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세계의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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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자존심과 정직을 만들어진 도브간은 순식간에 모스크바 시장에서 가장 좋고 비싼 보드카로 자리잡았다. 러시아 주류판매점의 보드카 진열대 모습.)
“보드카 ‘도브간’을 아십니까.”
‘도브간’은 러시아 ‘최고급’ 보드카 이름이다. 이는 또 올해 34살의 한 러시아 청년실업가 이름이기도 하다. 블라디미르 도브간이 바로 그다. 그는 소련 해체 이후 혼란이 거듭되는 러시아에서 ‘신토불이’를 내세워 성공한 기업인이고, 그래서 마피아를 인기직업의 앞순위에 두는 러시아 청소년들에게 ‘대안적 영웅’으로 떠오른 인물이기도 하다.
‘마피아 선호’ 젊은이들에 대안적 영웅
러시아 주류판매점에 가면 여러 종류의 보드카에 접하게 된다. 우선 값싼 러시아산이 있고, 그보다 2∼3배 비싼 외국산 보드카도 눈길을 끈다. 그 런데 러시아인은 특이하게도 비싼 외국산을 더 많이 선택한다. 싸구려 러 시아 보드카는 제조과정이 엉망이어서 올해만 해도 이 보드카를 먹고 숨 진 사람이 4만여명에 이르렀다. 물론 위험성 때문만은 아니다. 러시아 사 람들의 외국문화 숭배경향과도 일정 정도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 좋은 실례로 꼽히는 게 제정 러시아 시대의 귀족들이 프랑스어를 즐겨 썼다는 사실이다. 이런 고리타분한 취향이 외국 물건은 무조건 비싸고 좋은 것이 라는 인식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고정관념을 근본적으로 바꿔버린 인물 이 바로 도브간이다.
1964년에 원동 지방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는 콜호즈의 의장이 되는 것이 꿈이었던 그지만, 현재 그는 러시아에서 유행하는 말인 ‘노브이 루스키( 신 러시아인)’ 중에서도 가장 잘 나가는 사람이 됐다. 그가 처음 러시아 시장을 장악한 것은 보드카를 통해서였다. 러시아 보드카는 못믿겠다는 러시아인들의 마음을 자기의 성을 상표로 한 ‘최고급 보드카’로 사로잡 은 것이다. 병도 고급으로 만들었고, 또 그동안 보드카 시장에서 소외됐 던 여자들을 상대로 과일 등을 첨가한 보드카를 선보였다. 사람들은 생소 한 그 이름에 한두번 손을 대보고는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한 도브간을 찾았다. 왜냐하면 도브간 보드카는 언제나 고품질이란 믿음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작한 보드카 도브간은 순식간에 모스크바 시장에서 가장 좋고 비싼 보드카로 자리를 잡았다. 도브간이 외국산 보드카에 비해서는 1.5배 , 러시아 산 보드카에 비해서는 5배까지 비싼데도 말이다. 그리고 그 시 장은 점차 확대되기 시작했고, 보드카 시장에서의 위력만큼은 못하지만 식음료품뿐만 아니라 담배까지도 가장 비싸고 좋은 물건으로 자리잡게 되 었다. 그가 보드카 이외의 시장에 진출하면서 내세우는 것은 “러시아 것 이 좋은 것이다”였다. 그리고 이 구호는 보드카 시장에서 성공을 통해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샀고, 이후 러시아 소비재 상품들이 시장에서 활력 을 찾는 데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실패할 때 잃어버린 것을 아쉬워 말라”
그는 현재 정규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도브간 쇼>(게임 쇼)까지도 제작 하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출판사를 차려 자기의 자서전인 <나는 어 떻게 도브간이 되었는가>를 썼다. 이 모든 것이 그가 32살에서 34살 사이 에 일어난 일이다. 자서전에서 그는 자기가 태어나서 어떻게 자랐는가를 썼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역시 그 가 어떻게 단 한순간에 높은 명성과 부를 획득하였는가에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사회적인 부를 쌓은 것은 자존심과 정직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보드카 시장에서 그가 품질을 입증하지 못했다면 그는 도산했을 거 라는 것이다.
이런 도브간에게서 러시아의 젊은이들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는 듯하 다. 언젠가 러시아에서 앙케이트 조사를 하였을 때 마피아가 선호직업의 윗순위를 차지한 적이 있었다. 외부에서는 마피아를 직업으로 선택하겠다 는 젊은이들이 많은 것은 러시아가 망할 징조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러시 아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가능성을 표현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마피아를 생각했을 뿐이다. 따라서 문제는 러시아 젊은이가 아니라 그런 상황을 만들어낸 ‘러시아’에 있었다.
하지만 도브간은 그런 ‘비정상적인 고정관념’마저 부수어버렸다. 도브 간은 “당신이 만약에 실패했을 때 잃어버린 것을 아쉬워하고 있지 말라, 잃어버린 것만큼 얻은 것이 있는만큼 얻은 것을 생각하라”라고 러시아의 젊은이들에게 충고한다.
모스크바=강완구 통신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25일 제 18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