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독자주장

언론이 대통령 지명한다?

대통령선거를 코앞에 두고 벌어진 몇몇 언론사의 특정후보 편들기에 실망 감을 감출 수 없다. 그런 행위는 언론이 사회의 공기로 공정성을 견지해 야 한다는 매우 기본적이고 단순한 원칙마저 지키지 못하는 행태이다. 나 아가 그런 행위가 발전되었을 때는 민주주의 이념의 실현 자체를 저해하 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는 데 큰 문제가 있다.

민주주의란 말 그대로 국민이 주인이 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인이 된다는 것은 오늘날 단순히 참정권을 행사하여 대표자가 되거나 선출하는 행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각 국가들마다 영토와 인구 문제로 어쩔 수 없이 대의제를 선택하고 있지만 그것 자체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절대적 대안은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 의는 실현과정에서 국민들이 정당하고 올바른 사실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 하겠다. 그래서 대의제 한계를 극복해 더욱 발전적인 선택을 하게끔 하는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언론매체의 구실이다.

이처럼 현대 민주주의에서 언론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그들 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가에 따라 국민 여론이 움직이고, 한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동안 이 자명한 이치를 무수히 경험했 다. 과거 30년 군부독재 시절, 언론이 건전한 비판정신으로 올바른 보도 를 했더라면 지금 우리의 현실은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당시 권력 의 총칼 앞에 언론이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정치상황이 변한 지금, 언론은 앙갚음을 하려는 것인가. 이제는 언론이 권력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정도가 아니다. 그들 스스로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며 권력이 되어 움직이고 있다. 대통령 만들기라는 신조어를 만들 며 김영삼씨를 만들었던 언론, 현재의 경제파탄에서 언론의 책임은 없는 것인가. 언론이 대통령을 한번 잘못 뽑게 했으면 됐다. 그런데 또다시 자 신들의 구미에 맞는 대통령을 만들려고 혈안이 돼 있다. 그런 행위는 국 민을 담보로 자신의 이권을 챙기려는 반민주적인 도발행위다.

우리 언론은 국민 앞에 지난날 자신들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잘못을 사과 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국민을 다시 우롱하며 죄를 지을 셈인가. 이제 국민은 더이상 어리석지 않다. 언론의 집행유예 기간이 끝나는 날까지 국 민들은 두눈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다.

이경빈/ 서울시 중랑구 묵2동 238-49 28/5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25일 제 1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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