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정재숙 기자의 인물탐험

소리꾼 장사익

푸른 하늘을 보러 산으로 올라간 사람. 노래부르는 자신을 서슴없이 '뒤 풀이 가수'라고 말하는 사람. "참 좋아" 아유, 쪽팔려" "똥 같은 소리 말어유"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 소리꾼 장사익(48)씨는 바람 찬 서울 세검정 골짜 기 높지거니 둥지를 틀고 독공중이었다.

"요새 다덜 되게 어렵잖아유. 제 노랫말처럼 '순대 속 같은 세상살이를 핑계로 퇴근길이면 술집으로' 갔다가, '기진한 몸 텅 빈 가슴으로' 집에 돌아오 는 사내들 뒤꼭지가 눈에 밟히대유. 이번에 낸 두 번째 음반 <기침>은 쓰라리고 고된 세상살이를 다룬 거예유. 신배승 시인이 그걸 기침으로 비유한 게 너무 좋더라구."

'돌아누워도 돌아누워도/찾아오는 환장할 기침은 언제나 끝이 나려는지/ 밥그긋의 천길 낭떠러지 속을/비굴한 내 한몸 던져 버  오늘/삶은 언제 나 가 시박힌 손톱의 아픔이라고...'(<기침>중에서)


"아버지, 바깥에 낙엽 좀 봐유"

삶의 쓴맛, 신맛이 장아찌처럼 절여진 그의 목소리가 가슴으로 우르르 날 아온다. 아픈 걸 후벼내서 눈물 쏙 빠지게 하는 노래. 뚜르르 맺힌 것 풀어주 는 게 그의 노래다. 꺼끌꺼끌. 후둘후둘, 음을 벼려가는 그의 솜씨는 세 상의 슬픔을 너무 많이 알아버린 사내의 마음처럼 출렁, 칼칼한 목울음이 한 대 목 두 대목을 넘으며 응어리를 만들다가 퍽 쏟아내는 파열음은 쨍하고 갈라지는 얼음장 같다.

"기침이란 게 아픔이지유 뭐. 이 시 읽으니까 내 얘긴 것 같드라구. 난 아무리 이름난 시인이 쓴 시라두 내 마음에 안 땡기문 안 되드라구."

'기침'에 얽인 얘기는 또 있다. 그가 밀려드는 공연 요청을 다 접고 안절 부절하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팔순의 부친이 폐암 말기 선고를 받고 안방에 누운 지 몇 달이 지났다. 아버지의 기침은 그의 얼굴을 꺼칠하게 만든다.

"제가 그랬지유. 아버지, 바깥에 낙엽 좀 봐유. 여름엔 시퍼렇지유. 가 을 오면 단풍 들고 안 떨어질라구 안간힘을 쓰잖아유. 사람이 다 그런 것 같아 유."

부친은 고향 이웃에서 이름났던 장구잡이였다. 그 '끼'는 장사익씨가 이 런저런 직업을 멀리 돌아 마흔다섯에 가수로 살아나는 바탕이 되었다. 충 남 홍 성군 광천 촌놈이 열일곱에 무작정 서울에 와 안 해본 일 없이 떠돌다가 뒤늦게 붙든 소리의 길은, "헐 때까지 신나게 하다 갈" 숙명의 길이다. '노래를 부른다/허리가 굽은 그가/탁자를 탁탁 치며/이 풍진 세상을 만났 으니/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국밥집에서 국밥을 먹다 벽에 쓴 낙서를 노랫말로 한 <국밥집에서>는 그 가 생각하는 좋은 노래의 뜻을 엿보게 한다.

(사진/'어디 가든지 내 하고자플 때 내 하고싶은 대로 노래하는' 사람. 그는 그런 자신을 '뒤풀이 가수'라고 말한다. )

"내가 사실 옛날에 뒤풀이 가수여. 어디 가든지 내 하고자플 때 내 하구 싶은 대로 노래했어. 클래식 하는 사람들처럼 딱하구 절 꾸벅하구. 그런 거 난 몰라유. 음악도 모르구. 그냥 밥 먹고 그런 데서, 무대가 아니라 바로 옆에서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부르는 거지. 사람들이 객석에서 숨죽이 고 뻣 뻣하게 앉아있는 거 보면 나도 숨을 못 쉬겠어. 그래 내가 못 참고 한마 디 하지. '왜들 그려유. 그 숨들 좀 쉬세유'."

서울방송의 대하드라마 <임꺽정> 주제가를 녹음할 때 일이었다. 반주를 맡은 국악지휘자 박범훈씨가 장씨에게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딴따 라냐, 성악가냐, 국악인이냐, 이쯤 구분해 말하는 얘기였을 텐데 그는 뜬금없이 "풍류인이요"라고 대답했다.


"어떻게 잘 노느냐, 그게 내 일과여"

"풍류인은 무슨 얼어죽을 놈의 풍류인. 백수인지도 모르고 그 양반이 물 으니 뭐라고 하겠어요. 내가 참 이상한 자리에 서 있는 거지. 라디오 국 악 프 로에 내 노래 <찔레꽃>이 나오드라고. 얼마전 예술의 전당에서 한 '공감' 공연 때는 이미자씨의 <동백 아가씨>를 불렀는데 그게 개관 10년 만에 처 음 있는 일이랍디다."

1집 <하늘 가는 길>에 신중현씨의 <님은 멋 곳에> <봄비> 등을 장씨 틀로 부른 것처럼, 이번 2집 <기침>에서도 <비 내리는 고모령> <대전블루스 > 등의 대중가요를 그 식대로 노래했다.

"<비내리는 고모령>은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거라 넣었어요. 이봉조씨 곡 <뜨거운 침묵>은 색소폰 하는 이정식이랑 재즈식으로 흘러가 봤구먼유." 장씨는 공연을 꼭 1부와 2부로 나눈다. 박자도 그저 설렁, 연주자더러 " 먼저 하셔유. 내 쫓아갈팅게" 하는 그답지 않게 이 원칙만은 꼭 지킨다. "1부에선 창작곡을 불러유. 사람들이 저게 뭔 뜻일까. 무슨 곡절이 있을 까. 긴장하고 듣지유. 2부는 쇼같이 해유. 마음을 탁 열어놓고 줄 거 다 주구

막 까불지유. 이게 바로 우리 음악의 묘미에유. 맺고 푸는 것, 꽉 묶었다 가 시원하고 개운하게 풀어주는 것이 우리 소리의 맛이지유." 그 해원의 소리를 뽑아내고 나면 그는 기진해버린다. 라이브 공연은 그의 목숨과 같다. "한번 공연에 일년 목숨을 까먹는 것 같은 만큼 탈진한다. 그 래서 공연이 끝나면 잘 먹고 푹 쉰다. 그래야 몸을 움직일 수 있다. 그가 장기공연을 못하는 까닭이다.

새납(태평소)을 잘 불고, 춤도 잘 추는 그는 "아떻게 잘 노느냐, 그게 요 즘 내 일과여" 라고 말했다. 잘 놀고 싶다는 그의 꿈은, 이 바닥에 나오 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음악 선배인 김대환씨가 던진 "스타가 되지 말라"는 말과 도 통한다. 잘 노는 그의 소리를 듣고 슬픔을 이겨낼 힘을 얻는 사람. 단 한명 이라도 있다면 그를 위해 목이 터져라 노래부를 것이기 때문이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25일 제 1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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