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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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위린 선미 밸리스(27). 외모는 분명히 한국인이지만 그는 미국인이다. 동포라는 표현도 그에게는 어색하다. 입양아이기 때문이다.
지난 12월14일 그는 12년 전인 15살 때처럼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 국의 한 회사로부터 프로그램 개발을 의뢰받은 미국인 약혼자를 따라 한 국 땅을 밟은 지 6개월 만이었다. 낯설고 말조차 자유롭지 않았던 입양초 기부터 이제 대학교육까지 마친 어엿한 전문직업인으로 성장한 지금까지 가장 큰 바람으로 간직했던 한국방문을 이루고 돌아가는 길이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다.
IMF의 한파가 밀어닥치면서 약혼자의 한국인 친구들은 농담 반 시기 반 섞어 월급을 달러로 받는다는 것을 부러워했다. 그러나 달러를 바꿀 때마 다 두터워지는 한국 돈 뭉치는 그에게 행복이라기보다는 걱정거리였다. 비록 이제는 생각하는 방식까지도 어쩔 수 없는 미국인이지만 여전히 까 만 눈에 까만 머리 노란 피부를 간직한 그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기 때 문이다. 한국인에게 IMF의 한파는 남의 일이 될 수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
“한국에 와서 제일 놀란 것은 미국의 보통사람이라면 엄두도 내지 않는 값비싼 유명브랜드가 너무나 흔하다는 것이었어요. 심지어는 특정 브랜드 의 옷을 사기 위해 몇달치 월급을 쏟아붓는 경우도 봤구요.” 근 6개월 동안의 한국생활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런 것들이 결국 한국경 제에 깊은 시름을 안겨 준 것이 아니냐는 게 그의 분석이다. 그는 지난 1 4일 미국으로 돌아갔다. 치솟는 달러 가치는 그가 한국에 더 머물기에 충 분할 만큼 경제적 도움이 되었지만, 자신에게 돌아온 뜻하지 않은 그 혜 택이 한국인들의 고통이라는 생각에 주위의 만류를 뿌리쳤다. 다시 미국 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꾸리면서 <한겨레21> 한 권을 깊숙이 간직했다. 자기와 같은 입양아 친구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기사가 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면서부터 매년 열리는 콜로라도 한국 입양아 캠프에 스탭으로 참석해 온 그에게 <한겨레21> 164호 ‘로키산맥의 노란 민들레’ 기사는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입양아들은 자라면서 한번쯤 자신이 버려졌다 는 생각을 하게 돼요. 참 힘들죠. 매년 입양아 캠프를 여는 것도 이런 아 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데 목적이 있어요. 한국 언론에 캠프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게 큰 용기가 될 거예요.”
처음 기사를 접했을 때 영어로 번역해서 아이들에게 들려주려던 다짐은 여전히 다짐으로 머물러 있다. 미국생활 12년 동안 한국말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던 그였지만 한글은 달랐다. 문장을 읽으면 읽을수록 새록 새록 의미가 겹쳐지기 때문이다. 6개월여 동안 제자리를 맴돌던 번역 작 업은 미국에서는 쉽게 풀릴 것이다. 캠프 때마다 도움을 주는 동포2세나 한국유학생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대학원에 진학해 사회학 공부를 더하고 싶다는 그의 소원은 평생을 자기 와 같은 입양아들을 위해 사는 것. “불쌍하게 보지 마세요. 있는 그대로 봐주시는 것이 입양아들에게 도움이 돼요. 나라 체면 때문에 입양 길을 막지도 마시고요. 고아원 골방에서 자라는 것보다는, 생김새가 다르더라 도 부모가 있는 것이 더 행복하거든요.”
같은 한국인이라는 것을 인정해 준 이들에게 남기는 그의 인사말이다.
윤승일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25일 제 18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