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르는 것, 그와 나는 다르다고 믿게 하는 것, 당신 과 나 사이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른다고 외치는 것. 인간들로 하여금 이렇게 벽을 쌓게 만드는 건 무엇인가.
80년대까지 우리는 그것을 ‘이념’이라고 믿었다. 때로는 건너편에 선 적에 대한 ‘미움’이라고 생각했다. 그 벽이 힘없이 무너졌다. 남은 거 라곤 자본주의의 싹쓸이와 자국 이기주의를 강화하는 국경뿐.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며 “그 섬에 가고 싶다”고 읊은 시인의 마음을 영화 <콜리야>는 혁명 전야의 체코에서 한편의 시처럼 보여준다.
1988년 프라하, 장례식장에서 연주를 하거나 벗겨진 비문에 금칠을 하며 밥벌이를 하는 루카(즈네덱 스베락)는 음악을 위해 결혼도 마다하고 황혼 을 맞은 첼리스트. 실력은 있지만 서구로 망명한 동생이며, 독재정권에 대한 그의 삐딱함 때문에 국립교향악단에서 쫓겨난 뒤 홀로 세상을 냉소 하며 살아온 중늙은이다. 중고차 한대를 사기 위해 러시아 여자와 위장결 혼한 그는 호사다마라고. 신부는 애인이 있는 서독으로 도망가고, 그에겐 의심받을까 못데려간 다섯살배기 아들 콜리야(앤드루 찰리몬)만 남는다. 적국 러시아 말을 하는 아이, 처음엔 손도 잡지 않던 의붓아들에게 천천 히 한걸음씩 다가가는 루카는 허망하게 무너져버린 이데올로기의 그늘 속 에서 인간이 다시 살 수 있는 희망을 사람 사이의 사랑과 정에서 찾아낸 다.
젊은 감독 진 스베락이 느리게, 눈물겹게 회복시켜가는 부자지간의 모습 은 바로 아버지 역으로 나온 그의 부친 즈네덱 스베락과의 실제 교감을 느끼게 한다. 즈네덱 스베락은 아들을 위해 대본을 썼을 뿐 아니라 연륜 이 밴 연기로 이 영화를 빛나게 만들었다. 주인공이 연주자인 만큼 현악 사중주곡들을 비롯한 그윽한 첼로 음악이 좋고, 깊은 가을 수채화 같은 색감과 훈훈한 삽화들이 따뜻한 영화다. 1997년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수상작. 진 스베락 감독·즈네덱 스베락, 앤드루 찰리몬 주연
정재숙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25일 제 18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