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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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고용승계를 요구하는 삼미특수강 노동자들의 포철 본사 사경투쟁. 일자리를 빼앗긴 지 10개월여 만에 복직의 작은 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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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노동자들이 웃었다. 아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리해고 위협 앞에 ‘파리목숨’으로 떨어진 노동자들에게 중앙노동위원 회(위원장 배무기)로부터 지난 12월9일 반가운 소식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 내용은 지난 2월 포항제철 계열사인 창원종합특수강(주)이 삼미종합특 수강(주)의 강관·봉강 부문을 인수할 때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를 모두 고용하지 않은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인수·합병시 고용기피 시도에 제동
중노위가 창원특수강의 삼미특수강 강관·봉강 부문 인수를 물적자산과 고용인력을 포괄적으로 넘겨받는 ‘영업양도’로 본 정확한 이유는 아직 알 수가 없다. 판결문이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사안의 중대성 을 감안해 중노위는 심사관이 작성하던 관례를 깨고 심판공익위원이 직접 판결문을 쓰는 등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이번 판정이 앞으로 크게 늘어날 기업의 인수·합병과정에서 사용 자가 꾀할 수 있는 다양한 고용기피 시도에 일정한 제동을 걸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동안 노동계에서는 삼미특수강 사태 때문에 99년 3월로 시행이 유보된 ‘인수·합병에 따른 정리해고 금지’가 사실상 사문화하 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았다. 창원특수강처럼 ‘자산매매’라는 형식을 빌려 사실상 영업양수를 하면서 고용승계를 하지 않는 ‘변칙적인 정리해 고’가 늘어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삼미특수강 사태가 총자본과 총 노동의 대리전 모습을 띤 것도 바로 이런 배경을 깔고 있다.
다소 복잡해 보이는 삼미특수강 사태를 정리하면 이렇다. 창원특수강은 적자 누적에 허덕이던 삼미특수강 공장의 5분의 4를 차지하는 강관·봉강 부문을 인수하는 ‘자산매매’ 계약을 맺는다. 이 계약서에는 “근로자를 승계할 의무를 포철에 부담시킬 수 없으며, 포철이 신규 채용하지 않는 종업원에 대해서는 삼미특수강이 책임져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3월 삼미그룹이 최종 부도가 나자 창원특수강은 강관·봉강 부문에서 일 하던 삼미특수강 노동자 2천3백42명 가운데 1천7백70명만을 새로 채용한 다. 재입사 신청서를 받고 수습기간을 3개월 둔다는 각서를 낸다는 조건 이었다. 자진퇴사자 외에 신청서를 내고도 탈락한 이들이 1백20여명이었 다. 노조에 적극 참여한 간부와 대의원, 산업재해자, 고령자 등이 대부분 이었다. 포항제철의 무노조정책이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뚜렷한 부분 이다.
재입사가 아니라 고용승계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1백80여명이 노조 주위에 모였다. 평균나이 40살에 근속년수가 15년이 넘는, 그래서 재입사 해 3개월 수습기간을 거친다는 것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고참 노동자 들이었다. 그 뒤 이들은 8개월간의 상경투쟁을 벌인다. 특히 김창남(30) 노조위원장 등 44명은 장기기증식을 열고 10월16일부터 20일간 ‘위장 정 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목숨을 건 단식투쟁에 들어가기도 했다. 지난 6월 부당해고구제신청을 경남지방노동위원회가 기각하자 9월 중노위에 재 심을 청구했다. 이에 대한 판정이 이번 중노위의 결정이다.
포철, 중노위 판정 효력정지 소송 방침
(사진/포철이 고용승계를 거부한 2백45명의 노동자 가운데는 노조간부와 대의원들이 포함돼 있어 무노조정책을 관철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
이에 대해 창원특수강의 모회사인 포항제철은 그동안 삼미특수강과 맺은 토지·건물·기계장치 등에 대한 매각대금을 7천1백94억원으로 하는 자산 매매계약을 맺었다며 고용승계의 의무가 없다고 버티고 있다. 중노위 판 정 뒤에도 이런 태도는 변함이 없다. 오히려 고등법원에 중노위 판정 효 력정지 가처분신청과 행정소송을 걸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자산매매라 는 증거의 하나로 채권·채무가 인수계약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을 꼽는 다. 또 “공장 인수 뒤 주된 생산품의 변경으로 종전 삼미의 대리점이나 고객관계를 이용할 필요가 없었으며 포철의 철강전문 판매망을 활용할 수 있어 삼미의 판매유통망 등 영업체계를 인수할 필요도 없었다”고 주장한 다.
하지만 단순한 자산인수가 아니라는 근거들은 수두룩하다. 먼저 인사·기 획 부문의 직원 49명과 투자자금을 빼곤 특허권·제조기술·업무지침서· 컴퓨터 소프트웨어 및 재고자산·리스자산 등을 모조리 창원특수강이 넘 겨받았다는 점이다. 양수 뒤에도 같은 제품이 같은 방법으로 생산되고 있 다는 것도 또 하나의 증거다. 재입사 형식으로 채용한 옛 삼미특수강 노 동자들에게 삼미쪽이 퇴직금을 주지 않은 것도 근거가 될 수 있다. 단순 한 자산인수라면 재입사 노동자들의 퇴직금은 삼미쪽이 줘야 하기 때문이 다. 재경원과 국세청 등에서 영업양도라는 해석을 내리고 있는 것도 지적 할 만하다. 반면 이 문제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취해온 노동부는 중노위 판정이 난 뒤에도 대법원의 결정을 기다려보겠다는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 고 있다.
그렇다면 포철의 삼미특수강 인수를 영업양도·양수에 해당한다고 중노위 가 판정한 근거는 무엇일까. 노동계는 지금까지의 나온 근거들과 비슷할 것으로 예상한다. 확실한 것은 중노위가 영업양도·양수에 대한 고용승계 와 관련해 ‘원칙승계설’을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인수기업은 노 동자들의 고용승계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승계를 하지 않는다는 특약 이 있을 경우에는 고용승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견해다. 또한 고용승계 를 뺀다는 특약이 있더라도. 이 특약에 따른 해고가 유효하려면 근로기준 법 제27조1항에서 규정한 정당한 해고의 조건을 갖춰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례를 중노위가 따른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지난 12월10일 중노위 판 정이 대법판례와 부합하는 판정이라는 견해를 발표했다. 이를 종합하면 삼미특수강 사태에 대한 중노위의 고용승계 판정은, 고용승계의 책임이 없다는 특약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 특약에 따라 이뤄진 해고가 정당한 해고의 요건을 갖추지 않았다는 판단에 따라 이뤄졌다는 설명을 할 수 있 다. 곧 창원특수강쪽의 해고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없었거나, 해고 회피 노력이 부족했거나, 해고대상자 선정이 공정하지 못했거나, 노조와 충분한 사전협의가 없었거나 등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를 뒤집어 생각하면 중요한 사실이 발견된다. 지금도 인수·합 병에 따른 정리해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포괄적인 영업양도·양수라 할지라도 ‘원칙승계설’에 따라 특약이 정당한 해고 요건만 갖추면 해고 를 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는 “삼미특수강은 하나의 사례일 뿐, 기업간 인수·합병에 무차별적으로 적용되는 건 아니다”는 대법원의 발 표가 잘 보여준다.
구제명령 강제력없어 복직까지 머나먼 길
아직 정확한 구제인원과 구제방법, 시한 등은 알 수 없다. 구제인원은 자진퇴사자를 빼고 지난 3월 고용승계가 안 이뤄진 노동자 2백45명 가운데 희망자가 될 가능성이 제일 높다. 구제방법은 고용승계와 함께 그동안의 임금손실분을 보상하는 방안이 유력해 보인다. 행정소송으로 번질 경우 노동자들의 고용승계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관심은 창원 특수강 사업주에 대한 처벌이 어떻게 되느냐다. 중노위 구제명령을 이행 하지 않았다고 해서 사업주를 형사처벌할 수는 없다.
95년 헌법재판소가 미확정구제명령을 지키지 않은 이유로 형사처벌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다만 근로기준법 제30조에 따라 사용자가 부당해고당한 노동자에 대한 복직명령서를 받은 뒤 7일 안에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형사처벌할 수 있다. 하지만 창원특수강이 고법에 낼 예정인 효력정지 가처 분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이 또한 어렵다. 이래저래 아직 삼미특수강 노동들이 웃음을 되찾기는 이른 것처럼 보인다.
조준상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25일 제 18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