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특집/세계의 영웅

편집자 주/'영웅'은 어디로 갔는가

“과연 우리에겐 진정한 영웅은 있는 것일까.”

‘국가부도’ 사태로 올 겨울이 더욱 스산해진 가운데서도 신문과 방송은 연일 ‘스타’를 쏟아내고 있다. 야구의 스타, 가요계의 스타, 기업의 스 타, 수출의 스타… 등등.

하지만 그들은 그저 명멸하는 스타일 뿐이다. 그러나 스타가 곧 영웅은 아니다. 과연 우리의 스타 가운데 진정으로 ‘영웅’이라 불릴 만한 인물 은 존재하는 것일까. 예로부터 영웅은 ‘국태민안’을 척도로 평가했고 한발 물러서면 난세의 삶에 희망을 주는지 여부로 가늠했다. 과연 우리에 게 영웅이란 이름에 값할 만한 인물은 있는 것일까. 이런 의문에 답하기 위해 <한겨레21>은 세계로 눈을 돌려보았다.

프랑스에서는 현재 총리 리오넬 조스팽을 ‘텔레비전의 영웅’으로 부른 다. 프랑스 국민들은 무엇보다 모든 것을 ‘공약(公約)대로’ 해나가는 조스팽에게서 ‘공약(空約)’을 남발하는 여느 정치인들과는 다른 모습을 본 것이다. 또 러시아에서는 ‘믿을 수 있는 국산 보드카’로 국민의 마 음을 사로잡은 34살의 기업가 블라디미르 도브간이 청소년들의 ‘영웅’ 이 되고 있다. 도브간은 ‘성공한 기업인’의 모습을 보임으로써 자칫 마 피아를 희망으로 삼으려는 러시아 청소년들에게 “길은 거기가 아니다” 라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 영웅을 갈망하는 대중들은 이미 오래 전 숨진 인물(예컨대 미국 의 존 모건)을 부활시키기도 하고, 기존 관습을 파괴하는 대중스타(일본 의 아무로 나미에)에게 강한 매력을 느낀다.

그러나 “영웅이라 불리는 이가 모두 영웅은 아니다”는 점을 우리는 중 국에서 확인한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중국 인민들의 가슴을 울렸 던 ‘영웅 리수리’(李素麗)는 당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쏠리자마자 곧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영웅을 만들어 국가통치의 효율을 높이려는 ‘60년대 사회주의방식’이 이미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예다. 세 계 각국의 영웅들을 살펴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드러난다. “자기 일에 철 저하고, 어둠 속의 민중들에게 빛을 던져주는 이”란 점이 바로 그것이다 . 물론 조스팽은 ‘공약을 지킨다’는 정치인의 원칙에 충실했을 뿐이며, 도브간은 ‘상품의 질을 속이지 않는다’는 상거래의 근본을 따랐을 뿐이 다. 하지만 정치인의 거짓말에 식상하고, 기업인들의 속임수에 신물이 난 사람들은 이 가장 상식적인 이들을 ‘영웅’으로 부르는 것이다.

이는 ‘영웅사관’의 태두 토머스 칼라일이 정의하는 영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의 역사는 근본적으로 위인들의 역사”라고 주장했던 칼라일 은 영웅의 조건으로 두가지를 들었다. 이 19세기 역사학자가 꼽은 조건은 아주 단순하다. 첫째가 성실함이고 둘째가 통찰력이다. 성실함이란 자기 일에 충실한 것이고, 통찰력이란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인식하는 능력이 다. 따라서 칼라일의 주장을 풀어보면 영웅은 ‘보통사람들에 의해 추인 된 성실한 지도자’가 된다.

그러나 ‘진정한 영웅’을 가려내기란 그리 쉽지 않다. 나치의 히틀러마 저 한때 독일 국민들의 영웅이 됐던 예를 보면 특히 그렇다. 우리 사회에 서도 지금 ‘과거의 독재자’를 영웅으로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진정한 영웅’이 탄생하는 데는 그를 알아보는 민중들의 의식이 중요하다. 얼마나 사회를 비판적으로 인식하는가에 있다는 것이다. 영웅 은 바로 그들 곁에 있을지도 모르고 그들이 말하는 영웅이란 것이 허깨비 이거나 악마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우리 문제로 돌아와보자. 과연 우리 사회에는 이 어려운 난국을 함께 헤 쳐나갈 영웅이 존재하는 것일까. 그것은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른 바 이 사회의 엘리트라 불리는 이들을 제대로 평가하고 비판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과 다름없다.

김보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25일 제 1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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