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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허구 ‘지속가능한 발전’

최근 우리는 세계화를 실감케 해준 두가지 일을 경험했다. 하나는 멕시코 등 남의 일로만 알던 IMF 구제금융 시대가 우리나라에 도래했다는 것이고 , 다른 하나는 12월1일부터 10일까지 일본 교토에서 열렸던 기후변화협약 제3차 당사국총회(지구온난화방지 교토회의)가 그것이다. 이 두가지 일은 모두 우리가 대비하지 못한 새로운 환경이 이미 세계에선 펼쳐지고 있으 며 이제 과거와 같은 일국중심의 사고와 발전방식으로는 이러한 환경에 대응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깨우쳐주고 있다.

IMF 구제금융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재벌의 방만한 경영이 불러들인 사 태라고는 하지만, 모든 비난을 거기에만 쏟다보면 정작 그러한 사태가 발 생하도록 만드는 구조적 토대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줄 위험이 있다. 1980 년대 이후 현재까지 70개가 넘는 제3세계 국가에서 약 6백건의 안정화 및 구조조정 조치가 IMF와 세계은행에 의해서 시행된 바 있다고 한다. 그러 면 이 모두가 다 해당 국가의 정책과 기업경영의 잘못으로 빚어진 일일까 ? 많은 발전경제학자들은 그것이 1970년대의 세계금융시장 팽창과 제3세 계로의 개발차관 집중, 여기에 80년부터 미 레이건 정부의 통화주의 정책 에 따른 고금리와 달러화 가치상승 등이 초래한 외채위기(Debt Crisis) 때문이었다고 지적한다. 즉 남북간의 불평등을 시정하기는커녕 악화시킨 세계경제 구조가 문제인 것이다.

제3세계의 외채관리를 통한 세계시장경제의 안정화를 위해 IMF가 채권국 들을 대표하는 역할을 그때부터 자임했다. IMF와 그 자매기관인 세계은행 은 채무국의 국제수지 개선을 위한 극단적인 구조조정 조치를 강요했을 뿐 아니라, 발전의 개념을 과거처럼 일국의 경제성장이 아니라 세계시장 참여를 통한 세계경제 성장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 새로운 개념에서 발전 의 주체는 더이상 민족국가가 아니라 IMF 같은 국제기구나 초국적기업으 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이제 일국 정부와 기업의 목표는 자국의 성장이 아니라 세계시장의 성장을 지향하는 것이다. 구조조정시에 정부에 부과되 는 임무가 바로 이것이며, 국민의 복지보다는 외채상환과 시장개방에 더 우선순위가 부여된다.

한편 이러한 시장과 성장 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으로서 지속가능한 발전이 라는 대안적 개념이 87년 브룬트란트보고서에서 제시되었고, 이는 자연자 원의 보존, 발전에의 주민참여, 적정기술의 채택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 를 이어받은 92년의 리우 지구정상회담에서는 이 개념의 뜻이 세계화의 주도세력에 의해 왜곡되기 시작했다. 환경보호는 국제무역과 투자를 왜곡 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우선순위가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되었다. 지방 및 일국 차원의 관심보다는 세계적 차원의 환경관리를 중시하고, 제3세계 의 경제조건 악화보다는 세계경제의 활력을 유지하는 데 더 중점을 두었 던 것이다.

리우회담의 결과는 사실상 기존의 세계화를 더 촉진했다. 리우회담 결과 를 실천하기 위해 설립된 지구환경기금(GEF)은 세계은행의 주도 아래 온 실가스 방출감소, 열대림의 생물다양성 보호, 국제수질 오염감소, 오존층 파괴저지를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중이다. 그러나 이런 사업은 흔히 현지 의 사정을 잘 모르는 국제적 기술관료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때문에 열대림이 생활터전인 원주민들의 의사는 무시되고, 세계화라는 압력 아래 농산품수출에 주력할 수밖에 없는 제3세계 정부의 환금작물 생산을 지원 하여 열대림을 오히려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또 제3세계의 사 회간접자본 건설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이 역시 선진국으로부터의 자본· 에너지 집약적인 기술이전에 대한 융자에 주력하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경제와 세계환경을 관리해나가는 주체는 확실히 IMF와 세계은 행을 비롯한 초국적기구이며 이를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선진국의 정치경 제 엘리트집단이다. 이들은 80년대 이후 제3세계 국가를 무력화시키면서 시장과 과학기술에 의한 지배력으로 전세계를 통치하고 있다. 그러나 이 들이 내세우는 새로운 발전모델은 결코 지속가능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 불평등과 생태계 파괴를 심화시킬 뿐이다. 진정한 지속가능한 발 전의 대안은 이들에게 억압받는 풀뿌리 사회집단으로부터만 나올 수 있다 . 세계화 시대를 맞아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에 국제적 연대가 절실해지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김환석/ 국민대 교수·사회학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25일 제 1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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