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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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일국의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수많은 날들을 잠 못 이루며 통한의 눈물 을 짓는다”해도 코방귀부터 먼저 나온다. 채권국의 우리 정부에 대한 불 신은 아예 이 기회에 거지의 비굴을 강요한다. 정부를 믿지 못하는 은행 은 제2금융권에 대한 지원을 끊고 제2금융권은 무자비하게 기업에 대한 채권을 회수한다. 예금자인 국민은 금융기관에서 무더기로 돈을 빼낸다. 혈관 속에 있어야 할 돈은 모두 은행의 금고 혹은 개인의 장롱 속으로 응 혈되어 간다. 돌아야 할 것이 돌지 않으니 더이상 돈은 돈이 아니다. 돈 을 돈이게끔 하기 위해선 신용이란 심장의 박동이 있어야 하나 심장은 멎 어간다.
이런 상태에서 우리는 다시 새 대통령을 선택해야 한다. 5년 전 선택에 대한 자책과 후회는 이제 별 의미가 없다. 부산 앞바다에 붓뚜껑을 잡았 던 오른쪽 손가락이 둥둥 떠다닌다느니 누구 이름만 들으면 돌부처님도 돌아앉는다느니 하는 농담조차 이제 객쩍기만 하다. 지난 5년의 반성이 담긴 선택을 하는 것이고 거기에서부터 쓰러진 믿음을 다시 세우는 일만 이 절실할 뿐이다. 최근 한 일간지 조사 결과엔 우리가 해야 할 반성의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 대통령 집권 5년 동안의 평가에 대해 응 답자의 67.7%가 아주 실패, 28.6%가 비교적 실패했다고 응답했다. 95%가 실패로 규정한 셈이다. 그리고 66.4%가 김 대통령에 대한 책임을 묻는 청 문회를 요구했다.
그러나 평가가 아무리 추상같다 해도 5년 전의 선택에 대한 책임에서 자 유로워질 수는 없다. 고깝더라도 그때 터져나온 ‘국민은 제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뽑게 마련’이라는 빈정거림에 오히려 귀를 기울여야 한다. 물 론 제 도끼에 발등을 찍힌 사람을 세워둔 채 우둔함을 탓하는 짓은 야비 하다. 하지만 치료는 해주더라도 다시는 그런 어리석음을 되풀이 하지 않 도록 하는 것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 평가가 추상같다면 반성 또한 추상 같아야 하는 것이다. 김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던 한 일간지가 5년 뒤 ‘한번 대통령을 잘못 뽑으면…’이라는 신묘한 후안무치를 설파해도 이 를 느끼지 못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니 말이다.
그때 선택이 빗나갔던 이유는 자명하다. 붓뚜껑을 이성보다는 감정이 시 키는 대로 놀린 탓이다. ‘누구누구는 절대 안 된다’는 맹목의 거부정서 , ‘우리가 남이가’식의 지역정서, ‘누구를 찍으면 누가 된다’는 무소 신 따위는 그 구체적인 표현이다.
최근 발견된 윤봉길 의사의 유고시는 오늘에 더욱 절실하다. 독립운동을 위해 고향인 충남 예산을 떠나기 앞서(1930년 3월) 남겼다는 이 시편에서 고인은 “남은 것이라고는 단지 잿빛의 옛 땅과 희끄무레한 일그러진 뼈 다귀뿐//서럽게 신음하는 숨소리가 진동하여 고막을 마비시키고…”라고 했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외부의 강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 택이 빚어낸 것이기에 더욱 암울하다.
1953년 6월 베를린 노동자 봉기를 지켜보면서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그런 심사에 빠졌는지도 모른다. 역시 유고시 <해결>에서 “…인민이 정부의 신뢰를 소홀히 했으니//정부가 인민을 해체하고/다른 인민을 선출하는 편 이/오히려 더 간단하지 않을까?”라고 풍자했다. 노동자의 정당한 불만을 찍어누른 당국에 대한 항변의 반어법이었다.
투표장 들어가기에 앞서 꼭 5년 뒤를 한번씩 생각해보자. 그때 가서 브레 히트의 반어법이 실제가 되어 ‘인민을 갈아치우는 게 간단하지 않을까’ 라는 자조가 나오지 않도록.
한겨레21 편집장 곽병찬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25일 제 188호