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세계의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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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따 일약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프리맨.)
“원주민과 백인의 진정한 화합을 위해 달리고 싶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금메달을 향해 맹훈련중인 오스트레일리아의 여자 육상선수 캐시 프리맨(24)의 소망이다. 원주민 출신인 그는 지난해 애틀 랜타올림픽 여자 4백m 경주에서 은메달을 딴 뒤 올 8월 아테네 세계육상 선수권대회에서는 당당히 금메달을 획득함으로써 일약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프리맨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 육상선수로서 최초의 금메 달리스트였다.
프리맨이 ‘국민적 영웅’이 되는 데는 스포츠 스타가 대중적 영웅이 되 는 과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간승리라는 극적 요소가 큰 구실을 했다. 올림픽 은메달 이후 오랜 연인과의 결별, 뒤이은 깊은 수렁 같았던 슬럼 프, 훈련계획의 취소, 기나긴 방황의 나날들, 대중들의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 머리를 짧게 자른 채 출전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트랙의 여왕으로 등극한 의지의 원주민 오스트레일리아인!
‘원주민이면서 오스트레일리아인’
하지만 프리맨이 영웅이 된 데는 ‘인간승리적 요소’를 뛰어넘는 그 어 떤 것이 있다. 바로 원주민과 백인이 오랜 인종갈등을 벌이고 있는 오스 트레일리아에서 그가 ‘화합의 파랑새’ 구실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원 시적인 삶을 영위하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백인 정착 이후 백인들 에 의해 ‘무기력과 나태 그리고 열등성의 상징’으로 내팽겨쳐져 왔다. 백인들에 의해 열등한 존재로 규정된 원주민들은 백인들에게 땅을 빼앗기 고 심지어는 인간성마저도 유린당하는 세월을 살아야 했다. 최근 원주민 권리찾기 운동이 본격화하면서 정부 방침도 인종차별에서 화합으로 바뀌 었지만, 여전히 원주민의 사회적 지위나 복지 등은 백인들에 비해 열악하 다.
이런 상황에서 프리맨의 존재는 원주민들에게 2백년이 넘게 지속된 인종 적 제약과 열등감을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한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프 리맨 역시 자신이 원주민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는 94년 영 연방 게임을 시작으로 각종 국제대회에서 입상하면서 유니언 잭이 새겨진 오스트레일리아 국기와 함께 원주민을 상징하는 삼색기(흑·황·적)를 함 께 들고 트랙을 달렸다. 기회 있을 때마다 원주민의 정체성을 만방에 알 린 것이다.
그러나 ‘국민영웅 프리맨’은 백인사회와 문화를 배타적으로만 대하지는 않았다. 프리맨은 일관되게 “나는 오스트레일리아인이자 원주민임을 자 랑스럽게 생각한다. 그 두가지는 나에게 통합된 하나이다. 나의 삶이 흑 백의 진정한 화합에 기여하기를 원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지난 8월 아테네에서 국기와 삼색기를 휘날리며 트랙을 도는 프리맨의 모 습은 전국민들을 열광케 했으며 흑백화합의 국가적 상징으로까지 간주되 었다. 특히 올해 들어 원주민 토지소유권을 둘러싼 정치적 대립으로 흑백 갈등이 첨예화되면서 프리맨의 스포츠를 통한 인종화합 메시지는 더욱 큰 호소력을 보이고 있다. 그는 현재 오스트레일리아가 나아가야 할 지표를 ‘원주민이면서 오스트레일리아인’이란 말로 간략히 표현한다. 인종을 떠나 국민 모두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가 농축돼 있는 말이기도 하다.
시드니=정동철 통신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25일 제 18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