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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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약속을 지키지 않은 병원쪽은 도리어 노동조합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사용자와 노동자가 신의성실의 원칙 아래 합의한 사항을 사용자는 지킬 필요가 없다? 한양대의료원의 경우라면 물음표를 굳이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학교법인 한양학원(이사장 김연준)은 12월10일 이 병원 노동조합(위원장 이연아) 소속 노동자 29명을 재단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이에 앞서 지 난 11월28일에는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고, 조합비 7억2천 6백34억원에 대한 가압류 조치를 취했다. 노조가 지난 11월14일 조합원 총회를 열고 ‘합의서 이행’을 요구하며 15일부터 4일간 파업에 들어가 병원에 엄청난 손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파업은 차수련 전 노조위원장 과 이연아 현 노조위원장 등 3명 구속으로 마무리됐다.
파업은 끝났지만 사태는 더욱 복잡해졌다. 노조도 병원쪽이 그동안 부당 노동행위를 해왔다며 지난 2일 동부지방노동사무소에 소장을 제출했다. 노조는 “병원쪽이 급여일로부터 20일이 지나도록 조합비를 입금하지 않 은 것은 명백한 단체협약위반이며 크게는 공금횡령에 해당된다”며 이에 대해서도 법적인 책임을 물을 방침이다.
한양대병원 사태의 시작은 지난 95년까지 거슬러올라간다. 노조는 파업에 돌입해 “병원쪽이 노·사간의 신뢰를 근본적으로 깨버렸다”고 비난하는 한편 ‘합의서 이행’을 요구했다. 한양대 사태의 모든 것은 이 한장의 합의서에 담겨 있다.
지난 95년 6월30일 이정균 한양대 병원장과 차수련 노조위원장은 한장의 합의각서를 쓴 채 단체협약을 마무리지었다. 이 각서는 ‘한양대학병원은 차수련을 97년 7월부터 복직시킨다’는 것과 ‘95년 7월부터 복직까지의 기간에 대해서는 정식직원에 준하는 임금을 지급’ 등의 내용을 담고 있 다. 합의각서에는 당시 병원장과 노조위원장의 직인이 나란히 찍혀 있다. 합의서는 또 차씨에게 해고시점인 ‘93년 2월부터 95년 6월까지 기간 동 안 정상근무한 것에 준한 임금을 지급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해고자 신분인 차씨에게 복직시까지의 임금지급을 약속하고 있는 것이다.
합의서 내용은 차씨에 대한 해고가 부당하다는 것을 병원쪽이 스스로 인 정하지 않았다면 담기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차씨는 병원을 상대로 한 해고무효확인소송에서 승소해 확정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차씨는 복직되 지 못했고 이듬해인 93년 2월 재해고당했다. 병원쪽은 차씨가 해고무효확 인소송을 하는 중에도 차씨에 대한 급여를 꼬박꼬박 지급했다. 이듬해 차 씨는 해고자 신분으로 노조위원장에 당선됐다.
노조쪽은 “당시 사쪽은 차씨에 대한 해고가 부당해고라는 데 동의하며 ‘복직은 하되 민감한 시기는 피하자’고 요청해 노조쪽도 시기를 양보했 다”고 밝혔다. 결국 ‘97년 7월부터 복직시킨다’는 내용의 합의서가 만 들어졌다.
그러나 복직시한을 석달 넘기고도 차씨는 복직되지 않았다. 오히려 한양 대 의료원 김동한 원장은 지난 10월 교직원들에게 배포한 유인물에서 “ 차씨에 대한 복직문제는 금년 7월 절차를 검토하던 중 정관 83조 3호와 7 호에 저촉돼 복직을 시킬 수 없게 된 것일 뿐”이라며 차씨에 대한 복직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다. 합의각서대로 차씨를 복직시키려고 했지만 정관 에 위배된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동조합은 서울동부지방노동사무소 공문을 들어 반박한다. 한 양대 전미례 정책국장은 “지난 93년 동부지방노동사무소는 ‘해고자 차 씨를 복직시키기 위해 한양대 부속병원장에게 서면 및 현지출장하여 권고 하였으나 한양학원의 정관 및 인사규정에 의거 복직이 불가능하다는 회신 을 받았다’고 밝히는 공문을 보내왔다”며 “이미 검토를 끝내고 합의서 를 써놓고 이제와서 구차하게 정관을 들먹이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에 따르면 병원쪽은 93년에 차씨를 복직시키는 것이 정관에 위배된다는 검토 를 마친 뒤인 95년 복직합의서를 썼다. 그러나 이행시기가 되자 다시 ‘ 정관 위배’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전씨는 “병원쪽이 합의서를 지키지 않으려고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 다”며 “서로 지키지 않아도 좋은 것이 합의서라고 한다면 노사관계는 언제나 파국을 향해 치달을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노사관계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할 헌법이라는 ‘노사합의’. 한양대병원 은 노사간의 근본적인 신뢰가 담긴 합의서를 갈갈이 찢은 셈이다.
송현순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25일 제 18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