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