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학술

인터뷰/ 미셸 페로

(사진/프랑스 아날학파의 대표적인 역사학자로 한국을 방문한 미셸 페로.)

미셸 페로(67·파리7대학 명예교수)는 프랑스와 유럽의 역사학계에서 여 성사 전문가로 이름 높은 역사학자다. 71년 그가 쓴 박사학위 논문 <파업 하는 노동자들>은 프랑스 전국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파업과 경제적 주 기의 상관관계를 계량적 산출로 다룬 전무후무한 작업이란 점에서 평가받 았다. 그의 지도교수였던 에른스트 라브루스로부터 역사학의 과학화와 엄 격한 실증주의를 이식받아 ‘라브루스의 딸’로 불리는 페로는 ‘아날학 파’의 제3세대로서, 노동자 계급을 사랑하는 사회주의자이자 인권활동가 로서, 대중적인 논문을 발표하며 여성학계의 대모로 활동중이다.

조르주 뒤비(1919∼96)가 죽은 뒤 페로는 두 사람이 함께 펴냈던 기념비 적인 총서 <사생활의 역사> <서양에서의 여성사>의 유일한 편집자로 남았 다. 이 책이 번역된 나라들을 돌며 여성사 연구자들과 긴밀한 연대를 이 루고 있는 그가 일본을 거쳐 주한 프랑스대사관 초청으로 서울에 왔다. 한국 경제에 깊은 관심을 나타낸 미셸 페로를 본지가 단독 인터뷰했다. -당신은 왜 여성사를 택했나.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

-여성사를 페미니즘 또는 페미니스트의 역사라고 부를 수 있을까.

=페미니즘은 여성사의 한 부분이다. 페미니즘은 근·현대의 최근사일 뿐 만 아니라 권력과 정치의 문제에 집중돼 있다. 여성사는 인류가 존재했을 때부터 남녀 사이의 차이점을 다루는 역사다. 남과 여가 같이 살 때, 그 위치상 남성이 남성의 가치로 모든 걸 평가해온 그런 사회 구조 속에서 남녀간의 문제를 파악하는 게 여성사다.

-여성은 역사에서 소외되어 온 주변인인가.

=늘, 어느 곳에서나 그랬던 건 아니다. 다만 공적인 장에서, 특히 권력에 서 항상 소외돼 있었고 불평등을 당했다. 그래서 나는 <공적인 여성>이란 책을 썼다.

-진정한 여성해방이란.

=선택이다.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힘.

-세계 곳곳에서 ‘인문학의 위기’를 걱정하는 소리가 들린다.

=현재의 인문사회과학은 지금의 인류사가 보여주는 그 복잡다단함을 분석 할 도구를 잃었다. 돌파구를 열 새로운 학제적 연구 방법이 나와야 한다.

-후란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에서 지적한 것처럼 우리 시대는 역 사의 끝에 와있나.

=나는 종말을 믿지 않는다. 후쿠야마는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승리를 얘 기한 것 같다. 그러나 종말은 자유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니다. 21세기엔 새로운 모델을 찾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지키되, 좀더 인간적인 역사를 이뤄나가는 것, 그것이 지금 젊은 세대가 할 일이다.

-최근 프랑스의 역사학 연구 동향은.

=‘아날학파’ 이후 그만큼 주도적인 흐름은 아직 없다. 현재는 크게 세 가지 방향이 눈에 띤다. 첫째는 신(新)문화사다. 역사를 정신분석, 언어, 담론, 신화, 이미지 등의 질적인 사료로 다루는 방법이다. 일종의 미시( 微視)사학이다. 둘째는 신정치사다. 전통적인 정치사와 다르게 좀더 철학 적인 경향으로 역사를 본다. 셋째는 종교사 또는 인류학적 태도다. 역사 를 사람에 대한 연구로 보는 관점이다.

-당신은 50년을 역사학에 바쳤다. 역사란 무엇인가.

=시간 속에서 시대에 따른 변화의 양상을 잡아내 이해하려는 것. 이해한 뒤 행동하는 것.

-‘한국 여성사’를 쓰려는 학자들에게 주고싶은 말이 있다면.

=용기를 가져라. 혼자 하지 말고 여러 분야의 학자들과 함께 토론을 통한 공동작업을 하라. 서재에 틀어박힌 아카데믹한 연구를 지양하고 현장에서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어라.

페로는 12일 오후 숙명여대에서 ‘여성사, 역사의 침묵’이란 주제로 강 연을 한 뒤 13일 한국을 떠났다.

정재숙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25일 제 1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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