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
|
청와대 일부 고위 비서관들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조직적으로 지원해 왔다는 사실이 <한겨레21>이 최근 입수한 문건을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 이 문건은 16절지 8쪽짜리로 2차 TV합동토론회를 앞둔 이회창 후보의 답 변자료 형식으로 되어있다. 이 문건 작성에는 금종래 이수영 박진 비서관 등이 주도적으로 참여했으며 지난 12월6일 이회창 후보의 핵심측근에게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들 3명을 포함해 10여명의 비서관 행정 관 등이 대거 동원된 것으로 전해져 자칫 청와대 비서실로까지 파장이 번 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종래·박진·이수영 비서관 주도적 협의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12일 “이 문건은 금종래 청와대 정무 비서관(1급)과 박진 정무기획비서관(2급), 이수영 민정비서관(1급) 등의 주도 아래 만들어졌으며 지난 12월6일 금·이 비서관에 의해 이회창 후보 쪽 핵심측근에게 전달됐다”고 전했다. 12월7일 열린 3당 대선후보의 2차 TV토론회 바로 전날이었다. 그는 또 “이·금 비서관에 의해 취합돼 전 달된 문건은 50여쪽 분량의 보고서였다”고 덧붙였다.
금·이 비서관은 이 문건 외에 다른 장문의 보고서도 지난 12월 초 이 후 보의 핵심측근에 전달했으며 그동안 수시로 청와대 내의 상황과 정국관련 보고서를 만들어 이 후보쪽에 비밀리에 전달해왔다고 그는 전했다. 이에 앞서 이들은 3당후보 초청 1차 TV토론회가 12월1일로 확정되자 11월말부 터 TV토론자료 작성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한겨레21>이 입수한 ‘별첨(1):답변내용 관련 검토’라는 중간제목의 이 문건은 △비방에 대한 대응 △경제위기의 책임문제 △경제위기의 구체적 인 원인논의 △김대중의 정권교체론에 대한 대응 △병역시비관련 △병역 시비를 계속 할 때에는 △지역감정조장 문제 △이인제 후보의 지속적인 공격관련 △세대교체 관련 △김대중 후보가 IMF지원 관련 차별화 시도시, 따위의 소제목과 함께 분야별 답변내용을 담고 있다.
이회창 후보 토론내용과 일치
특히 문건의 내용 가운데 경제파탄 책임론과 IMF재협상 반박, 3김청산 부 분 등에서 이 후보의 TV토론내용은 물론 한나라당의 주장과 상당 부분 일 치하고 있어 주목됐다. 문건은 경제위기의 책임문제와 관련해 “지금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를 논하기보다는 모두가 힘을 모아 난국극복에 나 서야 할 때라는 점을 강조할 것”을 주문했다. 또 경제위기의 구체적인 원인 논의와 관련해서는 '(경제위기)잘못의 단초는 지난 94년도 95년 기 간에 우리 경제가 과열됐을 때 긴축과 구조조정을 추진하지 않은 데' 있 고 따라서 ‘당시 경제팀인 홍재형 부총리, 한이헌 청와대 경제수석’을 경제부도 책임자로 거론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3김청산과 김대중 후보의 정권교체론에 대한 대응으로는 “이 시대의 역사적 과업으로 3김시대 청 산을 주장하는 것은 하나의 정치적 구호가 아닙니다. 정말 절실한 과업입 니다”라고 3김청산의 중요성을 강조할 것과 “지역주의, 패거리 정치 등 으로 대표되는 낡은 정치틀을 바꾸고 새로운 정치틀을 짜는 것이 정권교 체보다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도록 했다. 병역시비와 관련해서는 “두 아들의 병역시비에 휘말려 우리 부부는 물론 두 아들이 겪어온 참담 한 심정은 무엇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할 것을 권했다. 김대 중 후보의 IMF재협상 문제는 “지원금액이 단계적으로 들어오고 있는 지 금 시점에서 논의 자체가 혼란을 가져올 위험이 있으므로 바람직하지 않 다”며 재협상 주장을 반박하도록 했다. 특히 경제위기의 책임과 관련해 한나라당은 ‘경제관료 2적’으로 국민신당에 참여한 홍재형 전 부총리와 한이헌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꼽고 있는데 이번 보고서 문건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이 문건은 내용 중 ‘이인제 후보의 지속적인 공격관련’ 부분에서 “지 난번 토론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만…”라는 대목과 ‘경제위기의 책임 문제’ 부분에서 “(1차 토론회에서 )이 후보가 ‘책임을 시인’하기보다 는 극구 변명하거나 책임을 전가하는 뉘앙스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다수 당의 총재로서 난국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보다는 한발 떨어져 관조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는데…”라고 1차 TV토론회에 대한 평가도 담 고있다. 이 후보의 2차 TV토론회 답변자료임을 한눈에 보여주는 대목이다 .
선거법 위반 논란도 제기될 듯
이 문건은 김영삼 대통령의 탈당과 함께 천명한 청와대 비서실의 선거중 립 입장과는 달리 청와대 비서관들이 특정 정파의 선거운동에 조직적으로 동원됐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한때 청와대는 이인제 후보 를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김영삼 대통령의 도덕성에는 물론 이인제 후 보에게 심각한 타격을 안겨줬다. 그러나 이번 문건은 청와대 비서관들의 이회창 후보 지원의혹을 정면에서 제기한 것이어서 앞으로 그 파장이 주 목된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이인제 전 경기도지사가 당시 신한국당을 탈 당해 국민신당을 창당하자 청와대지원설을 주장하며 ‘이인제 신당=YS(김 영삼)당’이라고 공격했다. 이로 인해 이인제 후보의 지지도는 10% 이상 의 추락과 함께 2위에서 3위로 밀려나는 타격을 받았다.
이 문건 작업을 주도한 것으로 전해진 금종래 비서관은 민정계 출신으로 신한국당 당료로 있다 지난 96년 4월 15대총선 직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으 로 들어갔다. 금 비서관은 청와대 안의 김윤환 의원계보로 분류돼왔다. 이수영 비서관은 내무부 지방세제국장으로 있다 지난 1월 청와대에 파견 돼 근무하고 있다. 이회창 후보의 경기고, 서울법대 후배이다. 이 비서관 은 이회창 후보의 동생이자 경기고 동문인 이회성씨와 평소 자주 만나는 등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진 비서관은 외무고시에 합격해 외교관으로 있다 청와대에 들어가 김영삼 대통령의 영어통역을 맡 아왔다. 박 비서관은 이회창 후보의 경기고 서울법대 후배이다.
한편 이들은 법적으로 선거법위반 혐의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 국가공무원법 65조 6항과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9조는 공직자의 선거개입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며 위반했을 경우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 이수영, 박진 비서관은 행정부처에서 파견된 공무원 신분이다. 병무청 은 지난 11일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장남 정연씨의 고의감량 의혹을 폭 로한 서울병무청 총무과 서기 이재왕(37)씨를 직위해제하고 국가공무원법 과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위반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한겨레21 대선취재팀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25일 제 18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