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진단1

병역전선, 사활을 건 한판

(사진/이회창 후보의 병역문제는 헌거 막판까지 예기치 않은 돌발사태를 몰고 오고 있다. 12월10일, 귀국한 수연씨가 오전에 공개적인 키재기를 했다.)

병역문제는 이번 대선을 관통하는 최대 쟁점 중의 하나다.

지난 7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당시 신한국당 후보로 선출된 직후부터 터져나온 이 후보 두 아들의 병역면제의혹은 선거종반까지 선거판을 계속 뒤흔들고 있다. 그런 점에서 다소간 기복은 있었으나 한때 반짝하다 사그 라든 다른 선거 쟁점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회창 후보 장남인 정연씨의 소록도 자원봉사에 이어 미국에 유학중인 둘째아들 수연 씨가 잠시 귀국해 공개적인 키재기를 하는 ‘해프닝’마저 일어났다. 현 역장교인 손대희 중령이 ‘이회창 후보는 군통수권자의 자격이 없다’며 양심선언을 하고 병무청 직원인 이재왕씨가 정연씨의 ‘고의체중감량’을 폭로하는 등 선거 막판까지 예기치 않았던 돌발사건을 끊임없이 몰고 왔 다.


“경기 북부·강원에 큰 영향”

무엇보다도 병역문제는 여권분열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선판도를 근본적으로 뒤바꿔 놓은 요인이었다.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가 병역문제로 인한 이회창 후보의 지지도 하락을 이유로 당시 신한 국당을 탈당해 독자출마를 강행하는 명분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병역문제는 이처럼 이번 대선기간 내내 활화산처럼 잠시도 불길을 멈추지 않았다. 이회창 후보의 큰아들 정연씨의 소록도 자원봉사로 불길이 멈추 는 듯했던 이 문제는 둘째아들 수연씨의 키조작 문제로 이어져 확전됐다. 결국 수연씨는 미국에서 귀국해 공개적인 키재기를 하고 돌아갔다. 병역 공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수연씨가 돌아간 직후 병무청 직원의 예상 치 못한 폭로로 잦아들던 불길이 정연씨쪽에 붙어버린 것이다. 국민회의 와 국민신당은 이를 계기로 선거막판에 결정적으로 유리한 상황이 조성됐 다고 보고 이회창 후보의 사퇴를 촉구하는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각당이 병역공방에 사활을 거는 것은 이미 투표를 끝낸 부재자는 물론 젊 은층과 부동층 표의 향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여론조사기관들은 “연령별로는 군입대를 앞둔 20대층과 지역별로는 지역 주의적 투표행태가 상대적으로 적은 경기북부, 강원도 등지에서 병역문제 가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지난 12월11일부터 시작 해 13일 끝난 이번 대선의 부재자투표 대상자는 총유권자 3천2백32만3천2 백69명의 2.5%인 80만1천1백30명이다. 이들 중 군인이 60여만명을 차지한 다. 현재 근무중인 군인들에게 병역문제는 예민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여권후보의 표밭으로 인식돼온 군유권자들 선택은 선거 결과를 좌 우할 수 있는 정도의 파괴력을 갖는 것으로 평가된다. 국민회의 한 관계 자는 “이회창 후보 가족의 병역문제는 군부재자투표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며 “전체 군유권자의 표가 2(이회창):4(김대중):4(이인제)로 분산됐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부재자투표뿐 아니라 일반 유권자들 중 부동층의 향배에 병역문제가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에 대해서도 각당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병역 공 방은 현재 한나라당과 국민신당 사이에서는 최대의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 다. 병역문제를 걸고 두당이 상대당 후보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서는 등 사활을 건 싸움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과 국민신당 사이에 형 성된 ‘병역전선’에 국민회의가 국민신당을 측면지원하는 양상이다.

이회창 후보의 큰아들인 정연씨가 고의로 몸무게를 줄여 병역을 면제받았 다는 병무청 직원의 폭로가 있자 국민신당은 강도높게 이회창 후보의 사 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국민신당은 상대당의 후보사퇴뿐 아니라 정계은퇴 도 요구하는 등 공세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국민신당의 주장 가운데는 이회창 후보 부부의 개입의혹도 새로 추가됐다. 국민신당이 이회창 후보 의 사퇴를 촉구하는 배경은 ‘대통령으로서 군통수권자의 자격이 없다’ 는 것이다. 국민신당 김충근 대변인은 “정연씨는 목숨을 건 단식투쟁과 다름없는 살인적인 감량을 했다”며 “이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파렴치한 행위로 이회창 후보는 모든 진실을 밝히고 국민에게 사죄한 뒤 대선후보 사퇴와 정계은퇴를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 대변인은 특히 “정연씨 가 입대를 앞두고 마지막 1주일간 물만 마시고 이틀 전부터는 입에 물만 적시는 목숨을 건 투쟁을 해 입영 때는 걸음을 걷기 힘든 상태가 됐는데 이 후보 부부가 이를 몰랐을 리 없다”고 이 후보 부부의 개입 또는 사전 인지 의혹을 제기했다.


한나라당도 공세적 자세

(사진/수연씨의 키를 잰 오후에 정연씨의 고의 병역기피 의혹을 폭로하는 이재왕씨의 양심선언이 있었다. )

국민회의도 책임추궁에 가세했다. 정동영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이회창 후보는 지금까지 정연씨가 적법절차에 따라 병역면제를 받았으며 몸이 나 빠 체중이 줄었을 뿐 고의감량은 없었다고 얘기해 왔는데 모두 거짓임이 드러났다”며 이 후보의 책임을 추궁했다. 국민회의는 병역문제가 쟁점화 되자 군부대 근처에서 선거운동을 하는 ‘발빠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 다. 국민회의 강원도지부는 신병 입영일인 지난 12월9일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용산리 102보충대 앞에서 입대하는 젊은이들과 그 가족 등을 상대 로 선거운동을 펼쳤다. 국민회의는 앞으로 투표일까지 집중적으로 군부대 근처에서 선거운동을 펼칠 계획이다.

한나라당은 병무청 직원 이재왕씨의 폭로에 대해 “완전 날조된 것”이라 고 주장하며 이씨를 허위사실유포에 의한 명예훼손혐의로 검찰에 고발하 는 등 강경대응에 나서고 있다. 한나라당 맹형규 대변인은 “김대중, 이 인제 후보는 신체적 결함 때문에 불가피하게 군대를 면제받고 마음 한구 석에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애써 감추어온 상처를 들쑤셔대는 선거운동을 해온 데 사과해야 한다”며 “이인제 후보는 2년 동안이나 병역기피 수배자였다”고 반격을 가했다.

한편 지금까지 병역문제에 관한 한 방어적 자세를 견지해오던 한나라당은 선거막판에 들어가면서 공세적인 자세로 바뀌었다. 한나라당은 지난 1일 제1차 TV 합동토론회에서 이인제 후보가 이회창 후보의 둘째아들인 수연 씨의 키조작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회창 후보 가족의 모든 병역의혹이 해소되면 후보를 사퇴하겠다’고 발언한 대목을 근거로 이인제 후보의 사 퇴를 요구하는 맞불공세를 펼치고 있다. 수연씨의 키조작 의혹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으니 이인제 후보가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공격 이 최선의 방어라는 쪽으로 돌아선 것이다.

그러나 야권에서는 “정연씨가 대외경제연구원을 갑자기 그만두게 된 배 경과 그의 신상카드를 폐기하게 된 이유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면서 “정연씨가 신체검사를 받았던 병원 소유자의 가족 중 한 사 람의 증언도 갖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병역문제는 투표일까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김성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25일 제 1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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