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세계의 영웅
|
|
(사진/지난 11월15일 베이징에서 대규모 공연을 가진 아무로 나미에. 그의 임신과 결혼 발표는 솔직한 태도 덕분에 스캔들로 비화되지 않았다.)
“뱃속의 아이는 어떻습니까. 긴 여행에 이상이 없을까요.”
지난 11월 중순 인기가수 아무로 나미에(20)가 베이징 공연을 마치고 일 본으로 돌아오자 수많은 일본 취재기자들이 그를 둘러싸고 질문공세를 퍼 부었다. 지난 10월 말 아무로의 결혼발표에 한 스포츠신문이 ‘호외’까 지 냈던 점을 기억한다면 이런 취재열기는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일본사회에 ‘아무로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아무로가 ‘임신 뒤 결혼 발표’를 한 것이 지난 10월22일. 그의 결혼 상대는 자신보다 15살 위인 댄스그룹 TRF의 댄서인 SAM(본명 마루야마 마사하루)이다. 아무로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임신 3개월이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동거를 하면서 늘 결 혼하고 싶었는데 그러면 어떡하나 고민도 했다. 하지만 임신한 사실을 알 고 결혼하기로 합의했다”고 너무도 태연하게 ‘고백’했다. 그러나 그는 혼인신고는 하지 않을 작정이라는 말을 덧붙여 많은 사람을 더욱 놀라게 했다.
10대 소녀들의 영웅
지난해까지만 해도 ‘10대 어린 가수’였던 아무로에게 일본 언론이 ‘호 외’까지 내면서 관심을 보인 것은 그가 일본 ‘10대 소녀들의 영웅’이 기 때문이다. 5년 전 데뷔한 아무로는 지금까지 <캔 유 셀리브레이트> 등 CD 싱글 1천3백만장, 앨범 9백만장을 팔았다. 총매출액만 4백억엔에 가까 운 수치다. 그러나 ‘10대의 영웅’ 아무로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런 매출액이 아니라 도쿄 등 일본 중심 도시에서다. 아무로를 상징하는 갈색 으로 물들인 머리, 배꼽티, 초미니스커트, 부츠 등으로 몸을 치장한 젊은 여성들이 거리에 넘쳐나는 것이다. 일본사회에서 ‘아무로 현상’이라고 부르는 양상들이다.
1977년 9월20일생, 오키나와 출신, 신장 158cm, 혈액형 O형, 체중 40kg. 오키나와 탤런트양성학교 출신의 이 조그마한 여가수에게 일본 열도가 그 렇게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그가 뛰어난 가수이기 때문이기는 하다. 춤 연습이 시작되기 전 아무로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는 수줍음 많고 말없는 소녀다. 그러나 정작 음악이 시작하면 모든 동작이 격렬해진 다. 이런 변신이 일본 소녀들에게 큰 호소력을 주었다.
그러나 파격적인 결혼·임신발표가, 흔히 있는 분별없는 스캔들로 발전하 지 않은 것은 그가 그동안 가져왔던 솔직한 태도가 크게 작용했다. 이전 에 그는 “학교는 나랑 안 맞는다”면서 학업을 중도포기한 것을 부끄러 움없이 고백했다. 이렇게 평소 내숭떠는 것이 전혀 없이 말하고 행동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임신과 결혼 발표라는 사실을 오히려 솔직함으로 받아들 여지게 한 것이다. 실제로 이번 결혼 발표 뒤에도 소속 프로덕션 사무소 에는 비난 대신 결혼과 임신을 축하하는 팩스와 편지가 많이 몰렸던 것으 로 전해진다.
그리고 이는 꽉 짜인 입시제도와 사회의 고정된 가치관 속에서 숨막힐 듯 살아가야 하는 일본 청소년들에게 더없이 강력한 ‘비상구’로 느껴진 것 이다. 지금까지 비상식적으로 보여왔던 일들을 아무 일 아닌 것처럼 자연 스럽게 대응하는 아무로의 에너지. 이러한 긍정적 에너지가 ‘틀에 박힌 ’ 지금의 일본을 좀더 자연스러운 삶을 추구하는 일본으로 바꿀지도 모 른다. 실제로 각 언론들은 아무로의 ‘조혼’ 발표로 인해 30살이 넘어 결혼하는 요즘 일본 여성들의 결혼 나이를 크게 앞당길지도 모르겠다고 입을 모았다.
도쿄=구영구 통신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25일 제 18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