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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을 피울 권리"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국민교 육헌장’이 우리의 의식을 옭죄인 지 30년 만에 그 중흥의 꿈은 삼풍백화 점처럼 와르르 무너졌다.

일에만 매달려온 수많은 근로자들이 거리로 내쫓기고 있다. 일중독자였던 그들은 갑자기 무얼 해야 할지 멍하다. ‘우리가 뭘 잘못했을까’ 그들은 생각한다. ‘게으름을 피울’ 줄 모르도록 감시와 처벌에 길들여져 온 세 대가 괴롭게도 게을러질 수밖에 없는 이 세태를 곰곰 돌아보고 있다.

1백여년 전, 한 사회주의 운동가가 <게으를 수 있는 권리>(조형준 옮김, 새물결 펴냄)란 책을 썼다. ‘일할 권리’에 대한 논박문인 이 팸플릿은 카를 마르크스의 사위였던 폴 라파르그(1842∼1912)가 1883년 생 펠라지 교도소에서 내놓은 문제작이었다.

“자본주의 문명이 지배하는 국가의 노동자 계급은 기이한 환몽에 사로잡 혀 있다”로 시작하는 이 얄팍한 책은 “노동의 세기로 불리는” 우리 시 대가 실제로는 “고통, 불행, 부패의 세기”라고 정의했다. 자본주의 사 회에서 노동은 온갖 형태의 지적 타락을 가져오는 동시에 모든 생명체를 기형으로 만드는 원인이라는 것.

라파르그는 “낮이 끝나면 반드시 밤이 오듯 지나친 노동 뒤에는 공황이 오는 것을 피할 수 없고 이에 따라 집단 해고와 가난이 끝없이 이어진다 면, 산업 또한 어쩔 수 없이 파산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따라서 “단지 불행할 수 있는 권리만을 의미할 뿐인 ‘일할 권리’가 아니라 누 구든 하루 세 시간 이상을 일할 수 없도록 금지하는 철의 법칙을 주조하 기 위해 봉기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로부터 50여년 뒤, 영국의 사상가 한 사람이 <게으름에 대한 찬양>(송 은경 옮김, 사회평론 펴냄)이란 에세이집을 내놓았다. 자신을 ‘열정적 회의주의자’라고 부르는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은 1935년 쓴 이 책 에서 라파르그와 비슷한 주장을 폈다.

“(현대산업국가에는) 근로가 미덕이라는 믿음에 의해 엄청난 해악이 발 생한다고 생각한다… 행복과 번영에 이르는 길은 조직적으로 일을 줄여가 는 일이다.”

진보적인 회의주의자이자 급진좌파적 시각을 지녔던 영국의 석학이 그보 다 한 세대쯤 위인 활동가 폴 라파르그와 유사한 진단을 내렸다는 것은 흥미롭다.

러셀이 “과거에는 속편하게 노는 것에 대한 수용력이 있었다. 그러나 능 률 숭배로 인해 그러한 부분은 사라져 버렸다”고 썼을 때, 이 구절은 라 파르그가 “하루에 세 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낮과 밤 시간은 한가로움과 축제를 위해 남겨두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말한 것과 맥이 통한다. 라파르그와 러셀이 때와 장소가 다른 곳에서 한목소리를 낸 ‘게으름’에 대한 고찰은 지금 우리가 되새겨 볼 구석이 많다. 우리는 그동안 “한쪽 사람들에겐 과로를, 다른 편 사람들에겐 굶주림을 주는 방식을 선택해” 왔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계속 그렇게 정력적으로 일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가 어리석었다는 점을 아프게 인정해야 할 이 시점에서, 이 두책은 ‘게으름 피울 권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준다.

정재숙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25일 제 1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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