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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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지는 경영은 어디에 있나
표지이야기 ‘노동자, 또 희생양인가’에서 우리 사회의 뒤틀린 단면을 느낄 수 있었다. 노동자는 언제나 버림받는 존재로 있어야 하는가. 누가 경제를 이 지경으로 말아먹었는데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노동자들은 위기를 극복하는 데 아무런 구실을 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적어도 본말이 전도된 책임전가는 있 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남들이 ‘마이카 시대’를 즐기고 있을 때 대중교 통을 이용하는 게 불편하고 가족에게 면목이 없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 다. 환율 폭등으로 물가인상이 자명한 마당에 어쩌면 지출항목이 적어 다 행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허리띠를 졸라맨다고 해결될 일 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면에서 눈물 흘리는 재벌의 모습을 보지 못해 유 감이다. 일본에서 파산한 증권회사의 사장이 눈물로 직원의 안정을 촉구 한 모습을 기억한다. 왜 우리에겐 그런 대기업 사장의 모습은 없는 것일 까.
김진호/ 서울시 서대문구 창천동 134-25
기업은 해고 막을 제도 도입하라
‘해고천국’ 기사는 이 시대 직장인이요, 한 가정의 가장인 사람의 가슴 에 비수가 꽂히는 아픔으로 다가왔다. 우리의 재벌은 정권과 결탁해 정경 유착이라는 악습을 거듭해왔고, 자기자본의 수십배가 넘는 빚을 금융권에 서 차입받아 문어발식 경영으로 중소기업의 고유영역까지 침투하는 공룡 으로 군림해 왔다. “정권은 유한해도 기업은 영원하다”는 논리에 익숙 한 재벌 총수는 방만한 경영과 독선적 인사로 종업원들 위에 군림했다. 뿐만 아니라 경영위기가 올 때마다 감원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조자룡이 헌칼 쓰듯 마구 휘둘러 댔다. 현재의 외환위기에 무조건적인 해고는 곧바 로 실업률 상승과 사회적 혼란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뿐이다. 이젠 기업 경영자의 의식이 크게 바뀌어야 한다. 해고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 을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다른 자산소득이 없는 노동자들에게 해고 라는 극약처방을 쓴다면 그 가정은 경제빅뱅의 블랙홀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홍경석/ 대전시 동구 가양동 409-8
‘낮은 탈북자’는 죽으란 말인가
특집 “누가 그들을 지뢰밭에 버렸는가”를 읽으며 눈시울이 불거지고 가 즘 저 밑에서 용솟음치는 울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선별수용? 황장엽과 같은 고위급은 온 매스컴의 집중조명을 받으며 화려한 귀순자가 된다. 반 면에 배고파 탈북한 평범한 주민들은 개인적인 탈북자로 간주되어 모두 버려지고 있다. 목숨까지 걸고 탈출한 그들을 정보 이용가치가 없다는 이 유만으로 찬밥 대우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탈북자’라는 그럴듯한 명칭 으로 포장해 국제적인 미아로 만드는 것은 그들에게 죽으라는 말과 같다. 탈북자들 가운데 근본적인 원인을 따졌을 때 개인적인 탈북자가 아닌 자 가 있을까. 그들은 분명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고 생각하며 동포에 대 한 배신감마저 느꼈을 것이다. 대체 우리 정부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으 면 어느 누가 그들을 따뜻하게 보듬어 줄 것인가. 소수의 탈북자들도 수 용하지 못하면서 평화통일 운운하는 정부가 한심스러울 뿐이다.
박정자/ 강원도 동해시 추암동 495-1 선경건설 동해화력현장
이땅의 수험생에게 희망을 주었다
초점 ‘수능시험 정말 잘냈다’는 정말 잘 낸 기사였다. 올해 수능시험이 끝난 뒤 대부분의 언론이 보인 반응은 ‘너무 쉬워서 난이도 조정에 실패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 지적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가운데 <한겨레 21>이 쉬웠던 수능을 옹호해서 처음에는 의아스럽기도 했다. 사실 그동안 우리나라의 대입시험은 지나치게 어려울 때가 많았다. 그래서 몇몇 우수 학생들에게만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동기부여를 했을 뿐이다. 대 부분의 학생들은 요행수, 운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대입시험이 소 수만을 위한 교육을 조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올해 수능시험은 누구에게 나 ‘해보면 되겠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공부에서는 물론 인생에서도 ‘하면 된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이제 내년에는 더 쉽게 출제하자. 수 능뿐만 아니라 다른 각종 시험들도 쉽게 출제했으면 한다. 그래서 응시자 들에게 희망을 주었으면 한다.
오흥녕/ 서울시 성북구 안암동5가 고려대 역사교육과
소수를 생각하지 않은 무책임한 발상
‘다수’인 중하위권 학생들을 위해 공부 잘하는 ‘소수’는 무시해도 좋 은가. 1년 동안 한결같이 최선을 다해 공부했던 친구와 거의 ‘놀면서’ 보낸 친구를 함께 보았다. 그런데 단 하루 동안에 치른 그들의 노력에 대 한 결과는 거의 같았다. 공부 잘하는 ‘소수’가 억울해 하는 것이 그들 만의 잘못인가. 평소 <한겨레21>을 믿어 왔지만 이번 기사는 나를 정말 속상하게 했다. 나 역시 수능이 선발기능과 고교교육 정상화의 기능을 올 바르게 수행해 나가길 바란다. 작년 수능시험이 너무 어려웠던 것은 사실 이고, 바람직하지 못했다는 지적은 동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올해 수능을 갑자기 너무 쉽게 출제한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서서히 난 이도를 조정하든지, 수능 외에 변별력을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순서였다. 아니면 근본적으로 입시제도를 수정해야 한다. 왜 하필 98 년도에 공부 잘하는 ‘소수’가 희생되어야 하는가. 짧게 보면 3년이라는 기간 동안 공부한 결과를 단 하루에 증명해야 하는 현행 입시제도는 정말 부당하다. 그리고 다수를 위해 소수를 무시해도 좋다는 부제를 가진 <한 겨레21>도 실망스러웠다.
조현아/ 나우누리 chaku
박찬호 생중계, 그만둘 수 없나
초점 ‘박찬호 수지, 엄청난 적자’의 지적에 공감한다. 박찬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선전해 국위를 선양하는 데 박수를 보내는 사람이다. 탁 월한 실력으로 미국사회에 한국혼을 심는 것도 기쁜 일이다. 하지만 그의 ‘고국방문’에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너무나 상업적으로 행동한 때문이 다. 광고 계약에 분주하고, 사인공 팔러 다니는 등 오로지 돈에 사로잡힌 모습이었다. 어려운 환경의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준다던 그의 다짐은 빛바랜 약속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그는 내년에 텔레비전 화면을 가득 채울 것이다. 이젠 박 선수의 경기에 대한 생중계를 재고해야 할 것이다. 중계료로 막대한 외화가 빠져 나가는 것은 빼놓고라도 밤낮을 가리지 않 는 중계로 휴식과 노동의 생산성을 떨어뜨릴 이유는 없다. 편집해서 녹화 방송을 하더라도 박 선수에 대한 애정이 사라지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외 화절감을 위해 필요하다면 반드시 시행하기 바란다.
강승천/ 전남 목포시 산정동 1086-13 자유종합장식
강준만의 과감한 논조가 필요하다
문화 ‘강준만의 딜레마’는 의아스러운 기사였다. 거짓을 깨부수는 이 시대의 외로운 빛으로 여겨지는 강 교수에 대한 그릇된 인상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평소에 그의 진솔한 글을 읽을 때마다 양심이 뛰는 느낌이었다 . 문제제기가 명확하고 누구나 알기 쉽게 군더더기 없이 핵심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바라기 언론의 시류에 편승해 교언영색하는 일부 지식 인과 그는 분명히 다르다. 이 시대의 음습한 구석과 어둠을 질타하는 과 감한 논조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기사는 그의 문체에 대해 분을 삭 이지 않는 무분별한 글이라는 식으로 폄하했다. 그 지적은 수긍하기 어렵 다. 거짓으로 똘똘 뭉친 무서운 장벽을 깨부수는 데 감정의 표현이 드러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강 교수의 글은 여전히 의미있다. 적 어도 거짓과 성역이 사라지는 세상이 올 때까지는. 그런 의미에서 강 교 수의 글을 읽을 수 없는 밝고 향기로운 사회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채규정/ 충남 서천군 서천읍 군사리 729
나의 이웃을 기사로 만나고 싶다
지갑이 두둑하다 싶을 때면 언제나 <한겨레21>을 찾는다. 요즘처럼 정치 ·경제적 위기상황이 닥치면 더욱더 <한겨레21>을 읽을 필요가 있다. 어 려운 현실을 극복하고 희망의 내일을 가꿔나갈 작은 대안들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일상에 쫓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대중들을 일깨우며 진실을 파헤치는 <한겨레21>이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한겨레21>이 갈 수록 알찬 내용으로 다가오는 게 기쁘지만 몇가지 추가했으면 하는 게 있 다. 먼저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가 널리 소개되었으면 한다. 기삿거리 가 폭주하는 가운데 작은 이야기를 발굴해낼 여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모 르지 않지만 감동은 일상의 주변에 있는 게 아닌가. 내 이웃을 <한겨레21 >에서 발견하는 즐거움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또하나는 ‘역사의 뒷이야 기’ 등 감춰진 역사를 복원하는 데도 힘을 기울였으면 한다. 사람을 물 론 현장도 발굴해 낸다면 <한겨레21>의 또다른 역사를 만드는 것이라 생 각한다.
김도연/ 서울시 중구 저동2가 48-27 금풍빌딩 605 윤일상사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25일 제 18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