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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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행은 국제통화기금(IMF) 시대에 들어서자마자 큰 시련을 겪었다. 통폐합 대상 시중은행으로 꼽히면서 고객들의 예금인출사태가 빚어진 것 이다. 12월 초 들어 불과 일주일 사이에 지난 1년 동안 고생하며 새로 유 치한 예금이 모두 빠져나갔을 정도다. 그러던 것이 정부가 지난 8일 1조1 천8백억원의 출자방침을 발표하고 서울은행도 일부 예금금리를 최고 연 1 7%라는 파격적인 수준으로 인상한 것을 계기로 빠른 속도로 안정세를 찾 아가고 있다. 9∼10일 이틀간 유치된 예금만 3천5백억원에 이른다.
11일 서울 남대문로 2가 본점 행장실에서 만난 신복영 서울은행장은 “IM F가 정한 내년 6월까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9%대로 높일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또 정상화를 성공적으로 이룬 뒤 에는 다른 은행과의 합병이나 외국은행과의 합작을 시도할 뜻이 있음을 내비쳤다. 그는 이어 최근의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금융기관의 여신회수를 동결하는 대통령의 긴급경제명령 등 특단의 조처가 필요하고 IMF 해법도 우리 경제현실에 맞도록 수정될 필요가 있다는 나름의 시각을 밝혔다. 지난 59년 한국은행에 입행해 은행감독원 부원장, 한은 부총재 등을 역임한 신 행장은 지난 95년부터 금융결제원장을 맡아 오다가 한보 사태로 중도퇴임한 장만화 전 행장의 후임으로 지난 8월8일 서울은행장에 취임했다.
-최근 서울은행의 한 여직원이 고객들에게 예금을 호소하는 신문광고를 자비로 실어 화제가 되었더군요.
=오늘 그 직원과 직접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그동안 직원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하고 심지어 우는 경우까지 있었습니다. 이번 사태로 임 직원 모두가 은행경영을 건실하게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 꼈습니다.
-취임하신 지 4개월 남짓 지났는데.
=그동안 엄청난 변화가 몰아닥쳤습니다. 취임 당시는 기아사태가 터진 뒤 지만 지금처럼 상황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한국은행으로부터 특융을 안 받고 자체 힘으로 1년 정도 열심히 뛰면 경영이 정상화될 것이라고 생각 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후 대기업의 연쇄부도, 증시폭락, 환율 급등 등 상황이 급속하게 악화됐죠. 솔직히 정신이 없었습니다. 특히 IMF 와 정부가 2개 시중은행의 통폐합에 합의했다는 말이 돌면서 시작된 고객 들의 예금인출사태로 지난 1주일 동안은 정말 용궁에 갔다 온 느낌입니다 . 위기를 함께 넘기면서 전직원들의 애행심이 한층 높아지는 계기가 됐습 니다. 서울은행의 발전을 위해 밑거름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당장 급한 일은 IMF가 요구하는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8%)을 넘기는 일 이겠지요.
=무엇보다 정부의 출자가 큰 힘이 됐습니다. 정부 출자규모는 원래 8천억 원으로 예정됐지만 IMF가 은행 신탁계정에 대해서도 유가증권 평가손과 대손충당금을 100% 적립하도록 요구하는 바람에 1조1천8백억원으로 늘어 났읍니다. 이렇게 되면 자본금이 현재의 8천2백억원에서 2조원으로 두배 이상 대폭 늘어나게 됩니다. 후순위채권도 적극 발행해 내년 3월까지는 자기자본비율 8%선을 넘길 것입니다. 또 기업들의 부도위험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만큼 만일에 대비해 내년 주총에서 수권자본금 규모(현재 2조) 를 늘리고 증자를 통해 내년 6월까지는 9%대로 끌어올릴 계획입니다.
-그동안 서울은행의 발목을 잡아온 게 부실채권 아니었습니까.
=지난 11월 말 1차로 성업공사에 1조9천5백79억원의 부실채권을 팔았습니 다. 이를 통해 전체 여신에서 차지하는 무수익여신(고정+회수의문+추정손 실)의 비율이 15.1%(97년 9월 말 현재)에서 7.2%로 대폭 낮아졌습니다. 이는 시중은행 평균 수준입니다. 무수익여신 비율로만 보면 ‘서울은행= 부실은행’이라는 말은 이제 틀린 얘기입니다. 정부가 성업공사의 부실채 권정리기금 규모를 10조원에서 15조원으로 늘리는 대로 내년 초에 1조원 규모의 부실채권을 추가로 정리할 계획입니다.
-이미 생긴 부실채권을 정리하는 것과 함께 앞으로 추가부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우선적으로 대출 심사능력을 높이기 위해 여러 방법을 강구중입니다. 여 신정책도 다시 생각하려고 합니다. 부실이 증가하면 은행 내부의 여신기 준을 엄격히 하고 부실이 덜 발생하면 기준을 완화해야 합니다. 업종별로 도 기준을 마련해야 합니다. 솔직히 국내은행들의 심사기법은 외국은행들 에 비해 뒤떨어져 있읍니다. 따라서 외국은행들로부터 선진 심사기법의 소프트웨어를 도입하려고 합니다. 또 전문 심사인력을 육성하기 위해 얼 마전 1차로 50명을 행 내에서 선발했습니다. 이들은 앞으로 금융연수원 등에 의뢰해 집중교육을 받도록 할 계획입니다. 또 전문 심사인력 선발은 2차, 3차 계속 할 것입니다.
-한보사태에서 나타났듯이 고질적인 정경유착의 고리도 끊어야 하지 않겠 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여신에 임하는 은행 경영자의 자세입니다. 정부나 정 치권의 압력에 굴복해 부실기업에 대출을 해주면 부실채권 발생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한보사태를 계기로 외부의 청탁이나 압력도 줄고 있고 경영 자들의 생각도 많이 바뀌었읍니다. 내년 초 들어서는 새정부가 초기에 어 떻게 하느냐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은행수지 악화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올해는 거액의 손실이 불가피합니다.(구체적인 숫자는 밝히지 않는 채 놀랄만한 규모라고만 한다.) 올해 모든 은행들이 거액의 부실 발생으로 이자를 못받고, 자금이 잠기는 등 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주식도 형편없 이 떨어졌습니다. 또 성업공사를 통한 부실채권정리로 2천3백59억원의 매 각손이 발생했습니다. 대신 올해 부실채권을 대폭 정리해 부담을 털어낸 만큼 내년에는 부실채권만 추가로 발생하지 않는다면 소폭의 흑자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99년에는 확실히 흑자를 낼 각오입니 다.
-장기적으로 서울은행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다른 은행과 합병하거나 외국계은행과 합작하는 방안은 어떤지요.
=일반적으로 한국 금융산업, 특히 은행은 M&A가 필요합니다. 국제금융시 장에서 외국은행들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은행이 적어도 1∼2개는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은행으로서도 대등한 합병은 언제든 생각해 볼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흡수합병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주어 진 과제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계 초일류은행으로 도약하 는 것은 다음 단계로 할 일입니다. 외국계와의 합자는 심사기능 제고, 선 진 금융기법의 도입, 한국 금융기관의 대외공신력 제고 등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최근 금융시장 마비현상을 놓고 특단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 가 많습니다.
=대기업의 연쇄부도와 그에 따른 금융기관 부실, 외환위기가 현 금융위기 의 핵심입니다. 기업들의 부도 우려가 게속된다면 금융시스템이 붕괴되고 이는 곧 한국경제의 붕괴로 이어집니다. 기업과 금융기관, 경제의 붕괴를 막기 위한 윈-윈 전략이 필요하다. 종금사들의 경우 부실로 쓰러진다고 하니 예금인출사태가 발생하고, 이를 막기 위해 여신을 회수하다 보니 다 시 기업들이 쓰러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은행들로 하여금 종 금사를 도우라고 하지만 그럴 만한 여력이 없습니다. 정부가 종금사 5개 에 대해 추가로 업무정지를 하면서 종금사들이 하던 기업어음(CP) 매출을 은행신탁으로 하여금 대신 하도록 했지만 효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입 니다. 또 IMF가 5백50억달러를 지원한다고 하지만 외국인투자자들이 돌아 오지 않는 한 외환위기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는 어렵습니다. 금융기관들 에 대해 기업에 준 여신을 회수하지 말도록 정부가 종용하고 있으나 먹혀 들어갈지 의문입니다. 결국 금융기관들의 여신회수를 동결하는 대통령의 긴급경제명령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IMF의 요구가 너무 가혹하다거나 한국경제 현실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환율과 증시안정이 기대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보입 니다. IMF가 고의로 한국경제를 망치려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러나 한국경제의 실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접근방법이 너 무 교과서적이라는 것입니다. 통화당국이 직접 유동성을 공급하는 등의 응급조처를 취해 시장기능을 회복시켜야 합니다.
곽정수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25일 제 18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