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특집/세계의 영웅

미국/금융왕 모건이 그립다

(사진/거액의 자금을 동원해 도산 직전의 회사들을 살렸다.)

미국 최대의 경제전문지 <포브스> 편집인들이 내는 <포브스―미국 20대 기업가 이야기>에서는 빌 게이츠와 함께 존 모건이란 인물을 “우리의 생 활과 기업문화를 바꾼 경제인”으로 소개하고 있다. <포브스> 편집인들이 지난 96년에 처음 출판한 이 책은 이미 국제적인 베스트셀러다. 책방에서 도 대중판으로 나온 이 책을 찾는 사람들의 문의가 쇄도한다.


“나를 믿어라, 내가 책임지겠다”

그런데 이렇게 집중조명을 받고 있는 모건은 현시대 인물이 아니다. 이미 이번 세기 초에 생을 마친 ‘과거의 인물’이다. 그런데 왜 현재 미국인 들이 과거의 모건을 ‘영웅시’하는 것일까. 그 실마리는 현재 남한은 물 론 아시아 전체가 겪고 있는 금융불안이다. 사람들은 그를 미국을 금융대 란에서 구한 ‘금융왕’으로 인식한다.

1907년 미국 뉴욕의 10월은 유난히 쌀쌀했다. 맨해튼 중심부의 부자촌에 서 중절모를 눌러쓴 투자자들이 월가쪽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순식간에 수천명으로 불어난 그들은 은행이 몰려 있는 25∼26번가를 가득 메웠다. 대리석 기둥이 즐비한 은행가에는 돈가방을 챙겨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 뤘다. 예금 인출을 위한 아우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문을 닫는 은행 과 신용금고가 줄을 이었다. 뉴욕시에서만 13개의 은행이 문을 닫았다. 문을 닫는 공장도 속출했다. 각 신문은 변제능력 상실로 법정에 서거나 자살하는 중소기업주·금융업자 이야기로 연일 도배했다. 전국으로 번져 가는 이 금융대란에 당시 중앙은행도 없던 미국 정부당국은 속수무책이었 다.

이때 이 위기를 구한 ‘구국의 영웅’이 바로 미국 철강회사 대표인 존 모건이었다. 당시 그는 70살의 고령임에도 ‘월가의 대부’답게 이 위기 에 민첩하게 대처했다. 유력한 은행장들을 자기 서재로 불러들여 긴급구 제자금을 마련하자고 설득했다. 순식간에 그는 거액의 자금을 동원해 뉴 욕증권거래소와 뉴욕 시정부를 ‘살렸다’. 유력 신탁회사의 대표들도 모 건의 호소에 따라 변제능력 상실로 도산 직전에 있던 회사들을 살렸다. 이때 모건이 돈을 빼려는 군중 앞에 직접 나서서 “내가 직접 책임지겠다 ”고 장담함으로써 투자자들을 안심시킨 사례는 유명한 일화다. 이에 따 라 유력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은 “모건이야말로 가뭄에 단비였으며 나라의 경제를 파멸에서 구한 자타가 공인하는 지도자이다”고 평가했다.

이렇게 ‘미국을 구한’ 모건의 신속한 대응과 신뢰는 1913년 숨진 그를 역사 교과서에만 묶어두지 않았다. 30년대부터 나오기 시작한 모건 전기 는 현재까지 수십종에 이르고, 미국 경제인 사이에서는 아직도 그는 ‘살 아 있는 신화’다.

당시 모건은 중앙은행도 없는 미국사회에서 스스로 ‘신뢰의 화신’이 됨 으로써 미국 경제의 혈맥을 유지시킨 것이다. 경제위기란 게 실제 경제의 위기에서 촉발되기도 하지만, 정부나 금융기관을 불신하는 ‘신뢰부족’ 에 의해 증폭되는 게 다반사다. 그런데 그는 신뢰의 완충제가 없던 미국 사회에 신뢰의 매개체가 됐다. 그는 이후 1913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미국 중앙은행)가 세워지는 데도 초석이 되었다.


‘독점의 강화’라는 미운 오리새끼

하지만 ‘정부도 못하는 일을 한’ 이 ‘금융왕’에게 찬사만 쏟아지는 것은 아니다. 모건은 급전을 빨리 끌어대 월가의 붕괴를 막으면서 스스로 ‘통화 독점체’를 성립해 나갔다. ‘모건과 친구들’은 이제 자기들의 이익에 따라 돈의 흐름을 조작하고 일반 시민들을 곤경에 빠뜨릴 수도 있 게 되었다. 모건의 부정적 결과는 1907년 금융대란에서 당시 시어도어 루 스벨트 대통령으로부터 ‘사실상의 항복’을 받아내면서 현실화한다. 모 건의 미국철강회사는 ‘반독점법’을 무시한 채 테네시철도회사의 지분을 헐값에 인수했다. 그리고 이것은 ‘모건 왕국’ 팽창의 시작이었다. 1913 년이 되면서 그가 거느린 기업은 34개의 은행 및 투자 신탁회사, 10개의 보험회사, 32개의 운송회사, 24개의 제조업 및 무역회사, 12개의 공익사 업체로 늘어났다. 금융대란은 모건에게는 ‘위기가 아닌 기회’였다.

나라는 정치가에게 맡기는 것보다 자기 같은 ‘식견을 갖춘 경제인’이 운영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모건은 믿었다. 오늘날에도 모건과 같은 믿음을 가진 미국인이 많다. 그러나 1907년 미국의 경우와 똑같은 일을 겪는 나라에서는 ‘영웅’ 모건의 부정적 측면도 눈여겨봐야 한다. 위기 상황에서의 국가의 무능은 독점의 강화라는 ‘미운 오리새끼’를 낳는다 는 점 말이다. 지금 모건이 월가를 중심으로 형성했던 ‘통화독점체’는 온 지구를 포식의 대상으로 삼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보스턴=윤성주 통신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25일 제 1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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