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경의 맛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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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빨갛게 무쳐낸 운저리 무침과 운저리회.)
‘운저리’는 전라도 말로 망둥이를 일컫는 것이다. 순천과 벌교쪽으로 내려가면 ‘문저리’ 또는 ‘문절구’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뭐가 뛰니 까 망둥이도 덩달아 뛴다’고 할 때는 망둥이라 부른다.
남해안에서 백령도에 이르기까지 서해 어디서나 잡히는 망둥이는 특히 갯 벌이 많은 서해 남부 해안에서 나는 것이 맛이 더 좋고, 또 이곳 사람들 이 가장 즐겨 먹는다. 먹는 방법과 소박한 맛이 퍽 서민적이고 부담이 없 다. 그래서인지 남해안의 갯벌을 밟으며 자란 40∼50대 중년층에게는 향 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먹거리이기도 하다.
운저리는 흔하고 값싸면서도 그 생태를 살펴보면 신비한 면이 있다. 본래 1년생 어족으로 4, 5월에 산란을 마치면 후줄근하게 탈진해 암수 모두 그 대로 죽는다. 새끼들은 그 어미의 고기를 먹고 자란다는 말도 있다. 그래 서 어깨가 축 늘어진 사람을 보면 ‘운저리 말라 비틀어진 것 같다’고 호남사람들은 말한다.
잡는 방법도 간단하다. 주로 낚시로 잡는데 막대기에 줄만 매면 된다는 말이 있다. 낚시 바늘이 없으면 미끼를 그냥 줄에 매 물 속에 넣고 흔들 면 물려 나온다는 것이다. 한번 물면 잘 놓지 않는 성질에서 나온 말이다 . 먹성 좋고 번식력도 강하고, 철부지처럼 순진한 망둥이는 어린아이들까 지도 심심하면 놀이삼아 잡으러 나가는, 참으로 정겹게 느껴지는 먹거리 다.
봄에 산란한 망둥이는 여름 휴가철이 끝날 무렵이면 이미 알맞게 자라 이 때가 가장 여리고 맛이 뛰어나다고도 한다. 하지만 겨울 망둥이라야 자랄 대로 다 자라 몸길이가 30㎝ 정도에 이르고 살도 오른다. 회로 먹거나 말 렸다 구워 먹기에는 겨울 망둥이가 제격인 것이다.
서울 강남에 전라도 영암과 해남에서 올라온 망둥이로 고유한 운저리 회 와 운저리 무침을 전문으로 내는 곳이 있다. 큼직한 운저리를 알맞은 크 기로 토막내 접시에 담고 초장과 기름된장, 그리고 야채가 곁들여 나온다 . 새콤한 초장에 찍어 그냥 먹어도 되지만 옛맛을 아는 중년층들은 기름 된장에 푹 찍어 상추잎에 올려놓고 마늘과 풋고추를 몇조각 얹은 다음 뚤 뚤 말아 와삭와삭 먹으며 향수에 젖는다. 젊은 세대들은 양파와 무, 오이 , 마늘 등을 채쳐 넣고 새콤매콤하게 막걸리 초장에 무쳐내는 운저리 무 침을 더 좋아해 두가지로 낸다고 한다.
어떤 것을 좋아하든 서울에서 유일한 운저리 횟집인 이곳은 주인 김남섭 씨 부부 역시 갯벌로 이름난 영암군 삼호면 출신들이다. 그래서 횟집 이 름도 삼호 짱뚱이집(515-6638)으로 내걸었다고 한다. 서울에 문을 연 지 는 2년을 갓 넘어섰지만 목포에서 몇해 동안 횟집을 경영하면서 본바닥에 서 익힌 솜씨고 전라도 해안의 어족에 관한 한 자신이 있다고 자부한다. 그래서인지 남도 사람들의 입맛에 꼭 맞는 집으로 소문나 있다.
김씨의 운저리 손질법은 독특하다. 생선을 손질할 때 누구나 배를 따고 내장을 꺼내지만 운저리는 불룩한 뱃가죽이 부드럽고 고소한 부위여서 이 곳에 칼을 대면 기름이 다 빠져 나가고 맛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등뼈를 따라 내려가며 칼로 등을 갈라 내장을 꺼내고 등뼈와 등지느러미까지 다 듬어 낸다.
운저리는 비록 갯벌에 서식하지만 몸에 점액질 막이 형성돼 있어 몸을 깨 끗하게 보호한다. 실제로 갯벌에 사는 다른 물고기와 달리 투명한 살갗이 그렇게 깨끗할 수 없다. 그래서 옛날에도 바다에 망둥이 낚시를 나가면 된장이나 고추장을 한덩어리 싸들고 나갔다고 한다. 잡히는대로 머리와 내장을 도려내고 된장을 발라 깻잎에 싸먹으면 그맛이 그만이었고 흙탕물 에서 잡아올린 그대로지만 아무 탈이 없었다고 설명해 준다. 또 운저리를 무칠 때에는 꼭 막걸리 식초를 넣어야 제맛이 난다고 한다. 막걸리 식초 가 없으면 감식초라도 넣어야지 일반 식초를 넣어서는 제맛이 나지 않는 다고 한다. 그러나 예로부터 흔하고 서민들 몫이었던 탓으로 다른 횟감에 비해 값은 여전히 한수 밑에 든다. 일반회나 무침회 모두 한 접시에 1만5 천원.
삼호짱뚱이집서 맛보는 ‘남도인심’
삼호 짱뚱이집은 강남구 논현동 네거리에서 가깝다. 찾기 쉽고 주인의 인 심도 후한 전라도 인심 그대로다. 회와 함께 나오는 밑반찬만 보아도 곰 삭은 황석어젓, 생새우무침, 생김무침, 홍갓 물김치 등이 나오는데, 어떤 손님은 비싼 갓김치를 두그릇씩이나 먹고 간다며 오히려 즐거워한다. 고 향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고향사람들을 만나는 게 돈벌이보다 더 행복하 다는 것이다.
집 앞에 차를 몇대 세울 수 있고 골목 안에 주차공간이 따로 있어 차를 타고 가도 크게 부담이 없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25일 제 18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