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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만의 제자들

40년 전. 그랬다. 꼭 40년 전이었다. 그 40년 전의 제자들이 그에게 큰절 을 하고 있었다. 봉옥이, 점순이, 현근이, 상옥이, 창진이…. 꿈이 아니 었다.

경북 풍기에서 주부대학 강사로 활동중인 시인 반영교(60)씨. 그는 지난 해 8월19일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 “교직생활 수십년을 해도 그런 대접 받기가 힘들다는데…. 부끄럽고 송구스럽기만 했습니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가 경북 영주 오계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한 건 전 쟁의 포연이 채 가시지 않은 1954년. 수줍음 많던 열여덟살 처녀 때의 일 이었다. 모든 게 서투르기만 하던 시절.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57년 혼인과 함께 그는 교직생활을 접어야 했다. 그리고 강산이 네번이나 바뀌 었다. 그동안 그는 네 남매의 어머니로, 여덟이나 되는 손자손녀들의 할 머니가 되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를 잊지 않고 있었다. 집으로 날아온 오계초등학교 제 12회 동창회 초청장은 그렇게 긴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그를 화들짝 놀라 게 했다.

제자들은 그 전 해 재경동창회를 열었다고 했다. 한번 다 모여보자는 의 견이 나왔고, 1년 뒤 고향에서 전체모임을 가진 것이었다. “어쩌면 그렇 게 많이 왔는지, 47명 중 40명이나 왔어요. 컴퓨터를 동원해 동창들과 당 시 교사들의 연락처를 샅샅이 알아냈다고 하더군요.” 제자들은 그에게 석돈짜리 금쌍가락지를 선물했다. 한아름 꽃다발과 함께. 남자선생님들에 겐 넥타이핀이 돌아갔다.

40년 전의 꼬마들은 쉰이 넘은 중년이 돼 있었다. 농사짓는 제자들은 그 보다 더 늙어보이기도 했다. 여제자들은 반 선생님의 얼굴을 본 뒤 너스 레를 떨었다. “어머 엄청 젊으시네요. 호호할머니가 오실 줄 알았는데, 호호….” 어떤 제자는 그를 ‘동화 잘 해주시던’ 선생님으로 떠올렸다. 그때 배우던 노래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이도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그 감동과 기쁨을…. 나를 아직까지도 잊지 않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요. 거기에 극진한 대접과 선물까지 받았으 니….” 그날 이후 제자들과의 ‘접속’은 계속됐다. 편지를 주고받았고, 스승의 날 땐 선물이 오기도 했다.

그는 요즘도 중요한 일이 있을 때면 그때 받은 쌍가락지를 끼고 나간다. 그리고 이렇게 자랑한다. “이게 제 40년 세월이 녹아 있는 반지랍니다. ”

고경태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25일 제 1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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