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삶

"고향 지키려 카드 배워요”

정선군 고한읍 삼척탄좌에서 일하는 경력 5년의 광원 최근영(30)씨는 우 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고개를 넘어 통학하는 대학생이다. 그는 직장일이 끝나는 평일 오후 5시면 어김없이 해발 1천2백68m의 싸리재를 넘는다. 이 웃 태백시 태성전문대에 공부를 하러 가는 것이다.

학교에서 그는 특수관광학과 야간부 1학년 학생이다. 그곳에서 그는 삽과 곡괭이를 들었던 손에 카드를 잡고 블랙잭, 룰렛, 바카라 등 카지노 게임 을 익히며 카지노 딜러의 꿈을 키운다. 태성전문대 특수관광학과는 폐광 지역에 들어설 예정인 카지노에 전문인력을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올해 처음 신입생을 뽑았다.

그가 카지노 딜러가 되려는 동기는 의외로 소박하다.

“화려한 무엇을 찾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려는 것뿐입니다.” 그의 고향인 고한에는 머지 않아 탄광 이 문을 닫고 카지노리조트가 들어서기로 예정돼 있다. 중학교 때 공부를 위해 고한을 떠난 그는 군에서 제대하면서 바로 고향으로 돌아와 칠순의 노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최씨의 만학에는 적지 않은 희생이 뒤따랐다. 최씨는 우선 광산에서 탄가 루를 마시지 않아도 되는 몇 안 되는 좋은 자리 가운데 하나를 포기해야 했다. 광원들을 지하로 실어나르는 수갱인차 운전업무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그보다 한단계 아래인 비상차 운전업무를 자원한 것이다. 비상 차 운전공은 일반 광원들과 달리 3교대를 하지 않고 주간근무만 할 수 있 는 자리여서 매일 밤 공부할 시간을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교대근무를 하지 않은 결과 월 평균 임금도 20여만원 가량 줄어들었다. 이와 함께 그는 중고 아벨라승용차를 거금 4백30만원을 주고 샀다. 통학 용으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희생은 엄청난 학비부담이다. 그가 2학기에 낸 등 록금 1백84만원은 그의 두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것이다. 학자금에 대해 그는 할말이 많다. 광원들에 대한 복지정책으로 광원 자녀에 대해서는 대 학교 졸업할 때까지 전액 지원되는 학자금이 막상 광원 스스로가 공부할 때는 지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대학들이 모두 탄광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에 있어 대부분의 광원들이 대학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태백시와 같은 탄광지역에도 대학이 생겨 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 된 만큼 광원들에 대한 학자금 지원이 하루빨리 제도화되어야 합니다.” 최씨는 이와 함께 “주변에 인근 태성전문대에 다니려 해도 비싼 학자금 때문에 못간다는 동료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최씨의 이런 꿈이 실현되는 데는 적지 않은 걸림돌이 놓여 있다. 특수관 광학과는 2년제여서 그는 내년에 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하지만 그가 들 어가서 일할 카지노는 그때까지 착공도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폐광 지역에 들어설 카지노는 계획대로 되면 2001년 10월에 문을 열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최근 어려운 나라의 경제사정으로 보면 폐광지역의 카지노 에 대한 투자는 상당기간 더 늦어질 것같다.

졸업한 뒤부터 고한에 카지노가 세워지기 전까지 이 공백기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가 벌써부터 그의 큰 고민이다. 최씨와 같은 고민을 하는 학 생들은 야간부에 7명, 주간부에 80명이 더 있다. 고민 끝에 최씨는 학교 쪽에서 알선만 해준다면 공백기간중 외국의 카지노 딜러 전문양성기관으 로 나가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실제 카 지노 유학이 가능할지에 대해서 확신은 없다. “안 되면요, 전문대 졸업 장이라도 받은 것에 만족해야지요”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25일 제 1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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