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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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이 넘은 벽안의 노부부가 철창 속에 갇힌 한국의 사상범 때문에 울적 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모처럼 행복한 성탄절을 보낼 희망에 부풀어 있 던 잉글랜드 스톡포트의 찰스 요크·베티 요크 부부의 얼굴에서 웃음을 걷어간 것은 지난달 초 한국에서 들려온 짤막한 소식이었다. 이들 부부가 후원해 온 <인권운동 사랑방>의 서준식씨가 다시 구속되었다는 것이었다. 공무원과 고교교사로 일하다 은퇴한 뒤 앰네스티 인권운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던 요크 부부가 서씨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지난 1984년 이다. 런던의 앰네스티 국제사무국으로부터 서씨 사건을 할당받은 부부는 그가 사상 때문에 1971년부터 14년째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고 경악 을 금치 못했다. 그때부터 1988년 서씨가 석방될 때까지 요크 부부가 이 끈 앰네스티 스톡포트 그룹이 벌인 활동은 앰네스티 활동사에서도 전설로 통하고 있다.
그룹 회원들은 요일별로 차례를 정해 수백통의 편지와 전보, 팩스, 텔렉 스 통신을 한국정부 각 기관에 발송하고, 영국의 외교 당국과 의회, 언론 , 노동조합, 유럽의회에도 서씨의 사례를 알렸다. 서씨의 생일에는 케이 크를 구워 시장터에 나가 시민들에게 나눠주며 그를 기억시켰다.
1986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 런던의 한국대사관 앞 에서 철야농성을 벌인 것도 이들이었다. 지방의 한 록그룹이 ‘양심수 서 준식’이라는 곡을 만들어 브리스톨음악제에 출품한 것도 이들의 활동에 힘입은 결과였다.
요크 부부는 서씨가 풀려난 뒤로도 한시도 서씨를 잊은 적이 없었다. 그 러던 중 지난 5월 반가운 편지를 받았다. 영국을 방문하는 길에 이들 부 부를 찾아뵙고 싶다는 서씨의 것이었다. 노부부는 앉아서 기다릴 수가 없 었다. 보청기를 끼고 걸음마저 불편한 몸이었지만 여러 시간 걸리는 장거 리여행을 마다않고 런던의 패딩튼역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서씨를 만났다. 그리고 서씨가 보여준 가족사진을 만지고 또 만져보았다.
그 꿈같은 해후가 있은 뒤 몇달 되지도 않아 이번에 청천벽력과 같은 소 식을 듣게 된 것이다. “늙고 병든 몸이지만 그를 돕기 위해 무엇이든 하 겠다”며 다시 서씨 가족에게 보낼 성탄카드를 쓰는 이 크리스천 노부부 의 눈가엔 이슬이 맺혔다.
런던=권은정 통신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25일 제 18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